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밝히는 달서구 세월호 촛불, 지명희·한민정·강동민 씨를 만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이야기 (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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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안전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서로 연대하고 사랑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늘에 별이 된 우리 아이들이 우리나라에 주고 간 선물입니다

▲2016년 2월 카페 공중그네에서 왼쪽부터 지명희, 한민정, 강동민 씨.
▲2016년 2월 카페 공중그네에서 왼쪽부터 지명희, 한민정, 강동민 씨.

세월호를 기억하며 곳곳에서 활동하는 대구사람을 찾아다닌 지 네 번째, 신기하게도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자꾸 생긴다. 이번 만남은 달서구에서 세월호 인양과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회원도 늘고, 회원들끼리 더 친해지고 결속력이 높아졌다는 「대구여성광장」과 「대구노동세상」 회원을 만났다.

대구여성광장 대표인 지명희 씨(44)와 회원 한민정 씨(45), 그리고 대구노동세상 열공분과 분과원 강동민 씨(40).

왜 이렇게 열심히 세월호 활동을 하고 있는지, 세월호 활동을 하면서 달서구는 무엇이 달라지고 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자신도 끊임없이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세월호 싸움을 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는 지명희 씨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광우병이나 국정원 선거 개입 같은 사회문제들에 대해서는 단체 상근활동가로서 마땅히 함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반면, 세월호는 내 문제처럼 감정이입이 된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어요. 그리고 상인동 가스폭발 사건,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이 세월호 참사처럼 많은 아이와 시민이 희생된 가슴 아픈 사건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납득이 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은 방화범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가해자와 사건 과정이 밝혀졌잖아요.

그에 비해 세월호 참사는 순간적으로 펑 터져서 끝난 사건이 아니라 전 국민을 상대로 느리게 진행되었고,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희생자를 구하지 못했고, 아직 원인도 과정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들이 나서서 아직도 국민에게 손을 내밀고 계시고, 이에 국민이 부응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를 지금까지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고 싶은 싸움, 엄마들이 그만두기 전에 그만둘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한민정 씨는 2014년 당시 지방선거에 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상태였다. 선거를 마치고 남은 일을 마무리하던 상황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던 한 씨가 활동에 동참한 것은 달서구 416지킴이인 왕언니 김미경 선생님과 이명희 씨였다고 한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가 물어보면 솔직하게 두 언니 때문이지요. 모든 일이 원래 한 명이 시작하고, 두 명이 만나고, 세 명이 모이면서 모두에게 번져나가는 이치가 있잖아요. 달서구에서는 김미경, 이명희 두 언니가 세월호 활동의 중심을 아주 튼튼히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한다. 참고로 교사인 김미경 선생님과 달서구 주민 이명희 씨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아이들을 구해 달라는 서명활동을 자발적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세월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한 씨에게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얽힌 구조적 문제로부터 발생한 사건이라는 실감을 하게 한 사건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과연 해결할 수 있기는 하겠는지’에 대한 절망과 좌절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세월호 문제를 회피하고 싶었어요.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영상 같은 건 짓눌려서 볼 수도 없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이제까지 내가 활동해 왔던 여러 문제와 연결이 되면서 이 거대한 구조적 문제를 개인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해결되겠는가 하는 착잡한 마음이 커서 사건 자체를 외면하던 싶었던 거지요.”

비록 자신의 고민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안 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과 함께 달서구에서 열심히 실천하는 언니와 후배들 모습, 자식을 잃은 단원고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달서구 사람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오늘까지 왔다. 이렇게 말문을 연 한민정씨는 웃으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달서구 사람들 사이에 농담처럼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대책위) 김선우 상황실장과 안산 부모님들이 시키면 무조건 다 한다는 말을 하곤 해요(웃음). 언젠가 대책위 상황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의당 김지훈 후배가 ‘누나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제게 물은 적이 있었어요. 나는 그저 ‘열심히 해야 안 되겠냐’는 정도로 대답했지요. 그런데 김선우 상황실장이 ‘이 싸움은 꼭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 이기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고 해요. 이 말이 너무 공감되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렇게 계속 세월호 싸움을 끌고 갈 수 없지 않으냐?, 어떤 시점에서 일정 정도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제가 김선우 상황실장에게 한 적이 있었어요. 이 의견에 대해 김선우 상황실장이 ‘엄마들이 그만두기 전에 이 일은 매듭지을 수 없다’는 대답을 했어요. 물론 제 이야기가 활동을 그만 접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대답을 들으면서 내 활동의 중심에 엄마들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게 서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단히 부끄러웠습니다.

