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끝나지 않았다] 1991년 봄, 기억을 넘어 실천으로

30년의 시간이 지났다. 20대 푸르렀던 꿈이 시들해지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등굣길 울먹이며 소리치던 선배의 모습. 91학번 새내기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고 소리쳐 외치던 모습. 어떻게 시위하는 대학생에게 경찰이 쇠파이프를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당시 대학에서도 학내 민주화운동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여서 강경대열사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데 강경대 열사 죽음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김기설, 박창수, 윤용하, 이정순, 정상순, 김철수, 김귀정, 그리고 몇 달 후 손석용 열사의 분신까지. 1991년 봄은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는 해였다.

▲1991년 시위 도중 경찰 폭행으로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의 노제 모습.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라 투쟁한 열사들. 당시 정권과 언론은 열사들의 죽음을 왜곡했다. 정권은 안동대학교 김영균 열사의 분신 배후로 ‘반미애국학생회’라는 것을 조작하여 10여 명의 학생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했다. 전민련 김기설 열사 유서를 대필했다는 터무니 없는 혐의로 검찰은 강기훈 씨도 구속했다.

김지하, 박홍 등을 내세워 분신 배후세력 운운하며 당시 열사들의 죽음을 왜곡하고 폄훼했다. 강기훈 씨는 24년만에 유서대필이라는 조작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공안검사들은 조작에 대한 처벌은 커녕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고, 고위직이 되어 또 다른 음모와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1991년은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성장한 민주 세력에 의해 극단으로 몰린 군부독재 세력이 수구 세력, 군부 잔당과 야합하여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하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시기였다. 당시 3당 합당으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노태우 정권은 노동운동, 통일운동,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자행하며 공안정국을 지속 시켰다.

노태우 정권에 맞서 각계각층에서는 독재 타도, 해체 민자당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고 있었으며 경찰 폭력에 의한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의 죽음은 전 민중적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1991년은 독재세력의 연장이냐 이듬해 대통령선거에서 87년의 실패를 극복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느냐 하는 결전의 시기였다.

열사들의 죽음을 각오한 투쟁과 반독재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투쟁은 6월 노태우 정권의 내각제 포기선언을 이끌어 냈고, 각계각층 민중들이 전국적 단위로 조직을 재편하고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투쟁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그 투쟁 과정에서 너무 많은 동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보아야 했던 아픈 시대였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 그 승리를 공유했던 사람들에게 1991년은 아직 트라우마로, 실패한 투쟁으로, 책임감과 부채감이 청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1991년 5월 4일 노태우 정권 퇴진과 백골단 해체 요구 가두시위 모습.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 세대가 지나갔다. 3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1991년에 대한 기억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 더이상 아픈 과거로, 트라우마로 남겨둘 수는 없다. 이제 다시 1991년을 직면해야 한다. 1987년의 실패를 딛고 반격해 오는 수구·군부독재 세력의 반혁명에 맞서 전 민중이, 열사들이 죽음으로 맞선 1991년의 봄이었다. 1991년은 1980년 5월의 투쟁, 1987년 6월의 연장선에서 기억되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1991년 5월은 새로운 대중운동의 지평을 연 분기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열사들의 투쟁을 이어 그해 12월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이라는 단일 전선조직이 출범하였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전국빈민연합, 소위 6전이라고 불리는 계급계층별 조직이 상설적인 전국조직으로 출범하였다. 이는 당시 열사들과 각계각층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었고, 이후 민주주의와 조국 통일을 이루겠다는 열사정신 계승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의 투쟁은 운동진영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시민, 환경, 여성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운동을 조직하고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한 대중적인 활동으로 운동의 영역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87년처럼 직선제개헌과 같은 결과물을 쟁취해 내지는 못했지만, 1991년의 열사 투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통일운동, 시민사회 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 해로 새롭게 평가되고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1991년의 재조명을 위해 ‘1991년 열사투쟁 30주년 대구·경북준비위원회’는 올 한 해 대구·경북 시·도민들과 함께 열사들을 추모하고, 2021년 열사정신 계승과 우리에게 남겨진 실천과제-자주, 평등, 평화통일-를 함께 실현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임성종 1991년 열사투쟁 30주년 대구·경북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공동대표

1991년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열사 투쟁 30주년을 맞아 투쟁을 재조명하고 계승하는 사업이 준비되고 있다. 대구경북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는 그 일환으로 당시를 겪고 기억하고, 계승하는 이들의 연속 기고를 <뉴스민>에 보내왔다. 1일부터 격주 목요일에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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