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상황 안타깝지만···문 닫은 공장 살아날까요?”

[르포] 한국게이츠 노동자 도보투쟁 동행 취재
정부 역할 필요성도 언급···"시민 관심 있어야 끝나"

17:35

지난 5일 달성군 현풍백년도깨비시장에 노란 조끼를 맞춰 입은 사람들 20여 명이 나타났다. 조끼에는 ‘흑자·위장폐업 규탄! 손배가압류 철회!’라고 새겼다. 이들은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이다. 도로 한 쪽에 세운 선전 차량에서 자신들의 부당한 해고를 전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해고노동자들은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행인들에게 전단을 나눠주었다. 과일 노점상을 하는 서외덕(54) 씨도 유인물을 받았다. 그는 ‘한 박스 8천 원’이라고 적힌 귤 박스 옆에서 꼼꼼히 전단을 읽어 내려갔다.

서 씨는 “나도 해고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영난을 겪는 회사에서 등 떠밀려 나왔다. 1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였지만 20년을 일한 직장이었다. 일감이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자니 자신의 해고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을 넘게 쉬다가 지금은 시장에서 귤을 판다. 그동안 해본 적 없던 일이다.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됐지만, 처음에는 살이 6kg까지 빠졌다.

나도 해고노동자지만,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억지로 (회사를) 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구시나 정부에서 재정을 투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고요. 어려운 회사에 다 정부 재정을 투입할 수는 없잖아요.

▲지난 5일 현풍도깨비시장에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이 시민들에게 플래카드를 펼쳐 선전전을 하고 있다.

유인물 받아든 20대 청년,
“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은 흑자를 내던 공장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건 ‘위장폐업’이라 주장한다.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지난 2일부터 대구 전역을 걷는 도보 투쟁을 시작했다. 4일차를 맞은 지난 5일 도보 투쟁 현장을 찾았다. 논공읍 한국게이츠 공장 앞에서 시작해서 현풍시장을 거쳐 유가읍에서 끝나는 코스였다.

평균 도보 코스가 7km 안팎인데 이날은 9.6km로 전체 도보 투쟁 일정 중 가장 길었다. 도보 행진을 하다가 시장이나 네거리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시민들에게 직접 유인물을 나눠주며 대면선전전을 했다. 해고노동자들은 논공중앙시장과 현풍백년도깨비시장, 유가읍 행복복지센터에서 걸음을 멈추고 시민들을 만났다.

공단 인근에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황량한 느낌마저 감도는 공단 안 도로에서 선전 차량의 방송이 또렷하게 거리를 울렸다. 간혹 공단 내에 있는 회사에서 경비나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무슨 일일까’ 싶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빼꼼 내다보기도 했다.

▲한국게이츠 해고 노동자들이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대체로 시민들은 나눠주는 유인물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조립라인 대신, 사람들 앞에 선 해고노동자들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해 보였다. 시선은 부자연스럽고 때론 머뭇거리며 유인물을 건넸다.

해고노동자를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지나는 이들도 있었다. 선전물은 받았지만 내용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꼬깃꼬깃 접고 전화 통화에 몰두하는 이도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야채를 파는 노점상은 전단을 읽고 있었지만 ‘한국게이츠’ 사태를 잘 모른다며 입을 굳게 다물고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받은 홍보물을 그대로 길에 흘렸다. 한 해고노동자는 그를 뒤 따라와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을 주웠다.

받아든 유인물을 한 손에 들고 길을 가던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논공읍 달성공단 소재 회사에서 전자회로 기판 불량 검사를 하는 이 모(26) 씨였다. 이 씨는 “매일 출퇴근 때마다 한국게이츠 앞을 지나는데, 저게 내 일이 될 수 있겠다”며 “같은 노동자로서 동질감을 느낀다”고 자신의 뒤편에서 선전전을 하는 해고노동자들을 힐끗 쳐다봤다.

해고노동자들 상황에 공감···
정부 역할에 관해선 이견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의 상황에 공감하며 안타까움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논공중앙시장 주변 택시 승강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 김상덕(65) 씨가 그랬다. 김 씨는 “노조 책임자들만 남아 저렇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애처롭다”고 말했다.

잘 돌아가던 기업을 하루아침에 폐업하고 어디로 옮기더라도 직원들 (고용 승계를) 잘 해줬으면 하지. 공장 인근에 사는 지역주민으로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바로 여기에 있는 지역회사인데. 회사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폐쇄를 하고 정문도 막고… (저기서 일했던 사람들이) 한창 애들 교육비 들어갈 때가 아닌가요.

