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소셜포비아’

15:26

한 군인의 자살 사건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온라인에서 댓글로 애도가 전해지는데, ‘레나’라는 아이디의 네티즌 하영(하윤경)이 심한 악성 댓글을 남긴다. 하영의 군인 비하 댓글은 온라인을 시끄럽게 달군다. 분개한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에서 하영과 설전을 벌인다. 급기야 인기 BJ 양게(류준열)와 몇몇 남성들은 의기투합해 하영의 집으로 몰려간다. 여기에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도 포함돼 있다.

하영과 실시간으로 설전을 벌이며 하영의 집 앞에 도착한 남성들은 하영의 목맨 시신을 마주한다. 모든 순간은 양게의 노트북을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되고, 일행은 살인 용의자가 됐다. 시신과 맞닥뜨려도 신고는커녕 온라인 흔적부터 지우고, 사람의 죽음 앞에서 죄책감보다는 전국적인 화제의 인물이 된 것에 재미를 느낀다. 이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전하던 네티즌들은 비난을 퍼붓는다.

양게 일행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지만, 자신들 가운데 살인범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지웅은 경찰 시험에 불이익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는데, 용민은 경찰 특채를 목표로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둘은 함께 하영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파헤쳐간다. 섬뜩함과 찝찝함이 느껴지는 건 살인범을 잡기 위한 자체 현장검증을 한다며 생중계되는 방송에서도 킬킬거리는 이들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하영이 유명 ‘키보드 워리어’ 베카라는 게 밝혀진다. 하영에게 걸려 망신을 당하거나, 신상이 털린 이들이 많고 하영은 이들에게서 원한을 샀다. 하영에게 당한 이들이 하영의 집에 찾아갈 때 합류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한 명씩 범인으로 몰린다.

처음 범인으로 지목된 장세민(전신환)은 하영과 싸웠던 게임 카페 스타게이트 운영자였던 도더리를 진짜 범인으로 몬다. 도더리는 용민이었다. 이미 용민은 하영에게 신상이 털려 카페가 망하고 일상생활이 힘들어져 학교를 그만두고 개명까지 한 상태다. 용민은 망연자실하게 하영이 죽을 당시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다. 사건 당일 하영은 양게가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영상을 통해 남성들이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을 보고서는 삶을 포기한 듯 노트북 랜선을 뽑아 목을 맨다.

양게를 비롯한 남성들은 용민을 범인으로 몰면서 괴롭힌다. 용민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서 양게 일행과 네티즌은 용민을 몰아세우는 것 자체를 즐긴다. 지웅의 제지로 상황은 일단락된다. 이후 용민은 노량진을 떠나고, 지웅은 경찰 시험 2차에 합격한다. 도더리 사건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지만, 인기 걸그룹의 스캔들로 인해 금방 묻힌다. 지웅은 독백한다. “인터넷에는 아직도 민하영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소셜포비아(2015년)>는 홍석재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영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패배한 선수를 비하한 네티즌 ‘회손녀’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온라인은 분노 여론으로 들끓었고 회손녀의 신상 정보가 유출됐다. 회손녀를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온라인상에서 그를 공격하던 몇몇 남성들이 실제로 회손녀의 집 주변을 찾아가 위협하는 일이 있었다.

실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당시에는 서로 안면이 없는 이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벌인다는 점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이는 군중의 움직임이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 지금에 와서는 미래를 내다봤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있다고 언급되는 사람을 타겟팅해서 다들 달려드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문제 당사자의 신상을 터는 일을 가볍게 여기고,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넣을 정도로 서로에게 극단적으로 상처를 주는 일들이 일어난다.

영화 속 비극은 영화 속만의 일이 아니라서 더 섬뜩하다. 지금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안면도 없는 사람에게 격분하는 이유는 뭘까. 이장주 중앙대 심리학과 겸임교수는 “현실에서 아는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 어려운데 이는 관계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계의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볼 일이 있다는 의미다. 인터넷의 경우는 관계의 역사가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기 때문에 흥분된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운 건 아닐까.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