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1) 섣달그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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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작전명 제5호 ‘견벽청야(堅壁淸野)’는 지리산 인근 빨치산 소탕작전명이다. 국군 11사단 9연대장 오익경 대령은 작전 지역 안의 이적행위자는 발견 즉시 처형하고, 빨치산에게 동조하거나 음식을 제공한 주민들도 적으로 간주하여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쟁으로 시끄러웠던 바깥의 세상과는 달리 거창군 신원면은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1951년 2월 5일 제11사단 9연대 3대대장 25살의 한동석이 이끄는 병력이 신원면에 들이닥친다. 마을 주민들은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부녀자가 대부분이었다. 국군은 마을 곳곳을 수색했으나 빨치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3대대는 2차 공격지인 산청으로 이동하게 된다. 연대장인 오익경 대령은 산청의 집결지에서 한동석 소령에게 질타를 한다. 그러자 한동석은 1951년 2월 9일 다시 부대를 이끌고 신원면 청연마을로 들어오게 된다.

첫째 날, 국군은 1951년 2월 9일 신원면 덕산리 청연골에서 주민 84명을 학살한다. 둘째 날, 1951년 2월 10일 신원면 대현리 탄량골에서 주민 100명을 학살한다. 셋째 날, 1951년 2월 11일 신원면 과정리 박산골에서 주민 517명을 학살하고 집과 길거리 등 노지에서 18명의 주민을 학살하였다. 모두 719명의 양민들이 국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14세 미만의 어린이가 359명, 60세 이상 노인들이 66명, 희생자의 58%가 어린이와 노약자였다. 남자 희생자가 327명, 여자 희생자가 392명이었다.

이 시는 거창군 신원면 내동 마을이 고향인 김운섭 선생이 청연골까지 피난을 하면서 겪은 수기, <억울한 죽음 뒤처리>를 바탕으로 쓴 서사시임을 밝힌다. 대부분의 문장은 원저자(原著者)의 기록이다. 오탈자와 비문 위주로 수정하고 원저자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열 살의 어린 소년이 1951년 2월 5일부터 11일까지 겪은 피어린 사연의 기록이다. 김운섭 선생은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 고문 등의 일을 맡아 거창학살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지난 2020년 1월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고인(故人)이 되셨다.

▲2018년 7월 김운섭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장(왼쪽)을 만난 김수상 시인이 인터뷰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경 제공)

■ 섣달그믐

설음식 만드는 고소한 기름내가 온 마을에 진동했다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고 날씨는 을씨년스럽게 추웠다
1951년 2월 5일, 음력으로는 1950년 섣달그믐날
아침을 막 먹었는데 마을 청년이 숨이 넘어가듯 외치며 뛰어왔다
“청수골 소 새초(여물) 먹는다!”
위험을 알릴 때 쓰는 마을 사람들만 알아듣는 암호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청수골을 서서히 덮고 있었다
청수골로 군인들이 기러기 떼처럼 가물가물 몰려오고 있었다

지난여름부터 먼 데서 쿵쿵쿵 포성이 들리더니
난리가 났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터로 가는 군인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국군이었다
무장을 한 그들이 청수골에서 사천천을 건너
마을까지 오는데 순식간이었다
우리 집은 길가에 있었다
숨을 죽이며 문구멍으로 밖을 보았다
두 명의 군인이 총을 겨누며 살금살금 안방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야, 기겁을 하며 나는 문에서 물러나 이불 속으로 숨었다
주인을 찾는 기척도 없이 별안간 방문이 열렸다
탕! 탕!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폭발하는 소리였다
방안에는 어머니와 열네 살의 작은형과
세 살배기 젖먹이 여동생
그리고 열 살인 내가 새파랗게 질렸다
젖먹이 여동생은 기절을 했는데
군인들은 군홧발로 방 안으로 들어와 총으로 쿡쿡 찔러대며
난폭하게 우리를 밖으로 내몰았다

군인들은 우리를 동청(마을회관) 앞 논들로 끌어냈다
얼마나 무섭고 또 얼마나 추웠던지 이가 저절로 부딪혔다
지난가을에 벼 타작을 하고 쌓아놓은 논들의 짚단 옆에서
마을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군인들은 길에 죽 늘어서서 주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한 군인이 하늘에다 총을 쏘아댔다
한참을 미친 듯 쏘아대더니 주민들 앞에 나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끌려 나올 때부터 귀에서 윙, 소리가 났는데
귀가 멍멍해지더니 군인들이 떠드는 소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을 지껄이기 시작하더니
동청 왼편 길옆 바위에 몸을 의지하고 앉아있는
김봉문(당시 45세) 아저씨 앞으로 다가가 뭐라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는 길바닥에 쓰러졌다
군인들은 다시 주민들 앞으로 돌아와 뭔가를 다그쳤다
말하지 않으면 총으로 모두 쏘아 죽일 것처럼 날뛰었다
카빈총을 미친 듯이 하늘을 향해 쏘아댔다

할머니가 두 손녀를 데리고 떨고 있었다
어린 손녀를 등에 업은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큰 손녀는 꽉 붙잡고 있었다
할머니가 손녀를 자꾸 떼놓으려 하자
손녀는 죽기 살기로 울며불며
할머니 치마를 잡고 늘어졌다
“아이고, 이것아 제발, 우리가 온 동민을 다 죽이게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가 광란을 부리는 군인 앞으로 불려 나갔다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할머니에게 군인이 무엇인가 물었다
이윽고 할머니가 대답하는 것 같았는데
“탕! 탕!”
할머니가 어린 손녀를 업은 채 논바닥에 쓰러졌다
치맛자락을 잡은 할머니의 손녀가 비명을 질렀다
다시 “탕!”
손녀의 발가락이 파르르 떨리더니 미동도 없었다
논바닥에는 붉은 피가 썰물처럼 흘렀다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총에서 또 총알이 터져 나올까 봐
가족들끼리 끌어안고 눈을 감아버렸다
하늘도 새파랗게 질렸다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등에 업혀 기절했던 여동생이 깨어나 울려 했다
어머니는 젖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네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군인은 독기서린 말로 계속 뭐라고 미친 듯이 외치더니
슬그머니 총을 내렸다
그러더니 마을 아래쪽으로 긴 대열을 이루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색이 되어있는 주민들은
망연자실 제자리에서 떨기만 했다
부대의 긴 꼬리가 길모퉁이를 돌아 사라졌을 때
죽을상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린아이 둘과 어른 둘이 죽었다
임시방편으로 유족들이 시신을 가마니로 덮어놓았다
동네 개들이 밤새 짖었다
무서워서 아무도 대문 밖을 나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