김 씨 옆에 있던 동료 택시기사 정순천(61) 씨도 손님을 태우고 하루에도 수십 번 한국게이츠 공장 앞을 지난다. 그는 “회사 앞에 농성 천막이나 현수막 같은 것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저 사람들은 저렇게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답보 상태인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가 법이나 이런 건 잘 모르겠어요. 회사랑 노동자끼리는 잘 중재가 안 되는 상황인 거잖아요. 그러니 정부가 나서야죠. 나서서 중재를 잘해서 해결을 위해 노력해줘야죠.

물론 안타까움과 별개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는 시민도 있었다. 유가읍 행복복지센터 앞에서 유인물을 받은 김 모(40대) 씨는 시와 정부에서 나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조가 저렇게 거리로 나와서 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벌써 폐업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라면서 “이미 폐업한 회사를 다시 운영하라고 해서 쉽게 재개가 되겠냐”면서 고개를 저었다.

▲해고노동자들이 한국게이츠 공장이 있는 달성군 달성산업단지에서 도보투쟁을 하고 있다.

서류에서 사라진 회사
사람들은 묻는다, ‘답이 있냐’고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한국게이츠’는 검색되지 않는다. 한국게이츠는 이제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회사다. 공장 앞에는 한국 게이츠 공장 폐쇄와 집단 정리해고를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길 양편으로 어지럽게 걸려 있다. 회사 정문 양편으로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천막도 있다. 지난해 6월 26일 한국게이츠는 흑자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폐업을 통보했다. 147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노조 집행부 등 19명이 남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뿐만 아니라 청와대, 미국 대사관, 국회, 현대차 본사, 울산 현대차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홍의락 대구시 경제부시장과 두 차례 면담도 했다. 대구시의회, 달성군이 공장 재가동을 촉구하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됐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사측은 반발하는 해고노동자들에게 3억 4,000여만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청구했다.

한국게이츠 공장 마당에는 회사에 있던 집기를 옮길 대형트럭이 세워져 있다. 폐업 절차를 위해 사무직 직원 몇 명도 매일 출퇴근을 한다. 해고노동자들은 공장 밖에서 상황을 지켜본다. 한국게이츠 오토텐셔너 조장으로 지난 18년간 일했던 정세헌(43) 씨에게 어려움을 물었더니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고노동자들은 한국게이츠 앞에서 6개조로 나눠 돌아가며 농성 천막을 지킨다. 천막 안에는 생활 집기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이들은 전기가 끊긴 천막에서 두꺼운 옷에 의지해 추위를 견딘다. 자체 발전기로는 온풍기 하나도 돌리기 어렵다.

오토텐셔너 조립라인에서 20년간 일했던 정민규 (51) 씨는 도보 투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해고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남들이 ‘답이 없는 싸움’이라고 하는데, 답을 만들어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고 말했다.

타이밍벨트 공정에서 12년간 일했던 황해원(43) 씨는 “지금 우리한테 있는 건 체력밖에 없다. 아직 걸을 만하다”면서 “대구시민들이 이 사안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지지해주시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 4일차 도보투쟁 일정을 마치고 회사 앞 농성 천막으로 해고노동자들이 모였다.

다음 달부터 실업급여 안 나올 듯
“시민 관심 있어야 이 사태 끝나”

장기화하는 투쟁에 해고노동자들의 건강과 경제적 문제가 우려된다. 위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송인환(46) 씨는 직접 도보 투쟁에 참여하기 힘들어 선전 차량 운전을 자청했다. 일반식을 먹지 못해 다른 동료들과도 함께 식사도 못 한다.

채붕석 한국게이츠지회장은 “이번 도보 투쟁은 대구 시민들에게 한국 게이츠의 참상을 알려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투쟁이 장기화하면서 동료들에게 우울감이나 패배감이 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실업급여가 8~9개월 정도 나오는데, 다음 달이면 끊길 것 같다”며 “그때부터는 생활고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채 지회장은 언론과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요청했다.

언론에서 많이 이 사태를 다루어 주셔서 한국게이츠에 관해 아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다만 여전히 노조 자체를 오해하시는 부당한 시선이 여전히 느껴져요. 연예인들의 사소한 일은 수십 건씩 기사가 쏟아지잖아요. 외국 투기자본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어요. 우리 전체 사회와 관련된 더 중요한 일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도보 투쟁은 평일 11일간 대구 곳곳을 누빈다. 오는 16일 범어동 대구고용노동청에서 일정을 마칠 예정이다. 주말에는 동성로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1만 서명도 받는다. 서명은 온라인으로도 병행하고 있다. 해고노동자들은 받은 서명을 통해 권영진 대구시장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