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이 뭐길래···매일신문과 샤를리 에브도의 차이

2010년 이후 언론계 만평 논란의 두 갈래
권력자 비판을 수용 못 한 지지자의 반발이거나
약자·피해자 풍자 소재로 삼아 논란 자초해

14:40

2015년 1월 7일 오전 11시 30분께 괴한 두 명이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를 찾아 총을 난사했다. 그 자리에서 잡지사 직원 10명과 경찰 2명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만평 작가 4명도 포함됐다. 괴한들은 이슬람계 프랑스 국적자 사이드 쿠아치와 셰리프 쿠아치 형제였다. 샤를리 에브도가 그간 그려온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만평에 대한 반발감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이들은 ‘순교자가 되겠다’며 경찰과 총격전 끝에 사살됐다.

‘만평 때문에’ 벌어진 총기 테러는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옮겨붙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폭력적 테러리즘을 배격하는 ‘나는 샤를리다’는 구호가 등장했고, 반대편에선 표현의 자유도 한계가 있다는 의미를 담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는 구호도 나왔다.

▲샤를리에브도의 만평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희화화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를 비판한 <매일신문>
“풍자는 그 본질상 조롱과 모욕”

<매일신문>도 해당 사건을 다뤘는데, 주로 오피니언을 통해서였다. 논설위원이 쓰는 ‘야고부(野鼓賦)’를 통해서 2015년 1월 10일, 12일 잇따라 다뤘고, 이후 외부 필진도 글을 실었다. 야고부를 통해서 드러나는 건 <매일신문> 역시 적어도 논설위원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비판하는데 입장을 모았다는 점이다.

1월 27일 ‘세풍’이라는 다른 오피니언을 통해서는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비판하는 글도 실었다. 세풍도 야고부와 마찬가지로 논설위원이 쓴다. 해당글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진영은 ‘테러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지만’이란 전제를 깐다. 그야말로 ‘피음사둔'(皮淫邪遁, 번드르르한 말)”이라며 “어떤 것이 풍자이고 어떤 것이 조롱이며 모욕일까. 풍자는 그 본질상 조롱과 모욕이다. 조롱과 모욕이 빠진 풍자는 풍자가 아니“라고 일갈했다.

‘풍자는 그 본질상 조롱과 모욕’이고 ‘조롱과 모욕이 빠진 풍자는 풍자가 아니’라는 일갈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현재, <매일신문>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을 해석하는 다양한 필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한 컷, 많아도 네 컷으로 축약해 주제를 드러내는 만평의 특성상 풍자는 필수요소다. 그러므로 ‘만평은 그 본질상 조롱과 모욕’이라고 바꿔말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핵심은 그 조롱과 모욕의 대상에 있다. 역사적으로 풍자를 통한 조롱과 모욕은 권력자를 그 목표로 했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 국가의 헌법적 가치로 인정되고 풍자적 표현이 자유로운 권리로 인정될 수 있는 것도 그런 배경 아래에서다. 직접 비난했다간 바로 목숨을 잃을 처지에 있는 약자들이 풍자를 통해 권력자를 비판했다. 우리나라 만평이 군사독재 시절 가장 부흥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1

물론 <매일신문>도 29일 새로운 사과문을 내놓기 전까지 이번 만평이 권력자를 목적으로 한 풍자라고 항변했다. 지난 21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조세정책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강도로 비판한 것”이라며 “매일신문이 일관되게 현 정부에 대해 너무 뼈아픈 비판”을 해왔다고 강변했다.

목적이 권력자, 정부를 향한 풍자에 있다는 <매일신문>의 항변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매일신문>은 풍자의 소재가 된 이들이 권력과 거리가 너무 먼 약자이고 시민, 나아가 권력에 의한 피해자라는 점을 간과했다. “누군가의 고통이 우리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매일신문 노조의 반성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2010년 이후 언론계 만평 논란의 두 갈래
권력자 비판을 수용 못 한 지지자의 반발이거나
약자·피해자 풍자 소재로 삼아 논란 자초해

미디어 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 보도를 통해 2010년 이후 국내 언론계에서 만평으로 인해 벌어진 논란을 살펴보면, 양상이 두 가지 갈래로 구분된다. 하나는 권력자를 향한 비판을 그 지지자들이 수용하지 못해 일으키는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소재로 삼은 대상이 약자이거나 피해자여서 벌어지는 논란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2014년 손문상 화백이 <프레시안>에 게재한 만평이다. 손 화백은 그해 9월 26일 “공주님, 개 풀었습니다”는 만평을 게재했다. 만평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닭으로 묘사했고, 보수단체에서 이를 두고 명예훼손이라고 고발했다.

