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시인 이원규 포토에세이 ‘나는 지리산에 산다’ 출간

모터사이클로 전국 누비며 야생화, 은하수, 반딧불이 사진 담아
"야생화들과 눈빛을 맞추며 생의 한 철 감격의 봄날을 살았다"

10:09

우리나라 전역을 모터사이클로 누비는 시인 이원규가 지난 1월 <나는 지리산에 산다(휴먼앤북스)>를 냈다. 서울을 버리고 지리산에 입산한 그가 지리산과 야생화와 별을 좇은 이야기를 약 100점의 사진을 곁들여 선보인 포토에세이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외압마을 자택 서재, 이원규 시인 (사진=정용태 기자)

이원규 시인은 1998년 봄 전라선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구례역에 내렸다. 지리산 입산 23년, 빈집을 떠돌며 여덟 번 이사했다. 잠시 집을 떠나 ‘4대강을 살리자’며 했던 도보 순례 3만 리로 결핵성 늑막염을 앓았다. 다시 지리산으로 들어온 저자는 안개와 구름 속 야생화를 담기 시작했고, 야생화를 찾는 과정에서 건강도 다시 찾았다.

지리산 골짜기와 섬진강변에서 살던 작가는 지금 섬진강 건너 백운산 자락 외압마을에 산다. 작가는 야생화를 찍기 위해 지리산 남부능선 형제봉에 오르고, 섬진강을 담기 위해 구례 사성암에 오르거나 악양 구재봉 활공장에 올랐다. 지리산과 야생화, 별을 담기 위해 모터사이클로 지구 25바퀴의 거리만큼 한반도 남쪽을 달렸다. 마침내 숨었던 야생화를 사진으로 담은 ‘몽유운무화’를 선뵀고, 깊은 밤 산속에서 별빛 비치는 산천과 은하수를 찍을 수 있었다.

“찔레꽃이 피면 아주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내 생의 첫 선물인 장난감 말, 고무호스로 연결된 펌핑 말이 생각난다. 여섯 살 때 처음 본 ‘아부지’, 단 한 번 얼굴을 본 그 사내가 준 갈색 말 한 필! 그날 이후부터 나는 기마족이 되었다.” / <나는 지리산에 산다> 가운데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앤북스 발행인)는 “이원규의 포토에세이는 그의 지리산행과 야생화 탐구와 별과의 교신을 기록한 글과 사진”이라며 “이원규는 지구와 우주의 주인공인 꽃과 별을 잠시 염탐했을 뿐이다. 인간의 찰나적 염탐의 기록이라 해도, 그렇기 때문에 이원규의 글과 사진을 보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꽃과 별이 있어 지구는 살만하다. 이원규는 이 책을 통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번 책은 ‘나는 23년째 입산 중이다’, ‘야생화가 나를 살렸다’,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 등 3부로 구성됐다. 1부 첫머리에서 작가는 지리산 입산 후 날마다 ‘우리가 오기 전에도 지리산은 있어왔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섬진강은 유장하게 흐를 것이다···’는 말을 되새긴다고 했다.

작가는 지리산 입산 후 5~6년간 구름과 안개 속에서 얼굴을 내민 야생화, ‘몽유운무화’를 찾아다녔다. 또 5년은 한밤에 빛 공해가 없는 오지를 찾아 ‘별 사냥’을 다녔는데 감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등 토종나무와 별빛을 같이 담는 ‘별나무’ 작업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별과 반딧불이에도 관심을 기울여 ‘반딧불이 혼인비행’ 등의 제목으로 책에 담았다.

2부 ‘야생화가 나를 살렸다’에서 70여 년 동안 흔적이 사라진 ‘조선 남바람꽃’의 자생지를 찾은 순간을 특히 기뻐했다.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감동시킨 것은 멸종 위기 식물인 남바람꽃이었다. 말 그대로 ‘아아, 심 봤다!’였다. 1942년 구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뒤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지리산표, 섬진강표인 ‘조선 남바람꽃’을 70여 년 만에 찾아낸 것이다”고 적었다.

3부 ‘실아 춤추는 지상의 별’에서 ‘반딧불이’를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로 불렀다. 또 섬진강에서 찍은 은하수 사진을 자랑했다. 그는 “몇 년째 꿈꾸고 상상하던 그 자리에서 기다리니 마침내 섬진강 위로 은하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구 벌렁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산벚나무를 배경으로 장노출 셔터를 눌렀다. 섬진강변 벚꽃은 다 졌지만 산비탈의 산벚꽃은 절정이었다”고 했다.

시인은 마지막 장 ‘시여, 그러나 나는 아직 너를 모른다’에서 “내 생애 유일한 신(神)은 시(詩)였고, 시는 곧 가시 같은 것이었다. 밤마다 아프게 콕콕 찌르는 신이 시요, 시가 가시였다!”며 “리우 환경회의의 선언은 문학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전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 나는 이 한마디와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말을 경전으로 삼아 환경운동을 넘어 생태주의로, 그리고 마침내 생명평화운동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물론 문학적인 위치적 기반 또한 지리산으로 고정해 놓고, 지리산의 푸른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써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에서 태어난 작가는 계명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대구로 왔다. 지난 2015년 대구를 비롯해 여수, 울산 등에서 ‘몽유운무화’ 전시회를 가졌고, 2019년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와 신작시집 ‘달빛을 깨물다’를 내고, 인사동 마루갤러리에서 사진전 ‘The starry Tree 별나무’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