[인권 돋보기] 아름답고 찬란한 역사만 반복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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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당시 1937년, 프랑코의 국민 진영을 지원하던 독일의 콘도르 군단이 스페인 북부 게르니카 지역에 융단 폭격을 퍼부어 시민을 학살한다.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 프랑코의 권력에 대한 탐욕과 독일 전체주의의 광기가 합쳐져, 단 네시간 만에 1,600명에 가까운 사람을 학살한 사건이다.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이 참혹하고도 잔인한 탐욕의 광기를 두고 볼 수 없어 그림으로 그려 기록으로 남긴다. 가로 7m, 세로 3m에 달하는 작품인 ‘게르니카’이다.

1931년 입헌군주제가 붕괴되고 5년 후 프랑코가 군부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 내전의 뒤에는 전체주의 국가였던 독일과 이탈리아가 있었고, 공화파의 뒤에는 소련이 있었다. 2차 대전을 목전에 앞둔 열강의 대리전 양상도 있었다. 당시 내전 상황 동안 끔찍한 고문과 학살이 자행되었고 무고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내전이 마무리되고, 프랑코가 몰락한 다음 스페인에서 발생한다. 1977년 스페인은 ‘사면법’이라는 기묘한 법을 만들어낸다. 이법의 요지는 이러하다. 프랑코가 사망한 1975년 이전까지 발생한 모든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위를 사면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예를 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경찰이라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랑코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사망하기까지 40년이 넘는 시간을 스페인 역사에서 도려내 버리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사면법’ 혹은 ‘망각법’이 20세기 유럽의, 그것도 거대한 제국이자 지금도 건재한 스페인 사람들이 만들고 기묘하게도 지키고 있다는 것이 쉽사리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한국으로 사례를 들어보면, 친일파도 다 용서하고, 제주에서 마약에 취해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는 서북청년단의 어느 누구도 용서하고, 대학생을 고문하고 죽게 만든 고문 기술자도 용서하는, 말 그대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칡넝쿨마냥 잘 어울려서 살자’는 것이니 말이다.

스페인의 역사를 톺아보면 대한민국과 닮아 있어 흥미롭다. 지역갈등까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한일전을 방불케 하는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경기만 봐도 그러하다. 이렇게 닮아 있으니, 대한민국의 혹자는 신나하며 들이댈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유럽의 스페인이라는 강국도 과거를 다 잊고 저렇게 잘 사는데 우리도 과거 이야기 좀 그만하자고 말이다. 노근리에서, 광주에서, 마산에서, 제주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억울하게 죽었던 과거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젊디젊어 푸르기까지 했던 청년들이 고문받았던 과거는 묻어두고 찬란한 대한민국의 앞날만 바라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권력자와 정치인도 한때 세계를 정복했던 거대한 상선과 함정, 그리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절대 왕정의 화려한 과거에 프랑코의 40년 역사는 너무나도 수치스러웠을 수 있다. 피해자들에게 ‘잊는 것’을 강요해 잔혹한 가해자들과 역사에 권리 없는 자들이 ‘용서’를 해버린 것이다. 영원히 잊히기를 바랬지만, 2007년 스페인은 ‘역사기억법’을 통과시켜, 그 역사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잔혹함을 알리고 망각의 재능을 가진 인간들에게 수시로 일깨워주기 위함일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사진=피카소 미술관)

그러기에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완성해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국제박람회에 전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엄청 크게도 그렸다. 피카소는 한국의 아픈 역사도 그려냈다. 정작 본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인 중에선 아는 이들이 별로 없는 그림이다. 1951년 미군이 개입해 발생한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을 배경으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처참하게 발가벗겨진 여인들과 아이들이 총칼 앞에 서 있다. 우리는 그 기억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민간인 학살을 말이다.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였던 영국의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반복되지 않는 역사는 없다. 기묘하게 닮아 이어진다. 아름답고 찬란한 역사만 반복될 수 없다. 잔혹하고 끔찍한 역사도 반복이 된다. 그렇지만 다시 드러내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을 말살한 이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단죄가 교훈으로 남는다면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혹시 반복되었다 하더라도 막으려는 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게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