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합의에 의한 평화통일로 가자는 일, 어찌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말인가

[기고] 평화운동·송전탑 반대 운동으로 기소된 백창욱 목사 법정 최후진술

19:25

[편집자 주] 백창욱 목사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에서 평화통일운동과 일방적인 송전탑 건설 반대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집회시위법, 업무방해 등으로 기소했고, 법정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습니다. 이 글은 3월 14일 법정에서 백창욱 목사가 검찰의 주장에 반박한 최후진술?내용입니다.

오늘 결심공판을 하면서 지나온 날을 확인했습니다. 오늘이 15차 공판입니다. 첫 재판이 2014년 2월 5일입니다. 만 이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보안수사대가 압수수색을 한 2012년 9월 20일부터 치면 햇수로 5년입니다. 긴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점은 검찰이 저에게 벌을 주려는 혐의들보다도 긴 재판 자체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검찰은 그동안 수차례 추가 의견서를 제출하고 공소장을 변경해서 재판을 지연시켰습니다. 검찰의 모습을 보니, 마치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데, 한고집하는 욕심 많은 아이가 자기가 이길 때까지 계속 게임하자고 떼쓰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결심공판이 시원하기도 합니다. 검찰이 저를 기소한 항목이 모두 8건입니다. 국가보안법, 집시법, 일반도로교통방해, 업무방해 2건, 상해, 공동상해, 건조물침입입니다.

8건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활동이고, 나머지 사건은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삼평리대책위) 활동입니다. 그런데 2월 26일 재판에서 확인하였듯이, 검찰은 무려 일곱 시간을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만 심문했습니다. 오늘 검찰논고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기소 건들은 일절 따지지 않고 오직 국가보안법에만 집중했습니다. 이것은 검찰이 국가보안법 유죄 입증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백창욱 목사
▲백창욱 목사

이제부터 평통사와 관련한 진술을 하겠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이 나라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실정법도 있지만, 목사인 제게는 더 큰 법인 하나님나라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법은 평등·평화·정의·약자보호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나라 법과 이 나라 법이 일치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 대개 하나님나라 법과 현실법은 충돌합니다.

대표적인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양심이나 사상의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타고난 권리인데, 국가보안법은 이 양심조차 재단하려 듭니다. 법 조항이 모호하고 자의적인 통제가 목적이라고 하여 유엔(UN)에서도 국가보안법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분단민족의 현실에서 남북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대결·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해·교류·평화의 길로 나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제가 속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WCC(세계교회협의회)같은 교회기구도 정전협정을 청산하고 평화협정을 맺어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습니다. 저의 활동도 이들 교회기구들 주장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평통사는 매우 신망을 얻는 민간 평화통일운동 단체입니다. 검찰은 의심의 눈으로 북한과 무슨 연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거나 근거가 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따라서 같은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다른 지역 평통사 일꾼들이 모두 무죄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의 기소장을 보면, 기자회견이나 집회에서 전쟁훈련반대나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한 것이 이적활동이라고 줄곧 주장합니다.

그런데 검찰의 주장에서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어떤 주장을 한 것이 이적활동이라는 것인지,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한 것이 이적활동이라는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한 활동은 기자회견이나 집회에서 주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죄가 된다면, 검찰의 주장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예를 들면 집회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기본권보다 우위에 있는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내용으로 돌아가 검찰의 기소내용을 크게 요약하자면, 평통사의 평화협정 주장과 키 리졸브나 을지프리덤가디언 같은 전쟁연습 반대가 북한의 주장과 같으므로 이적활동이며, 북을 이롭게 하는 찬양고무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협정 주장은 북의 주장을 받아서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협정 주장이 남북 간에 처음 나온 것은 1953년 정전협정입니다.

“4조 60항-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사령관은 쌍방의 관계제국 정부에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1953. 7. 27)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 년 뒤 열린 정치회담은 아무 소득 없이 끝나고 임시협정인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가지 못한 채 기형적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 뒤 평화협정이 본격화한 것은 6자회담의 결과입니다.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 등에서 6개국이 평화협정을 추진할 것을 합의하였습니다.

