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미리보기] (3) 건설 현장은 노동부가 움직인 만큼 바뀐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알아도 신고 못하는 현실
법인 처벌, 담당 공무원 처벌 빠져
'산업안전보건청' 실효성도 '의문'

18:47

“무서워도 참고 일하시는 건가요?”
“처음에는 좀 무섭죠. 설마 내가 떨어지겠나 이런 마음으로 작업을 계속해요. 다들 그렇게 일하니까. 신고하기도 어렵고…”

국토교통부는 건설 현장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아차 사고’ 신고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위험했던 상황을 ‘아차 사고’라 부른다. 안전모 미착용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현장을 국민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

25년째 형틀목수로 일하는 김형중(56) 씨는 안전시설이 제대로 없다는 걸 알지만 신고하지 못했다. 노동조합 현장위원회 팀장들과 모여 위험 상황을 신고하고,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까지 모였다. 하지만 일용직노동자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신고하고 제대로 점검하면 원청은 벌금을 맞을 수밖에 없다. 원청은 하청업체를 불러 왜 시끄럽게 하느냐고 하고, 하청업체는 그 밑에 업체를 부르고 결국 하루도 못 가서 현장까지 이야기가 내려온다”며 “우리도 회사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우리 팀이 찍히면, 다음부터 어느 업체에서 써주려고 하겠나. 그래서 신고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래서 안전 문제만큼은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노동부가 현장에 나와서 관리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설노조 대경본부와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사를 점거했다.

건설노동자에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더 간절했다.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달성을 위해 링크를 퍼날랐다. 10만 명을 달성했을 때 기쁜 마음도 잠시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당론 채택을 거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정도로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건설노조는 전국적으로 민주당사를 점거하기도 했다.

형중 씨는 “법이 통과됐을 때 좋았다. 산업재해가 회사의 예방조치가 부족해서 생기는 거고,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가슴이 시원하지가 않고 갑갑하다. 내용을 보면 이건 법을 만들어주는 척만 한 거다”고 지적했다.

만들어주는 척만 한 중대재해법
법인 처벌, 담당 공무원 처벌 빠져

중대재해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것부터 반쪽짜리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중대재해법 핵심인 기업의 안전 확보 의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조치 등의 구체적인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하는 안전 의무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청원입법안에 있던 무리한 공기 단축을 요구하는 공사 발주처 처벌 조항도 빠졌다. 공무원이 관리·감독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처벌 조항도 빠졌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처벌 조항은 3년 이상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 벌금에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징역형은 낮추고 벌금형을 높였다.

형중 씨는 “벌금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돈 많은 회사에서 10억 원을 겁내겠나. 사람 하나 죽어도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며 “중대재해법 만들기 전에도 사망 사고 날 때마다 솜방망이 처벌한다고 우리가 많이 싸웠다. 회사가 망하는 수준으로 타격을 주지 않으면 현장은 바뀌지 않을 거다”고 말했다.

▲안전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현장을 가르키며 설명하는 형중 씨(오른쪽)

그의 바람이 담겼던 국민청원입법안 제6조(법인의 처벌)는 중대재해법에서 통째로 날아갔다. 재계가 기업을 죽이는 법안이라고 반발했던 부분이다. 국민청원입법안은 법인이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하거나, 그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하는 조직 문화가 있을 때 법인 매출액 또는 수입액의 10% 범위 내에서 벌금을 가중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경우 영업허가 취소, 5년 이내 영업정지 등 제재를 할 수 있다.

형중 씨는 “경제계 주장은 사실 대응할 가치도 없다. 처벌법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데 결국 어렵다는 말이 돈을 옛날보다 더 써야 하니까 어렵다는 말 아니냐”며 “그러면 우리는 죽어도 되나.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인력 늘려, 현장 감독해야”
민주당, ‘산업안전보건청’ 제안…
공무원 처벌 빠져 실효성 ‘의문’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들겠다고 공식화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산업재해 업무만 분리해 전문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 대표는 중대재해법 취지에 따라 중대재해 예방과 관리, 점검 업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일 고용노동부도 ‘2021 산업안전보건감독 종합 계획’을 발표하면서 안전조치 확보를 위한 감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형중 씨는 고용노동부의 새로운 발표에도 시큰둥했다. 고용노동부는 지금 당장이라도 건설 현장에 나가 감독할 수 있다.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는 수도 없이 있었고, 별로 의미도 없다. 그는 “나한테 노동부 한자리만 주면 내일 아침부터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형중 씨가 일하는 건설 현장에 붙은 산업안전보건법

그는 “현장에서는 노동부에서 전화만 와도 쩔쩔매는 분위기다. 노동부가 그 정도 권한이 있으면 사람을 더 두더라도 직접 현장에 나와야 한다”며 “노동부 공무원들이 제대로 하면 건설 현장이 완전히 확 바뀔 거다. 그래서 공무원 처벌 조항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는데 제대로 나오겠나”고 꼬집었다.

“노동부에서는 한 번씩 그렇게 떠들어요. 언제는 안 그랬나. 산업안전보건청을 세워서 제대로 하기면 좋기야 좋죠. 지금도 산업안전보건법도 있고, 안전보건위원회도 있고, 법적으로는 다 있어요. 그게 제대로 실행이 안 되니까 중대재해법 만들라고 한 거 아니에요. 보건청이 들어선다고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죠”

정의당은 중대재해법 개정 운동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중대재해 책임자를 명확히 해야 한다. 책임자는 사업주일 수도 있지만, 함께 인허가 등을 함께 추진한 담당 공무원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분명하게 물을 것”이라며 “우선 5인 미만 사업장에 법이 적용되도록 개정 운동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이 공포(‘20.1.26)된 후, 지난달 29일 경북 구미 유리 제조업체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코리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로 노동자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 8일 경북 포항 포스코 협력업체 노동자 A(35) 씨가 작업 중 컨베이어 롤러에 끼여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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