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폭 2세 피해자 김형률 추모제

17:48

“고인에게 고한다. 원폭 역사 75년에 저희들이 하고 있는 게 부끄럽지만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바뀌어도, 정치가 바뀌어도 왜 이렇게 원폭 피해자는 방치해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폭 피해자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알맹이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75년 전에 국가가 요청해서 강제로 끌려가서 그 극한 고생을 하고 맞아도 항의하지 못하고, 죽어도 이의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대통령이 왜 원폭 피해자들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지 국가가 의심스럽다. 원폭을 투하한 미국에도 항의할 수 있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도 항의할 수 있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울분을 토했다. 심 지부장은 2000년대 초반 김형률 씨를 처음 만났다. 김형률 씨는 200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원폭 피해자 2세임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후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활동에 매진하다 2005년 5월 29일 평소 앓던 질환이 악화돼 숨을 거뒀다.

29일 오후 3시 경남 합천 원폭자료관 앞 마당에서 ‘한국 원폭 2세 피해자 김형률 1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김 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한국원폭2세환우회 주관으로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열리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도 함께 추모제를 주최한다.

추모제에는 김 씨의 형을 비롯해 원폭피해자 단체 관계자와 최봉태 변호사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김 씨 사후 아들의 뜻을 이어 다양한 활동을 해오던 김 씨의 부모님은 최근 건강이 나빠져 참석하지 못했다.

▲고 김형률 16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김태훈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후손회가 올해부터는 님(김형률)을 기리는 행사를 하려고 한다”며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특별법 제정을 위해 애쓴 김형률님 노력은 헛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았다. 남은 우리들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김형률님 영령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후손회에서는 님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심진태 지부장은 “우리는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이 전쟁이고, 후쿠시마 핵폐기물을 일본이 방류한다고 한다. 그것도 전쟁”이라며 “그런데 그것을 막지 못한다. 원폭 피해자들을 일찍 국가가 조사해서 관여를 해왔다면 그런 장난질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 지부장은 “우리는 핵을 맞은 사람이다. 일본도 맞았지만, 우리와 같을 수 없다. 그들은 전쟁을 일으켰고, 우린 일으키지 않았다”며 “한국이 원폭 피해자다. 그런데 정치 지도자들이 그걸 모른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오점”이라고 덧붙였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김 회장과 심 지부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추모사를 듣고, 부산평화와통일여는사람들 회원들의 추모공연, 헌화 등의 순으로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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