4항 :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했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 2005. 9. 19 베이징)

이외에도 미국과 우리 정부가 평화협정 체결추진을 말했습니다. 2007년 9월 7일 한미정상 간에 열린 호주 시드니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나의 목적은 한국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평화협정에 김정일 위원장 등과 함께 서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부의 활동에는,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도 평화협정 체결방안이 있고, 한나라당은 2007년 7월 신대북정책으로 ‘한반도 평화비전’에도 평화협정체결추진을 발표했습니다.

가장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2016년 2월 23일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 회담에서는, 중국이 제안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추진에 대해 미국 케리 장관이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평화협정은 한반도문제에 관심있는 관련당사국 정부와 시민들 모두에게 큰 관심사입니다. 따라서 평화협정체결 주장은 북한의 대남적화혁명노선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정부와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에도 부합한 합리적 정책대안입니다.

▲한반도 평화 수호, 전쟁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에 참여한 백창욱 목사.
▲한반도 평화 수호, 전쟁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에 참여한 백창욱 목사.

왜 한미연합훈련을 반대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3월 7일부터 시작한 키리졸브 독수리연습 때문에 또다시 극도의 긴장국면입니다. 국방부는 이번 연습을 “한국군 30여만 명, 미군 1만 7,000여 명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해 미군이 3천700여 명 참가한 것을 고려하면 이번 연습의 규모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는 북한이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징후만 보이더라도 선제공격한다는 초공세적 작전계획 ‘5015’ 작전이 처음 적용됩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선제공격 전력인 항공모함과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인 핵잠수함과 F-22 스텔스 전투기 등이 참가하며 이 같은 선제타격 전력의 한반도 배치 소요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한 훈련과 북한 핵심시설을 ‘족집게식’으로 선제 타격하는 훈련이 집중적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우리의 군사적 대응방식을 선제공격적인 방식으로 모두 전환시킬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역시 경거망동하면 가차없이 대응한다고 맞불을 놓습니다. 이처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선제공격 운운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실제 전쟁이 벌어질 위험성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한미전쟁연습에 대해서는 유엔군 사령부(유엔사)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2014년에 “한미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에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공격을 준비 중이라는 징후가 있을 경우 북측 주요 관련 시설을 일거에 파괴한다는 한국군의 ‘킬체인(Kill Chain)’ 개념이 사실상 선제공격에 해당되며 확전 가능성을 배가한다는 우려를 유엔사 측이 제기했다”는 <주간동아>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반도 정전관리 임무를 책임지고 있는 유엔사가 한미연합연습의 선제공격성과 국제법 위반에 대해 공식채널을 통해 문제 제기한 것입니다.

평통사와 피고인의 한미연합연습 반대 주장은 몇 가지 중요한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와 같은 유엔사 입장과 유엔헌장이 명시한 것처럼 한미연합연습이 국제법을 위반합니다. 둘째는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평화통일을 천명한 헌법을 위반합니다. 셋째는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선제공격적인 연습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회는 지금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3월 2일에는 사순절 19일째 기도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가는 저희 교회 되게 하소서!”

우리 민족이 분단으로 인하여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한반도는 남과 북이 대치된 가운데 언제라도 촉발될 수 있는 전쟁의 불안을 안고 공멸의 위험 속에 처해 있습니다. 분단의 장벽이 다시 높아져 개성으로 통하던 경제협력의 문도 닫히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이루어낸 화해와 평화의 길이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동족 간에 서로 총부리를 더욱 높이 치켜들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화해와 일치와 연합을 이루라’는 주님의 평화명령을 실천하지 못하여 저희는 날로 곤고합니다. 주님, 한반도 남북 정전협정을 바꾸어 평화협정을 이루어 주옵소서. 동족을 겨냥한 외세와의 전쟁연습이 사라지도록, 동족을 적대시하고 비방 중상으로 대결하는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청산하여 신뢰와 화합,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기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평화협정실현은 한반도의 현실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양식 있는 사람은 누구나 바라는 현실입니다. 평화협정을 기도한 이 사람들이 모두 북에 이적동조한 사람들인가요? 검찰은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마십시오.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인 남북한이 분단을 청산하기는커녕,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으로 분단을 이용하고 권력통치에 악용하는 것은 구시대의 악습입니다. 이 민족이 살길은 분단을 청산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는 길뿐입니다. 한반도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자명합니다. 분단을 청산하여 전쟁을 끝내고, 남북합의에 의한 평화통일로 가야 합니다. 너무도 절박한 이 민족의 소원입니다.