‘이 싸움은 이기고 싶다’, ‘엄마들이 그만두기 전에 그만둘 수 없다’는 두 이야기가 이후 제 마음에 자리를 잡았어요. 이 마음으로 나는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한민정 씨와 같은 고민이 나에게도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벌써 해결되었어야 할 일이 최소한에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다큐 <나쁜 나라>가 보여주듯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여전히 처절하다. 누군들 한민정 씨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내면에 솔직한 한 사람과 진심으로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해 온 한 사람이 나눈 대화의 울림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단원고 부모님들 앞에서 ‘잊지 않겠다, 행동하겠다’고 한 약속 지켜야지요.

▲2016년 1월 20일 상인동 서명전에 참가한 달서구 촛불들
▲2016년 1월 20일 상인동 서명전에 참가한 달서구 촛불들

한민정 씨의 고민에 대한 대구노동세상 회원 강동민 씨의 답은 좀 더 단순하고 분명하다.

“오래전부터 진보정당 당원이었지만, 단체 활동을 시작한 건 2014년 3월 민호 형의 권유로 노동세상 분과원이 되면서부터였어요. 그리고 4월 바로 세월호 참사가 터졌습니다. 그해 여름 단원고 부모님들이 대구에 오셔서 특별법제정 서명을 받고, 다음날 함께 안산과 서울집회에 가는 일정에 참가했었어요.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부모님들이 계신 가운데 모두가 인사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어요.

그저 ‘잊지 않겠다, 행동하겠다’는 말만 생각이 나서 부모님들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버스에서 처음으로 했던 그 말이 이후 내내 남아 있었어요. 그 말을 했기 때문에 실천하고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약속한 것을 지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강동민 씨는 직장 생활을 하는 어려움에도 상인동 서명전은 물론 대구시내 한일극장 서명전도 열심히 참가한다. 또, 노동세상 분과원과 함께 팽목항과 안산, 광화문을 수도 없이 다녀왔다. 노동세상 분과원과 함께 활동하고, 달서구 촛불을 열심히 하는 분들을 직접 만나고, 유가족을 만나면서 처음보다 더 마음을 내서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다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강동민 씨가 세월호 활동을 하는 이유에는 어머님과 동네 이모님들의 자극이라는 특이한 점이 있다. 세월호 활동을 하면서 어머님께 여러 정황도 말씀드리고, 알려드리고 했는데 돌아서면 또 세월호에 대한 나쁜 선전과 이야기들을 하신다는 것. 지난 1월 23일 안산 기억과 약속의 길을 다녀오던 날도 어머님이랑 친한 이모님들이 ‘아직도 그런 곳에 갔다 오느냐?, 네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걱정을 늘어놓으셔서 설명을 한참 했지만, 속이 상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서 더 잘 알려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올해는 어떻게 해서라도 어머님과 이모님들을 모시고 안산 합동분향소와 교실에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 말에 우리는 그 동네 누구 집 아들이 세월호에 푹 빠졌다고 소문이 자자하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보며 따뜻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넓어지고 힘이 커져야

세 사람을 포함한 달서구 촛불은 이 년여 꾸준히 활동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자꾸 불어나고 마음이 커지고 넓어지는 과정을 밟았다. 대구여성광장은 세월호 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동네 주민들을 만났고, 새로운 회원이 십여 명 가입했다. 또, 대구시민센터와 615대경본부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노동단체인 노동세상은 여성광장처럼 회원이 직접 늘지는 않았지만, 세월호 활동을 통해 회원들이 친해지고 결속력이 높아졌으며, 분과원 전체가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중요한 경험을 했다. 아울러 대구여성광장과 대구노동세상 입장에서 보자면 세월호 활동을 꾸준하고 진정성 있게 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로부터 존중받고 인정받는 지난 2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지명희 대표의 말을 좀 더 옮겨본다.

