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에서 울산 찍고, 부산까지…연대가 만든 힘

[기고] 72시간의 긴 이야기 ②

10:19

[편집자 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하이디스지회, 동양시멘트지부, 콜트콜텍지회, 사회보장정보원분회, 세종호텔노동조합 등 7개 장기투쟁사업장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을 결성하고, 구미에서 시작해 경주, 울산, 부산, 거제, 창원, 청주, 충남, 서울까지 지난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3박 4일간 전국 순회 투쟁을 벌였다. 경북 성주에 사는 필자는 ‘공동투쟁’에 함께 참여했다.

설레는 마음은 버스를 타고 틈새 없이 빡빡한 일정표를 보는 순간 사라졌다. ‘’공동투쟁’’ 버스는 첫날 유성영동공장에서 성주EMG지회 파업 현장을 향해 달렸다.

참가자들 역할도 자연스럽게 나뉘고, 조를 짜서 하루 평가도 하면서 첫 만남의 낯섦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공동투쟁’ 참가자들은 시골동네 작은 공장 EMG전선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 좀 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마음이 쓰였다.

금속노조 EMG지회는 파업 중이다. EMG지회는 지난해 여름 노조를 만들고 사측과 원만히 협상하여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사측이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노조탄압을 시작했다. 직장폐쇄, 부분폐쇄로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월 매출 100억이 넘는 알짜배기 기업이지만, 노동자는 주야 맞교대로 최저임금을 받았다. 이 노동자 중에 상당수는 성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 기숙사 생활을 많이 했다. 주야맞교대에 쉬는 날 없이 일하다 보니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가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노조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인권침해와 모욕적인 환경 속에 지내왔던 것이다.

농촌지역은 구석구석이 공단이다. 공단은 별다른 규제 없이 들어서고, 지역의 부동산투기를 부추긴다. 폐수처리, 폐기물처리 등 기반시설에 대한 문제발생 및 위험도 부지기수다. 환경오염 물질 사용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규제도 없어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다.

요즈음 시골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려면 시골 들어오면 안 되고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도시의 온갖 쓰레기가 시골로 몰려들고 있다.

아쉽지만 성주를 떠나 울산으로 내려갔다. 이동하면서 김밥 반줄과 왕만두 하나를 먹었지만,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공동투쟁’에 500만원이나 지원했다는 소식에 배가 불러 음식이 남기도 했다.

숙소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해고자로 구성된 해투위(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사무실이다. 해투위 안쪽 사무실은 여성이, 바깥쪽 사무실은 남성이 숙소로 사용했다. 바닥에 깔판을 깔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제공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남자들의 코 고는 소리는 벽을 뚫어 귓가에 맴돈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의 활동이 무척 부러워 보였다. 노동개악 내용을 조합원에게 교육할 수 있는 소책자도 발행하고, 현장교육 강사단도 있다고 한다. 사업장을 넘어 지역 차원에서 정치활동을 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 날,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현대중공업 앞으로 갔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와 출근선전전을 하기로 했다. 내가 처음 현대중공업을 마주한 때가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이었으니 12년만이다.

▲현대중공업 앞에서
▲현대중공업 앞에서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는 분신했다. 그러면서 당시 현대중공업노조의 어용성이 만천하에 폭로됐고,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문제제기로도 확산됐다. 노동운동사에 질곡을 가져왔던 기억, 많이 아프다.

조선업 위기 속에 현대중공업도 기로에 서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5,000여 명이 소리소문없이 잘려나갔다. 조선업 일용직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울산에서 거제, 통영으로 날품팔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어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 부산의 생탁과 택시노동자들, 만덕지역 재개발을 반대하며 투쟁하는 만덕어르신들, 그리고 부산교육청에서 단식농성 중인 학교비정규직 급식노동자를 만났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평균연령이 64세라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2년을 넘기고 있다. 13년을 최저임금만 받고 일했는데, 그 세월 동안 2,500만 원의 빚이 늘었다. 왜 청소노동자는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야 하나? 이 노동자들이 의문 제기는 대한민국 사회를 울렸다.

300억을 대학에 기부해도 막걸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밥 대신 고구마를 주는 사장 놈! 고구마에는 김치도 없다. 노조 만들어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리겠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장 놈! 사장 수가 40여 명이나 되는 부산 생탁. 노동자 두 명이 사장 한 놈씩을 먹여 살려왔다.

그 사장들은 부산에서 젤로 비싼 금싸라기 땅에서 젤로 좋은 전망이 바라보이는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살지만, 노동자들의 집은 재개발로 뜯겨나간다. 만덕주민들은 70-80대이지만, 평생을 일궈 남은 것은 집 한 채다. 이것마저도 빼앗아 고층아파트를 짓고 이윤을 창출하려는 LH토지주택공사. 그러나 “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만덕주민들의 외침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수 있는, 국가가 택시 대중교통정책으로 마련한 전액관리제는 택시현장에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는 자신이 만든 제도를 적극 활용하기 보다는 훨씬 후퇴한 또 다른 법 ‘택시발전법’을 만들어 노동자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택시노동자들은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 최저임금조차도 벌어갈 수 없는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액관리제 시행과 완전월급제를 목표로 투쟁하고 쟁취할 때만이 지금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모든 투쟁 현장에 분노가 치밀지만, 특히 밥하는 노동자에게 밥값을 받겠다는 부산교육청! 부산교육청 앞 경비실에는 바람에 펄렁이는 비닐을 지붕삼아 빼빼마른 한 여성이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십 수년을 학교 급식실 조리노동자로 살아온 그녀가 단식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부산교육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밥하는 노동자에게 밥값을 내라고 했다는 것. 국가공공기관부터 모범이 되어야하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행동을 부산교육청 그것도 진보라 탈을 쓰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

‘공동투쟁’ 동지들과 부산교육청 지지방문을 하고 즉석에서 단장이 교육청 면담을 제안했다. 그동안 구호 외치기를 시작으로 작은 집회를 열었다. 끼가 만발한 동지들이 수두룩 빽빽인지라 알아서 척척 “비정규직철폐연대가”에 맞춰 C급 몸짓을 했고, 분위기를 달궜다. 곧 교육청 면담도 이뤄졌다.

무엇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절실한 상황에 연대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커지겠지만, 부산교육청의 전교조 탄압 역시 예상되고 있어서, 전교조 부산지부와도 함께 한 결과를 만들었으니 일석이조에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연대란 이렇게 시너지효과를 팍팍 올려주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우리도 밥값 했다는 뿌듯함으로 부산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창원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