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안학살 50년, 사과하는 한국인에 박수 보낸 베트남

[빈안학살 50주년 평화기행] ② 성찰의 시작은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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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5 10:41 | 최종 업데이트 2016-03-05 10:42

[편집자 주] 1966년 베트남 빈딘성 빈안에서는 1,004명의 주민이 학살당했다. 그 중 고자이에서는 불과 한 시간 만에 38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16년, 2월 24일 한국인 32명은 빈안마을로 떠났다. 한국군에 의한 학살이 일어난 이곳에서 열리는 위령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다.?2월 24일부터 3월 1일까지 진행된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 참배 베트남 평화기행’에 <뉴스민> 김규현 기자가 동행했다. 학살의 마지막 날인 2월 26일 열리는 위령제와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의 기록을 담고자 한다.

[빈안학살 50주년 평화 기행]①닫을 수 없는 과거:제주4·3 피해자 유족,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마주하다
[빈안학살 50주년 평화 기행]②성찰의 시작은 사과다

다리 위 알록달록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다리를 지나 물소떼가 물을 먹는 강변을 한참 따라가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베트남 빈딘성?따이빈사. 마을의 원래 이름은 ‘빈안’이었다. 베트남말로 평화롭고 평온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1965년 이후 빈안마을은 평화로움과 멀어졌다. ‘따이빈’은 베트남어로 서쪽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슬픔의 영광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평온했다. 닭 무리가 주민들과 함께 걸었고, 강을 바라보며 수다를 떠는 이들도 있다. 거름 냄새가 마을의 평온함을 더해줬다.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씨로부터 마을 이름이 바뀐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를 ‘런 아저씨’라고 불렀다.

평온한 마을 ‘빈안’의 이름이 바뀐 이유
“용서를 유보하는 것은 진실이 덮여서는 안 되기 때문”

26일 오후, 평화기행단이 런 아저씨 집에 도착한 이 날은 50년 전 한국군 맹호부대가 마을을 떠난 날이다. 깃발이 펄럭이던 다리는 맹호부대가 마을을 드나들던 길이었다고 한다. 1966년 음력 1월 23일,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빈딘성에서 마지막 민간이 학살이 일어난다.

베트남 전쟁 최대 민간인 학살로 꼽히는 ‘빈안학살’. 베트남 정부는 빈안에서만 1,004명이 학살됐다고 공식 보고하고 있다. 맹호부대가 한 달여간 주둔하는 동안 15개 지역에서 학살이 일어났고, 특히 고자이에서는 1시간여 동안 380명의 주민 모두가 학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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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안학살 위령 제단, 당시 학살 모습을 벽화로 그렸다.

당시 런 아저씨는 15살이었다. 총소리가 가까워져 오자 주민들은 집집이 방공호로 몸을 숨겼다. 방공호 밖 군인들이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고 한다. 손짓을 따라 끌려간 곳에는 이미 20여 가구가 모여 있었다. 군인들은 절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다.

“저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어떤 외침소리가 있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기관총, 권총 모든 총기가 저희를 향해 발사됐어요. 포연이 가득했는데 그래도 보였습니다. 팔이 잘려나가고, 다리가 잘려나가고, 머리가 터졌고, 작은 아이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엄마가 여동생과 저를 꽉 끌어안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수류탄 하나가 발뒤꿈치에 쾅 떨어져서 본능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수류탄이 터졌습니다. 파편이 제 몸을 덮쳤고, 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어요.”

수류탄 파편을 맞은 런 아저씨의 다리는 지금도 파스가 없으면 안 된다. 런 아저씨는 당시 어머니와 2살 어린 여동생을 잃었다.

고자이에서는 위령제 하루 전인 음력 1월 22일에 마을 주민이 합동 제사를 지낸다. 모두 한날한시에 죽었기 때문이다. 따이한 제사다. ‘따이한’은 베트남어로 ‘대한(大韓)’이다. 한국군에 의해 죽은 이들의 제사. 희생자 380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위령비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곳은 바로 학살이 일어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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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이 위령비, 희생자 380명의 이름

런 아저씨는 지난해 한국에 다녀갔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를 증언하는 자리에서 수많은 참전군인을 만났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갱이’라며 2살 때 북베트남으로 간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나와 위협했다.

런 아저씨는 “긴 안목에서 한국 참전군인들도 희생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 숱한 죽음들을 책임져야 한다. 저는 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정한 화해를 위해선 사실 인정과 사과, 그리고 용서가 필요하다. 제가 용서를 유보하는 것은 진실이 덮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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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씨

눈물이 가득 고인 런 아저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온 얼굴에 힘을 줘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난해 한국을 다녀간 이후 한국 참전군인들이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울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한국 정부에 사과 요청을 한 적이 없다. 사과를 요구하지 않은 베트남 정부의 탓은 아닐까. 런 아저씨는 “아무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누구를 어떻게 용서하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은 민간인 학살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6.25전쟁을 포함해 국내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데만도 50년이 넘게 걸렸음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면서도 런 아저씨는 “지난 10년간 한국을 용서하려고 한 것은 당의 지침에 따라 당이 용서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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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안학살 50주년 따이한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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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안학살 50주년 따이한 제사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 사죄하는 한국인에 박수 보낸 베트남
런 아저씨, “한국 정부에 사과 요구할 것 제안”

런 아저씨와의 만남을 마친 오후 3시, 고자이 학살 지점에서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가 열렸다. 빈딘성 인민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위령제에는 7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회자는 ‘적들’의 잔혹함에 대해 설명했다. 주민들은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도 인사를 건네면 웃어 보였다. 런 아저씨는 학살 생존자로 단상에 올라갔다. 그의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보이는 주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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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아저씨는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한국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요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전까지 베트남 정부의 행보와 다른 발언에 구수정 아맙 대표도 놀랐다. 구 대표는 “베트남에서 한 번도 사과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런 아저씨도 당 소속이고, 발언문도 당에서 허가받은 것이기 때문에 베트남 정부 입장에 큰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노화욱 한베평화재단건립추진위원장이 단상에 올라갔다. 한국인이 올라온다는 사회자의 말에 앉아 있던 주민들은 목을 쭉 빼고 무대를 보기 위해 애를 썼다.

“한국도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의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 또한 미국에 의한, 동족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이 베트남에 똑같은 고통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살아있는 우리에게 남은 몫은 그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과거 없는 미래란 없으며, 반성과 성찰 없이는 평화를 만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화욱 위원장은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 사죄의 큰절을 올렸다. 순간 수많은 베트남 기자들이 무대로 올라가 그 모습을 담았다. 주민들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고, 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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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베트남은 우리가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살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사죄하기 위해 찾아온 한국인을 베트남은 박수와 기사로 맞았다.

위령제가 끝난 후, 베트남 현지 언론은 노화욱 위원장의 큰절 사진으로 도배됐다. 베트남 남부 최대 일간지로 꼽히는 <뚜오이쩨>에는 “과거를 잠시 제쳐둔다고 해서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기사가 실렸다.

"역사를 잠시 제쳐둔다는 것은 결코 닫아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뚜오이쩨>, 2016년 2월 26일 자.

"한국인 교수 빈안 학살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고개를 숙이다", <선봉지>, 2016년 2월 26일 자.

"한국인 교수 무릎을 꿇고 빈안의 학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다", <노동신문>, 2016년 2월 27일 자.

"한국인 교수, 살해당한 1,000명 이상의 민간인 희생자 가족 친척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다", <연찌(인민의 지성)>, 2016년 2월 2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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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 참배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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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 추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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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 국기를 들고 참석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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