“여성광장은 세월호 활동의 가장 큰 수혜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을운동을 하겠다고 달서구로 와서 3년을 보냈는데, 실제 주민을 만나고 그들이 회원이 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었어요. 그랬는데 세월호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회원이 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민의 개인적, 생활적 요구를 넘어선 정치적 사안을 중심으로 건강한 사회의식과 실천에 기초한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울러 여성운동을 하면서 여성의 자존감을 높이고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데, 개인적인 교양과 자기 성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의미 있는 사회적 실천과 기여, 이에 대한 인정과 지지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달서구에는 노동세상과 여성광장 외에도 생협 조합원, 전교조 교사, 민권연대 회원, 앞산 달빛 마을, 앞산꼭지 등 여러분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서명전에 참가하고, 어떤 사람은 단체 카톡방에 있는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은 리본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SNS 활동을 하면서 서로 힘을 합치고 있다. 이처럼 세월호 진상규명이라는 공통 의제를 갖고 함께 활동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신뢰가 형성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지역의 자산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겠다. 2015년에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평화콘서트를 주최했고, 올해는 좀 더 많은 일을 지역에서 함께 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해 본다.

▲2015년 5월 29일 성서학생문화센터, 유가족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박은희씨 [사진=뉴스민 박중엽 기자]
▲2015년 5월 29일 성서학생문화센터, 유가족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박은희 씨 [사진=뉴스민 박중엽 기자]

지난 2015년 성서학생문화회관에서 열렸던 단원고 유가족 간담회 때 2학년 3반 유예은 학생의 어머니 박은희 씨는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안전하고 정의로운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며 ‘동네마다 안전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서로 연대하고 사랑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늘에 별이 된 우리 아이들이 우리나라에 주고 간 선물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두 언니로부터 시작한 세월호 활동이 있었고, 이 두 분의 모습이 주변 사람을 감동시켰고, 그리고 여기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누군가의 말처럼 ‘서로가 서로의 코를 꿰는 아주 바람직한 관계’들이 기쁘게 늘어나고 있는 달서구 촛불. 아이들이 주고 간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아픈 선물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란 누구나 내가 하는 일에 자꾸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해요. 촛불이 세상을 밝힌다고 하지만, 사실 촛불은 방 하나는 밝힌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방 하나를 밝히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고, 다른 촛불이 보고 찾아올 수도 있고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거창한 이념 문제이기 전에 인간의 문제이고, 양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지명희 대표의 이야기,

“이십대 삼십대 초반에는 마음 가는 데 몸 간다는 말이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그저 가기가 참 쉽지 않다는 걸 느껴요. 몸을 움직여서 마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은 많이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몸을 움직여서 마음을 더 내고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을 한 번이라도 뵙는 것과 아닌 것이 천지 차이인 것처럼. 안산을 가는 등 더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한민정 씨 이야기.

“올해는 동네 아주머니 안산 방문단을 꾸려서 다녀오고 싶은 소망입니다. 단원고 교실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은 큰 차이가 난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중남구에서 서명판을 한 번 펴 보는 것. 이 두 가지를 꼭 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해 봅니다”라는 강동민 씨 이야기.

세 사람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2016년에는 강동민 씨의 두 가지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 달서구에서 그간의 활동 성과가 모여 안전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 더 커지는 것을 꿈꾸어 본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시작할 즈음 방영됐던 미제 사건을 다룬 tvN의 드라마, <시그널>이 끝났다.

“미제 사건이 왜 엿 같은지 알아?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무엇인지 모두 밝혀진 사건은 내 가족이 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 알았으니까. 비록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라도 묻을 수 있지만 미제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는 거야.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라는 차수연 형사의 말로 시작해서 “진짜 잘못을 바로 잡아야 과거를 바꾸는 거고 미래도 바꿀 수 있어, 포기하지 않으면 돼”,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라는 주인공의 말로 끝을 맺었다.

반야월 지킴이를 만났을 때도,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도 우리는 모두 세월호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 싸움인지, 진상이 규명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해 아파했고, 우리의 싸움이 만만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묻고 확인했다.

곧 세월호 참사 700일이 되고, 4월 13일 총선을 치르고 나면 참사 2년인 4월 16일이 된다. 지난 2년을 겪어본 우리는 이제 2년이 된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는 사회가 될 거라고 기대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다만 여기에서 약속을 지키고 움직이는 사람들,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서로를 격려하며 더욱 커지고 넓어지는 우리가 희망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