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외계의 존재를 통한 인류 고찰 <컨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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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우주에 생명체는 지구인밖에 없을까? 외계인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는 이들은 많다. 인류는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외계인을 찾기 위한 노력해왔다. 우주로부터 오는 전파 등의 신호를 분석하거나 외계인 문명의 흔적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신호를 찾고 있다. 아직 인류는 외계인의 존재를 찾은 적이 없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을 발견했으나, 외계행성에서 생명체의 존재 증거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만약 외계인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보통 미지의 존재와 조우는 반갑지 않을 것으로 가정한다. 우월하고 낯선 존재가 지구를 침략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는 막대한 기술력을 지니고 인류의 모습과 다른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의 땅을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벌인 폭력의 역사를 통해 체득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인류 역사상 우월한 기술과 무기를 갖춘 민족은 낯선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삶과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약탈했다. 또 자연을 황폐화하고 특정 동물을 사냥해 멸종시키기도 했다. 폭력적 점령은 주체와 대상만 바뀐 채 인류의 역사 내내 반복돼왔다. 이러한 폭력의 이면에는 인류가 지구의 다른 어떤 존재보다 우월하다는 자각과 열등한 존재를 이용할 수 인식이 박혀 있다.

하지만 인류가 닿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있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인류가 개척하지 못한 우주에 대한 공포와 일맥상통하다. 인류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문명을 일궜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또 초지능을 지닌 외계 생명체가 인류에 적대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를 품는다. 인류의 정복 역사는 공포의 근원을 낳았다.

미지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내용은 영화에서 수없이 다뤄졌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년)>, <우주전쟁(2005년)>, <지구가 멈추는 날(2008년)>, <월드 인베이젼(2011년)>, <배틀쉽(2012년)> 등 거의 모든 SF 영화가 인류가 외계인의 지구 침공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한 <컨택트(Arrival, 2016년)>는 미지의 존재와 맞서 싸우지 않는다. 영화는 전 세계 문학계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SF 소설가로 추앙받는 대만계 미국인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1998년)>가 원작이다. <컨택트>는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는 거대한 조개 모양의 미확인 비행체(쉘)가 전 세계 12개 지역에 동시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인류보다 우월해 보이는 낯선 존재는 지구를 침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과 전투는 벌어지지 않는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도 없다. 인류는 외계 존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으로 대하지만, 외계 존재는 지구 상공에서 지구를 관찰하기만 한다.

쉘은 18시간마다 한 번씩 열리는데, 각국의 과학자, 군인은 쉘 안으로 들어가 다리가 7개 달린 거대한 문어 모양의 외계인 헵타포드와 접촉한다. 하지만 소통은 이뤄지지 않고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외계인과 소통할 방법을 찾기 위해 18시간마다 쉘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외계인이 왜 지구에 왔는지, 지구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내려는 정부의 의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학자는 문제를 내려고 하고 군인은 전투를 치르려 한다. 하지만 외계인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게 되면서, 인류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영화에서 외계인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인류는 외계인이 지구에 온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만 대답은 인류에 대한 고찰로 돌아온다. 루이스는 지구인의 방식대로 헵타포드와 소통하려 하지만, 이는 그저 언어를 학습하는데 그친다. 지구인의 관점에서 인간의 성대로 낼 수 없는 소통을 하는 외계인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호복을 벗고 외계인과 진정 소통하려 들자, 헵타포드의 비밀을 알아내게 된다. 이는 인류의 사유 체계는 물론 인류의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영화는 물리학이나 언어학이 등장하고 내용이 난해한 편이다. 지구의 시간 흐름과 개념, 사고방식을 뒤흔든다. 게다가 온갖 지적 논리들이 감성을 자극하는 데까지 이른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다.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에드워드 사피어(1884~1939)와 그의 제자 벤저민 리 워프(1897~1941)가 20년에 걸쳐 완성했다. 사피어와 워프는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방식도 달라진다”고 주창했다. 영화의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가 언어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다시 모든 걸 뒤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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