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미지의 영역, 꿈으로 ‘인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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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훔치는 거대한 전쟁.’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있다면, 꿈을 조작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인셉션(2010년)>은 인간의 꿈을 조작하는 일을 표현해냈다. 인류는 꿈의 신비로움에 매료돼 왔다. 인간이 왜 꿈을 꾸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아직 없어서다. 인간이 언제, 어떻게 꿈을 꾸는지에 대한 대답을 얻는 것을 과제로 삼는 과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꿈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꿈을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은 꿈에서 깨어난 뒤 기억에 남는 꿈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다. 주로 심리학자들에 의해 꿈의 의미를 인간 무의식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해석돼 왔다. 그래서 꿈은 아직 인간 두뇌에서 벌어지는 고도의 지적 활동으로 이해하는데 그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철학과 인문학이 뒤섞인 영화를 제작했다. <인셉션>은 꿈에서 꿈으로, 또 꿈으로 빠져들고, 기계로 연결된 사람들이 꿈을 공유하고, 타인의 꿈을 창조한다. 놀란 감독은 <인썸니아(2002년)>를 통해 환상과 현실이 뒤엉킨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인썸니아>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형사가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서 판단력을 잃는 내용이다.

물론 인간의 꿈을 기묘하게 표현해낸 영화는 <인셉션>이 유일한 건 아니다. 타셈 싱 감독이 연출한 <더 셀(2000년)>은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의 꿈에 들어가는 모험을 그려냈다. 꿈의 세계는 매우 잔혹하면서도 초현실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졌다. 특히 꿈속 장면은 시각적으로 매우 화려하다. 이는 오드 너드럼, 데미안 허스트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런데 <인셉션>은 꿈속의 꿈을 통해 ‘꿈과 현실의 경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다소 어려운 철학적 내용을 다룬다. 마치 중국 사상가 장자의 ‘호접몽’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장자는 인생의 덧없음을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을 통해 현실과 꿈의 구별이 안 되는 것으로 비유했다.

영화의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팽이를 돌려 꿈과 현실을 구분한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 영화가 던진 질문을 재해석하면서 영화를 곱씹었다. 한동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꿈인지 아닌지에 대해 추리하며 일종의 놀이처럼 철학적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덧붙였다. 영화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영화에서 코브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일본의 기업가 사이토(와타나베 켄)의 의뢰로 동종 재벌기업 후계자 로버트 피셔(킬리언 머피)의 꿈에 들어가 기업합병을 막기로 한다. 그 대가는 누명을 벗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코브는 꿈 설계자인 아리아드네(엘런 페이지)와 세부 설계자 아서(조지프 고든레빗), 표적을 속이는 사람 임스(톰 하디), 특수약물 제조자 유서프(딜립 라오) 등으로 팀을 꾸려 작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피셔의 무의식이 이들의 작전을 무산시키기 위해 반격에 나서고, 코브의 무의식도 끼어들어 방해한다.

영화는 현실의 고삐가 풀린 꿈의 세계를 일정한 규칙을 토대로 겹겹이 꿈을 꾸는 가상세계로 구축했다. 도시가 종이처럼 접히고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물리학의 법칙을 벗어난 장면을 보여주는 게 대표적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규칙도 덧붙였다. 현실의 10초가 꿈에선 3분이 되고 현실과 꿈을 구별하는 도구 ‘토템’, 꿈을 공유하다가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기억이 가라앉는 곳 ‘림보’, 꿈에서 강제로 깨어나게 하는 강한 충격 ‘킥’ 등 규칙을 정해 개념을 확립했다.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꿈을 현실로 착각하고 살다가 죽어서야 꿈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려운 의뢰를 달성하기 위해 코브 일행은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는 방식을 반복하며, 시간이 극단적으로 느리게 가는 의식 속으로 여행을 이어간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의 팽이도 돌아간다. 진정 꿈에서 깨어난 것인지, 꿈을 현실로 착각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장자의 호접몽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나비가 되는 꿈을 꿨는데, 내가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내가 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