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역사] 1634년, 안동 김씨와 권씨의 혼인을 성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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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7일, 여성가족부는 2025년까지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하는 ‘부성父姓 우선 원칙’을 폐기하기로 했다. 부부의 협의를 통해 자녀는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무조건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한 ‘부성 강제 원칙’은 2008년에 폐지되었지만,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우선 원칙’도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부계 중심으로 가족을 ‘우선 구성했던 원칙’이 폐기되자, 모 신문은 “출생신고 때 엄마 성姓 따를 수 있게 법 바꾼다”고 헤드라인을 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반면, 이 기사의 댓글에는 전통 가족 체계를 무너뜨리는 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2005년 3월 31일, 민법 제809조가 개정되었다. 그 이전에 동성동본으로 가정을 이루었던 사람들을 위해 한시적으로 몇 번 동성동본의 혼인신고를 허가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날 민법 개정이 발효되면서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다. 8촌 이내 혈족만 아니면 동성동본의 결혼도 선택 가능한 선택지가 되었다. 당시 특히 유림 단체 등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깨어진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기도 했다.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때 같은 조상을 가진 혈족끼리는 안 된다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

387년 전인 1634년 음력 3월 20일, 봄기운이 완연해 지면서 지역에서 많은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예안(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일대)에 사는 김령金坽은 평소 친하게 지냈던 판관 김시추金是樞와의 술자리에서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 집안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원래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는 고려 건국 때 공을 세우면서 ‘받은 성씨’로 그 이전에는 모두 김해 김씨였다. 그래서 당시까지도 이 두 집안은 서로를 같은 혈족이라고 생각하여, 혼인을 꺼렸다. 그런데 얼마 전 두 집안 사이에 혼인이 이루어졌고, 이를 들은 김시추는 술자리에서 이를 강하게 성토했다. 고려 건국 이후 갈라진 혈족이라 하더라도, 그 윗대의 조상이 같다면 혼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역시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 관계와 같다.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은 허씨 성을 부인으로 두었다. 당시 수로왕은 첫째 아들이 자신의 성을 잇도록 했고, 둘째 아들은 왕비의 성인 허씨를 따르게 했다. 이러한 건국 신화에 따르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사실상 모두 수로왕의 자손이다. 동일 혈족은 혼인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야 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까마득하게 먼 시기의 연원도 그러한데, 고려 개국기에 형성된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는 말해 무엇했을까 싶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가족 공동체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족은 흔히 사람이 태어나면서 저절로 속하게 되는 최초의 자연 공동체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을 이루는 생물학적인 조건을 차치하고 나면, 가족 구성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자신을 위한 감정’이 아닌, ‘타인으로 인해 타인을 아끼고 좋아하는 감정’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부모 자식 관계는 ‘자신의 생명까지 버릴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유학적 도덕 원리를 강조했던 맹자는 여기에서 도덕 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했을 정도이다. 이러한 감정이 가족을 넘어 공동체 속에 속한 사람들까지 확장되면, 이타적 감정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도덕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양, 특히 유학에서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가족 공동체의 이념은 가족 관계 형성의 전제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특히 동양은 가족으로 구성될 수 없는 조건 역시 오랜 문화적 관습으로 만들어왔다. 대표적인 게 바로 동일 혈족끼리의 결혼을 금하는 것이었다. 혈족 간에 결혼을 금했던 근거는 원래 유전적 이유였던 것 같다. 실제 고대 씨족 사회의 경우에는 혈족 간의 결혼이 빈번했고, 혈연의 신성성을 중시했던 사회에서는 친족 간 혼인을 통해 혈연적 순수성을 유지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가까운 근친간의 결혼은 우생학적 문제를 발생시켰고, 이는 혈족 간의 결혼을 금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우생학적 문제가 발생하는 범주는 매우 좁은 데 비해 이 근거를 기반으로 한 이념은 ‘넓은 범위의 혈족’까지 결혼 금지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넓은 범위의 혈족까지 ‘이념적 가족’으로 인식한 결과였다.

동성동본 금혼은 이렇듯 ‘넓은 범위의 혈족’ 개념에 바탕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상관없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으면 ‘이념적 가족’ 범주에 들었다. 이는 ‘폭넓은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는 이론적 토대였고,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공동체를 기반으로 자기 존재 및 타자와의 관계 방식을 규정했다. 공동체 간에 위계도 존재했고, 공동체 내 개인 역시 공동체 내에서의 위계에 따라 자기 존재가 규정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동본의 동성 공동체는 그 친밀도만큼 강한 공동체를 구성하려 했고, 이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에게 내적인 억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더불어 공동체 밖에 있는 타성의 타자에 대해서는 강한 배타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타성은 동일 공동체 내 타성인 여성에게까지 동일하게 적용될 정도였다.

2021년 5월, 우리는 어떤 가족 공동체를 구성해야 할까? 적어도 먼 조상이 같은 혈연까지 ‘폭넓은 가족 공동체’로 인식하는 제도는 하나둘 폐지되었거나 될 예정이다. 근래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인 ‘이타적 감정(사랑)’의 대상은 이제 굳이 혈연으로만 한정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고, 심지어 먼 친족보다 반려동물이 더 가족 개념에 가까워졌다. 전통적 개념의 가족 공동체 유지는 특별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가족 형태들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성동본 금혼에 찬성하고, 부계 중심의 성으로 이어지는 남성 중심의 가족 공동체를 관습이라는 이유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가족 공동체 내에서마저 타성의 여성에 대해 동성의 가족들이 차별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언론에 오르내린다.

사회는 변했고, 새로운 가족 구성 원리들도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특히 개인의 존재가치가 공동체 속에서 확보되던 시대가 지나면서, 개인의 존재 가치에 바탕을 둔 새로운 가족 구성 원리도 만들어질 것이다. 387년 전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의 결혼이 놀라운 사건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점점 더 새로운 가족 구성체와 그 원리에 대해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친밀한 가족을 강조하면서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타적인 태도도 함께 늘어나는 점은 걱정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타자를 차별적이고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적 친밀성과 외적 배타성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새겨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다른 듯, 같은 역사>는 달라진 시대를 전제하고, 한꺼풀 그들의 삶 속으로 더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삶은 참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네”라는 생각을 기록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으로 기획된 것이다. 이 원문은 일기류 기록자료를 가공하여 창작 소재로 제공하는 한국국학진흥원의 ‘스토리 테파마크(http://story.ugyo.net)’에서 제공하는 소재들을 재해석한 것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우리의 현실들을 확인해 보려 한다. 특히 날짜가 명시적으로 제시된 일기류를 활용하는 만큼, 음력으로 칼럼이 나가는 시기의 기록을 통해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