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노래합시다, 늘 그랬듯 함께

[기고]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후원주점을 앞두고

11:31

구미에 있는 유리 회사 아사히 글라스. 이곳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투쟁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50일이 되었습니다. 땡볕이 내리쬐던 여름에 시작했던 투쟁이 이제 겨울을 지나 봄을 향하고 있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마음속에도 어서 봄이 찾아와야 하련만 아직은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입니다.

구미는 70년대 박정희 정부에 의해 형성된 산업단지의 도시입니다. 섬유, 전자산업이 모여들었고 산업의 성장에 비례해 활발한 노동자 운동이 자리했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구미에 있는 삼성, LG 등 대기업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2, 3차 하청 중소기업도 문을 닫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공장도 투자를 늘리기보단, 투자를 줄이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업자가 1만 명을 넘습니다. 시장의 세계화와 함께 산업이 공동화되면서 실업자가 늘고, 그나마 남은 일자리도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구미는 노동자의 도시가 아니라 기업의 도시, 비정규직이 신음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물론 구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전국적으로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이 확대됐고, 맞벌이해도 빚을 지는 사회가 됐습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악까지 추진하면서 우리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언제든 기업의 입맛에 따라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기업의 자유는 곧 ‘찍소리하면 죽는다.’는 절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가 해고도 하기 전에 알아서 희망퇴직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더 이상 부당해고와 노동조합이 법의 엄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인가요?

언젠가 누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합법이었던 적 있었나요?’
‘우리가 언제 합법적으로만 싸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그깟 ‘불법’이고 자본의 공세였다면, 우리는 이미 투쟁을 접고 대한민국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깟 것에 절망하지 않아 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본의 공세가 아니라, 우리를 엄호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고, 우리의 패배감이며 ‘안 바뀔 것’이라는 좌절입니다. 이미 좌절이 우리 안에 많이 퍼져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좌절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시 ‘사람들’이고, 그들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아사히 동지들은 투쟁한 지 250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40여 명의 조합원이 흔들림 없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앞장서 연대했고, 항상 가열하게 투쟁해 왔습니다. 구미시민을 만나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행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은 어렵다고요? 맞습니다. 어렵습니다.
운동을 하기엔 시대가 너무 어렵다고요? 맞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아사히 동지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본의 공세가 이야기하는 좌절을 보겠습니까, 아니면 아사히 동지들이 노래하는 희망을 보겠습니까.

길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것이라 했듯, 희망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이들의 발자국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사히 동지들을 ‘도와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희망의 노래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하자 말하고 싶습니다.

아사히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농성장에 갈 때마다 도리어 힘을 듬뿍 받고 옵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며 마음속으로 패배감만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저는 이제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미안해하는 대신 다짐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에 함께하겠다는 다짐.

승리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3월 11일, 희망을, 승리를, 노래합시다. 늘 그랬듯 함께.

아사히후원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