다음은 삼평리 대책위 활동에 대해 진술하겠습니다. 1월 22일 바로 이 자리에서 삼평리 주민이신 김춘화, 이은주 두 분의 결심공판이 있었습니다. 그 재판 모습이 삼평리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한쪽 당사자인 한전과 경찰은 멀쩡하고 오로지 주민들만 피고인이 돼버린 기울어진 법 적용,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몸부림이 모두 실정법 위반이 돼서 법정에 서야 하는 기막힌 모순의 현장이었습니다. 이은주 씨는 최후진술에서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벌을 주고 안 주고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인가?”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 주민들이 그렇게 온 몸을 던져서 송전탑 반대활동을 하는 것인가요?

▲청도송전탑 공사 현장.
▲청도송전탑 공사 현장.

송전탑 건설문제에서 매우 심각한 점은 해당 지역주민 배제입니다. 삼평1리 주민들이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것을 안 시점은 한전과 정부가 자기들끼리 모든 결정을 다 해 놓고 시공을 위해 마을에 들어선 때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핵심인 절차의 정의를 심각하게 해치는 일입니다. 절차정의의 제일원칙은 해당 지역 당사자의 참여와 권리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송전탑 건설 입지선정이나 노선결정에서 삼평1리 주민의 참여권은 처음부터 배제됐습니다. 주민설명회나 공시공람을 했다지만 지극히 요식적이어서 정작 해당 마을주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그 날이 올 때까지 완전히 모르고 지나갑니다. 삼평리 주민들도 마을에 철탑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2009년 3월입니다. 한전이 인부들을 대동하고 처음 삼평리에 나타난 날입니다. 그날 이후 8년째 삼평리 평화는 주민들의 간절한 소원이 돼 버렸습니다. 지금도 주민 간에 송전탑건설 견해 차이로 갈등이 매우 심각합니다. 따뜻한 시골마을공동체가 완전히 깨지고 남남이 돼 버렸습니다.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한 마을을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단 말인가요?

이렇게 정책이나 제도에서 발생한 갈등문제를 법이나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체 시행하는 사업의 폐해는 고스란히 해당지역 주민들이 짊어지고 맙니다. 2014년 7월 21일 한전이 공권력을 등에 업고 삼평1리를 기습침탈한 이후 송전탑을 세울 때까지 반대활동으로 인해 기소된 건이 20여 명 80여 건이나 됩니다. 대부분이 업무방해, 상해, 집시법, 건조물침입 등 같은 실정법 위반의 중복입니다. 갈등이 그대로 잠복된 현장을 대화나 순리로 풀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몰아가고 내버려둔 측면이 강합니다.

7월 21일 이후 한전이 철탑을 세우고 빠져나갈 때까지 삼평리는 매일매일이 전쟁이었습니다. 법과 제도, 정치로 해결하지 않고, 오직 물리력으로 밀어붙이는 공사에 대해 삼평리대책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반대활동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상황에 대한 반대활동과 충돌을 그저 기계적으로 실정법으로만 다루는 것은 또 다른 법의 폭력입니다. 실정법은 기껏해야 수십 년 수명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가진 정의감, 불의에 대한 저항, 약자보호, 민주사회를 지키는 연대 같은 상식은 최소 수백 년에서 수천 년짜리 규범에 해당합니다. 어느 것에 법의 절대성이 있습니까? 실정법인가요? 법정신의 보편성인가요? 당연히 법정신의 보편성입니다. 그러나 법 정신을 무시하고, 실정법을 절대적인 규범으로 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법 적용입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나 난다’는 속담에 비추어 볼 때, 검찰의 기소는 형평성을 잃은 적반하장 식의 기소가 많습니다. 주민과 연대자들은 무더기로 기소하면서 한전의 경우는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의 돈봉투 살포 범죄같이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 외에는 기소와 처벌이 전무합니다.