▲<프레시안>이 지난 2014년 게재한 만평.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엔 <한국일보> 만평이 논란이 됐다. 그해 11월 18일자 만평이 논란의 대상이 됐는데, <한국일보>는 ‘소통’이라 적힌 경찰 물대포가 커다랗게 그려진 경찰의 귀를 향해 물을 쏘는 만평으로 정부의 소통 부재를 꼬집었다. 그런데 애초 온라인을 통해 하루 먼저 공개된 만평에선 경찰 자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는 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대통령이 경찰로 바뀐 경위는 알 수 없었다.

구분하자면 샤를리 에브도의 사례는 전자에 해당한다. 반면 <매일신문>은 그들이 밝힌 입장문에 근거하면 자신들의 사례도 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외부, 특히 오월단체의 반발을 볼 때 후자에 해당한다. 광주 오월단체(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가 22일 함께 내놓은 성명은 “만평의 목적은 국정 비판이라 보이지만, 이를 접한 광주 시민들은 41년 전의 고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2017년 <한겨레> 만평이다. <한겨레>는 그해 6월 14일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옛 국민의힘)의 과도한 반대를 지적하는 만평을 실었는데, 그 소재가 논란을 일으켰다. <한겨레>는 같은 달 8일 경남 양산에서 아파트 외벽 청소노동자의 생명줄을 아파트 입주민이 잘라버려서 사망한 사건을 가져와 칼을 든 이를 자유한국당으로 비유했다.

▲<한겨레>가 지난 2017년 게재한 만평.

만평이 공개된 후 사망한 노동자 유족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만평을 그린 권범철 화백이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권 화백은 “유가족의 아픔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만화적 표현에 상처받는 분이 없는지 각별히 살피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2015년 12월 22일 만평을 통해서도 논란을 빚었는데, 이번에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혐오적 표현이 구설에 올랐다. 만평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옛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 당시 의원이 호남 기반 국회의원과 연합해 호남 민심 잡기에 나선 상황을 풍자했다. 만평은 안 전 의원을 여성으로 표현하고 상단에 “홧김에 서방질”이라는 표현을 써넣었다. 굳이 남성인 안 전 의원을 여성으로 표현하면서 성차별적 속담을 사용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한겨레>는 2015년 9월에도 여성 혐오 만평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때는 지면 인쇄 직전에 해당 만평을 자체적으로 삭제하면서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논란까지 빚었다. 문제의 만평은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킨 남성 잡지 표지를 패러디하면서 빚어졌다. 담배를 손에 든 남성 뒤로 여성의 다리가 삐져나와 닫히지 않은 차량 트렁크를 배경으로 한 표지였다. 여성 납치·살해를 연상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한겨레>는 표지의 설정을 그대로 두고 등장인물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바꿔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정책을 비판하려 했다.

지난해에는 경기·인천 지역신문 <중부일보> 만평이 논란이 됐다. 지난해 5월 26일 <중부일보>의 “윤미향도 싫지만”이라는 제목의 만평은 물에 빠진 할머니가 “내 보따리 내놔···그리고 국회의원 되는 꼴 눈 뒤집혀 못 보겠다”며 배 위에 있는 여성을 끌어당기는 모습을 그렸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인권운동가를 두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배은망덕’한 이로 묘사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중부일보>는 논란이 일자 온라인에서 해당 만평을 삭제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매일신문>의 만평(제일 왼쪽)과 과거 만평들.

나열해 놓고 보면 풍자의 목적은 정치 권력이었지만, 굳이 추락 사망 피해자를, 굳이 여성 납치·살해 피해자로, 굳이 위안부 피해자를 등장시키거나 비유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이번 <매일신문>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굳이 5.18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를 등장시키고, 당시의 잔혹했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부적절한 풍자를 했다는 것이 비판의 가장 큰 이유다.

이번 일로 끄집어내진 <매일신문>의 다른 문제적 만평도 마찬가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세월호 참사에 빗대어 표현한 만평이나, 학교 폭력 피해자를 저격수로 묘사한 만평, 마찬가지로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만평은 모두 동일하게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롱과 모욕만 남았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1. “5.16쿠데타 이후 군부독재 시절에는 무소불위 정치권력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로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1980년대 이후에는 만화가 젊은 독자층에 익숙하며 선호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점에서 독자 화보 차원에서 신문 만평이 강화된 경험도 있다. 그러던 한국의 신문 만평은 민주화 이후 조금씩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진수. ‘신문 만평의 위기···’한겨레그림판’ 사태를 중심으로’. 관훈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