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 ‘다름’으로 빚어진 학살 위에 선 도시, 몬테데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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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우루과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너무 멀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 우루과이! 내가 좀 잘 알지. 거기서 월드컵이 최초로 개최되었어! 축구의 나라!”라고 말하겠죠.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세무히카 대통령이 있는 나라예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청렴한 대통령”이라고 할거구요.

▲우루과이 몬테데비오 상공에서. (사진=박민경)

90년대를 인식하는 세대에게는 우루과이 라운드로 기억되는 국가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하튼 대한민국의 대척점(지구의 정 반대편)에 존재하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도착하던 날은 하필이면 한국의 유영호 작가님이 그리팅맨을 공개하던 날이었고, 지역에서도 큰 행사로 홍보되고 있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그리팅맨과 한국의 그리팅맨이 서로 마주 보고 인사를 시작하는 날이라 멀리 한국에서 온 손님에 대한 환영도 극진했었건만, 문제는 그만 현지에서 권총 강도를 당했던 것이죠. 가진 것을 홀라당 털리고 대사관 보호를 받으면서 무비자로 갈 수 있는 국가를 찾아 비행편을 예약하느라(여권과 비자도 분실했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대사관 근처 래디슨호텔에서 꼼짝도 못하고 묶여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도저히 이제 겁이 나서 밖을 다닐 수가 없더라구요.

밖에 나가기도 무섭고, 딱히 할 일도 없으니 호텔방에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관광 안내 책자라도 잡아 읽게 되더라구요. 한 번 책을 손에 잡으니 그 어느 영어교과서 보다도 열심히 읽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책에는 우루과이의 지명 유래와 역사, 인구 같은 것들이 설명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루과이 인구 구성상 백인이 98%에 달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남미 국가(라틴아메리카 중심)의 사람들의 모습은 갈색의 피부색을 가진 이들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 선주민 역시 인디오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죠.

게다가 우루과이는 국토 전체가 거의 대부분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스페인 점령군들이 우루과이로 왔을 때 산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지점에 다다르니 나지막한 산 같은 게 보이길래 “어, 저기 산 보인다” 했던 곳이 수도가 되고 수도명이 몬테비데오(MonteVideo:스페인어로 산이 보인다)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즉, 스페인 정복자들은 높은 말에 올라타서 수많은 우루과이 땅의 원래 주인이던 사람들을 손쉽게 학살해버릴 수 있었던 겁니다. 남미에 흔한 그 위험한 밀림도, 깊은 강도, 높은 산도 존재하지 않은 신이 내린 축복이 땅이 선주민들에게는 끔찍한 학살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죠.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들을 죽인 이유는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종이 다르니, 우리와 같지 않으니 없어져야 할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현존하지 않는 잠재적 위험으로 설정되었고 실존하지 않지만 존재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되어 그들에게 학살의 빌미를 제공했을 겁니다.

현존하지 않은 위험을 설정하고, 만들어 두려워하고 있는 경우가 역사 속에서 자주 반복됩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도 그러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 자부하는 우리도 평양 화교학살을 저질렀죠.

21세기라고 해서 다름에 대한 학살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과거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의 용병으로 미얀마 독립군을 탄압했던 로힝야족이 지금은 학살의 대상이 되었죠. 학살의 가해자이자 방조자는 바로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인 아웅산수찌입니다.

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는 존재하지 않은 위험을 설정한 후 두려움으로 몰아 ‘다름’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 신촌역에 있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말자는 내용의 광고판이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난도질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성소수자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도 또 다른 개인적 의견일 수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차별하는 것도 자유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뭐 학살까지 논할만한 것이냐라는 의견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떠한 혐오와 차별도 자유 의견일 순 없습니다. 그것은 폭력의 다른 형태일 뿐이죠. 나와 ‘다름’으로 ‘이상’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역사적 상황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이 그랬고 ‘왼손잡이’가 그러했고 ‘혼자 사는 돈 많은 여성’ 혹은 ‘의학지식이 풍부한 여성’은 그것 자체가 이유가 되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죽음까지 당연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학살의 대상이 된 유대인과 조선인, 화교와 로힝야족 모두 처음부터 학살의 대상이 된 건 아니었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은 혐오로 발전하고, 그 혐오는 흑백 분리나, 유대인 수용소 같은 차별정책으로 이어지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 범죄가 당연시 되고 최종적으로는 학살(제노사이드)로 이어지는 것이죠.

▲우루과이 몬테데비오에 서 있는 그리팅맨(사진=유영호 작가 페이스북. ※사진은 작가 동의를 거쳐 사용)

다름이 차별이나 혐오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는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싶습니다. 지구 저 반대쪽에, 비행기를 두 번, 세 번이나 갈아타고 40시간이나 가야 했던 우루과이의 수도에는 여기 서울에서 반갑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는 그리팅맨이 똑같이 서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지구 어느 곳곳에 그런 그리팅맨들이 늘어나고 있을 것이구요.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

[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는 비정기적으로 뉴스민에 칼럼 <인권 돋보기>를 기고한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가 시도하는 정기 기고다, 인권의 관점에서 그가 방문했던 여러 도시를 톺아보는 이야기를 격주 금요일에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