정책과 제도가 해당 주민들을 배제하고 결정하는 사업방식, 그 결과 주민동의를 받지 못하는 결정적 하자, 그 결과 경찰이 뒤를 봐주지 않으면 공사를 하지 못하는 철탑사업,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한 반대활동을 온갖 실정법으로 압박해야만 하는 철탑 공사는 역으로 현 철탑 공사방식이 얼마나 억지이고 무리이며 일방적인가를 입증합니다.

▲청도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백창욱 목사.
▲청도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백창욱 목사.

또한, 2014년 7월 21일 한전의 기습공사는 법을 우롱하는 행위입니다. 그전에 한전은 삼평1리 공사를 위해 밀양의 행정대집행 방식을 본 따서, 대체집행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7월 25일 대체집행 심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체집행 소송은 21일 기습공사를 위해 법원과 주민을 속인 기만적인 소송제기였습니다. 소송은 법의 정당한 판단을 받아야 하는 소중한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주민과 삼평리 대책위를 속이기 위해서 대체집행 소송을 기만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대체집행 심리가 원만히 이루어졌으면 7월 21일 기습침탈 이후 무수히 발생한 충돌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삼평리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충돌과 그에 따른 실정법위반은 한전이 자초하고 유도한 측면이 강합니다.

한전은 전력수급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미래에는 전기가 모자란다고 설정하고, 그 모자라는 전기생산을 위해 핵발전소를 짓고 에너지 전달을 위해 초고압철탑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인 하승수 씨가 쓴 책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에 따르면, 전기가 필요해서 핵발전소를 짓는 게 아니라, 원전마피아, 전력마피아, 민자발전을 하는 대기업들의 이권을 보장하기 위해 과다하게 발전소를 짓는 계획을 짜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국가의 전력정책이 이권 때문에 아무런 합리성도 없이 막장 수준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울 때도 밀실에서 합니다. 그렇게 비민주적인 계획이 졸지에 국책사업이 되고 기간산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송전탑으로 고통받고 있는 마을들이 결성해서 만든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에서는 에너지 민주화를 위해 전원개발촉진법을 폐지하고 전기정책을 전력마피아가 아닌 시민통제를 받는 민주적인 기구로 바꿔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삼평리에서 공사침탈 이후, 좁은 공간에서 몇 개월 동안 살면서 한전 직원뿐만 아니라 시공사인 동부건설, 서광ENC 직원들과도 원치 않는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할매, 주민들, 연대자들 모두 처절한 고생을 했습니다. 할매들이 119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반대활동을 조금만 해도 경찰로부터 업무방해니 뭐니 하는 협박을 받고 고착되고 연행, 구속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기소돼서 재판을 받습니다.

법과 공권력은 철저히 한전 편이었습니다. 한전의 공사는 세상없이 중요하지만, 철탑으로 망가지는 주민들의 행복권, 재산권, 생활권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반대활동의 한복판에서 많은 내상을 입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내상을 치유하고자 기도와 마음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말씀을 따라 고백하자면, 법에는 정의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법의 정신을 외면하고 자구만의 법 적용으로 오직 처벌만 난무하면 그 사회는 더욱 황폐해질 뿐입니다. 이들의 빈민주적인 에너지사업을 견제해 줄 수 있는 곳은 법의 정의뿐입니다.

재판장님, 전력마피아들의 탐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한전의 철탑공사와 그 이권 앞에 속절없이 당해야만 하는 철탑 경유지 주민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대개의 마을은 거대기업과 뒤를 봐주는 정부의 힘에 눌려서 울며겨자먹기로 철탑 공사를 수용하지만, 밀양주민들과 더불어 청도 삼평리 할매들은 하늘이 주신 자연생태적인 감수성과 자식들에게 철탑이 꽂힌 땅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싸웠습니다.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 감당한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할매들과 주민들의 외로운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연대한 착한 시민들에게 정의는 살아있다는 판결로 답해 주십시오. 긴 재판을 진행하시느라 고생하신 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반대편이지만 검찰에게도 형제애를 전합니다. 오랜 시간 고생하신 우리 변호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