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된 대륙이 수탈한 사람들

마푸체 민족사를 통해 들여다 본 세계사 (1)

10:51

우루과이의 이름난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가 201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갈레아노가 쓴 책들은 라틴아메리카를 국제 제국주의와 그 제국주의와 손잡은 라틴아메리카 내부 부르주아들에 끊임없이 시달려 제대로 된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외세에 종속당해 온 대륙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갈레아노의 책들을 통해 그런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한 번 쯤은 읽어 봤을 책 『수탈된 대지: 라틴아메리카 500년사』로 말입니다.

저도 그 책을 읽고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 여러 사람들 중 한 사람입니다. 라틴아메리카는 수탈의 역사를 기억하는 대륙이며 그 수탈은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인식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갈레아노의 책을 읽은 지 1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갈레아노 외에도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많이 듣고 따라 불렀던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의 노래도 처음 제 생각에 영향을 많이 끼쳤습니다. 특히 칠레 선주민족 중 하나인 마푸체* 민족의 고난을 이야기한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아라우코 띠에네 우나 뻬나(아라우코는 괴로워하고 있다)”는 제가 마푸체 민족에 대한 책과 글을 읽고, 결국에는 칠레에까지 와서 마푸체 민족을 직접 찾아서 만나보게 된 가장 큰 계기라고 하겠습니다.

▲전통 북인 쿨투룬을 들고 시위에 참가 중인 마푸체 여성. [사진=flick]
▲전통 북인 쿨투룬을 들고 시위에 참가 중인 마푸체 여성. [사진=flick]

그러면서 칠레 아옌데 정부가 선주민족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했는지를 살핀 작은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희생자라는 라틴아메리카 칠레 아옌데 정부와 마푸체 민족의 고난사를 함께 다룰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작디작은 글이지만 그 글을 쓰면서 한 온갖 잡다한 글과 책, 저 스스로 한 생각들은 저의 “이 대륙”에 대한 생각을 상당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갈레아노를 더는 역사가로서는 믿지 않게 되었고,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에서는 파라가 살았던 때 선주민족이 아닌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의 한계를 읽게 되었습니다. 근현대 세계사의 한 면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칠레의 영토 확장과 거기에 얽힌 사회사를 통해 저는 마푸체 민족에게서 “수탈된 대륙이 수탈한 사람들”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도 위에서 보는 이 대륙의 탄생부터가 선주 민족들을 희생 제물로 삼아 정복지의 유럽계 식민주의자들이 이뤄낸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라틴아메리카는 수탈의 역사를 기억하는 대륙이었고, 이는 세계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만, 늘 희생자로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마푸체 민족이 근현대에 겪은 고난의 가해자는 작게는 칠레 민족주의, 크게는 라틴아메리카주의(Latinamericanismo)였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칠레, 라틴아메리카, 나아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복잡다난한 이야기를 풀어가며 여러분과 함께 현대 라틴아메리카사와 세계사, 나아가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기회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푸체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원주민 민족. 마푸는 땅, 체는 사람 또는 사람들을 뜻하므로 마푸체란 땅의 민족 쯤 되겠다. 칠레에는 아라우카니아 주에, 아르헨티나에는 네우켄 주에 많이 살고 있다. 물론 도시에 사는 마푸체도 많다. 아라우코족이라고도 한다. 이는 점토(라우)물(코), 즉 라우코(점토 물)란 지명에서 나온 말이다. 경멸하여 아우카(Auca, Awqa)라 하기도 했는데 아우카는 잉카 지배층의 언어, 즉 루나시미(케추아어)로 ‘야만인’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