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은 다양한 사회운동과 만나야 한다

[기고] 72시간의 긴 이야기 ③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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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하이디스지회, 동양시멘트지부, 콜트콜텍지회, 사회보장정보원분회, 세종호텔노동조합 등 7개 장기투쟁사업장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을 결성하고, 구미에서 시작해 경주, 울산, 부산, 거제, 창원, 청주, 충남, 서울까지 지난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3박 4일간 전국 순회 투쟁을 벌였다. 경북 성주에 사는 필자는 ‘공동투쟁’에 함께 참여했다.

창원지엠2

어둑해질 무렵 창원에 도착한 ‘공동투쟁’버스는 한국GM비정규직 창원 동지들의 환영을 받으며 민주노총 강당에 짐을 풀었다. 한국GM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이어진 뒤풀이에서 명품몸짓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디스지회는 조합원 전체가 몸짓 공연을 한다. 버스에 탄 동지 중 남성은 C급, 여성은 B급 몸짓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느낌이 좀 거시기하지만, 그들만의 장난스러운 이야기임을 이해하시라.

하이디스지회 B급과 C급의 ‘이쁜 척’ 몸짓 공연이 시작되자 40대 중반을 넘긴 남성 두 분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몸짓 하나하나에 행복이 깃들어 보였다. 공연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공연이 끝나자 창원지역 동지들도 질세라 몸짓 공연을 한다. 무대에 한 번도 오른 적 없다지만 꾸준히 준비한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곧 지역 집회나 문화제에 선을 보일 만큼 무르익었다. 몸짓패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 하이디스지회 A급 몸짓은 얼마나 멋질까? 여러 궁금증이 드는 밤이었지만, 술과 음악, 문화가 있는 둘째 날이 저물어간다.

다음날 새벽, 금속노조 산연지회와 삼성테크윈지회 출근선전전을 마치고 분주하게 서둘렀다. 대구 경북대병원 주차관리, 청주시노인병원, 아산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산연지회는 일본 산켄 자본이 50여 년 전 마산수출자유무역지역에 들어오면서 노동조합 역사도 50년이라고 한다. 전노협 시절을 거쳐 창원에서는 비정규직 없는 사업장이라고 할 만큼 탄탄하게 노동조합을 지켜왔지만, 최근 상당히 힘겨운 상황을 겪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고, 산켄은 화재 현장 수습 대신 해고 통보를 날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막아왔지만, 산켄은 공장 생산라인 외주화 시도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자본은 지칠 줄 모르고 노동자를 공격한다. 노동자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막고 있지만, 자본가는 노동자가 자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노동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비정규직화는 따로 굴러가지 않는다. 정규직 노조가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맞선 것은 비정규직화 입직경로를 밟지 않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당연히 비정규직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경북대병원은 2000년까지 정규직이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고용형태였으니 말이다.

IMF경제위기 이후 공공부문 구조조정 결과 핵심 업무와 주변업무로 나누면서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가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차례로 외주 용역화됐다. 가랑비 속옷 적시는 줄 모르고 말이다.

경북대병원 주차관리 노동자들과 만난 하이디스지회 한 동지는 “처음엔 버스에 탑승한 12개 투쟁사업장이 가장 힘겹고 아픈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보다 더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우리가 왜 공동투쟁을 하자고 하는지도 이해하게 됐다. 함께할 때만이 많은 노동자의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경북대병원 주차관리 노동자들도 공동투쟁에 함께해서 하루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버스는 더 낮은 곳을 향해 버스는 청주시노인병원을 향해 달려간다. 청주시노인병원은 공공병원이다. 청주시가 책임자인데, 민간위탁 이후 공공병원으로서 기능은 훼손됐다. 최근에 수탁기관이 선정됐다가 운영자의 과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탁을 포기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그렇다면 공공병원을 청주시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기왕에 일해 온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할 때 청주시노인병원은 공공병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긴 싸움에도 권옥자 분회장은 힘이 팔팔 끓는다. 이유가 있다. 이곳에 연대하는 시민이 공동행동 동지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알을 서른 판 준비해오셨다. 투쟁기금도 함께 말이다. 그는 2005년 하이닉스매그너칩 사내하청 투쟁의 당사자였다.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당사자였고, 지금은 투쟁이 정리되면서, 양계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살아가는 분이다.

그분은 “끝났다고 생각하면 정말 끝나는 거다. 그러나 나는 하이닉스매그너칩 투쟁이나 이 땅 노동자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끝나야 끝난다. 나는 내 방식의 연대를 실천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주시노인병원 투쟁이 벌어지자 조합원수만큼 알을 연대하고 있다.

청도 삼평리 송전탑이 다 지어진 어느 날, 이억조 어머니가 송전탑을 바라보더니 통곡하셨다. 이 흉물스런 송전탑을 죽을 때까지 보고 살아야 하는 원통함의 절규였다. 옆에서 아무 힘도 되지 못한 연대자들은 죄송스럽고 무기력한 마음에 주저앉았고, ‘앞으로 이 싸움은 끝났구나’라며 절망했다.

다음날 집회를 하는데 이억조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너거 저거 다 지었다고 끝날 줄 알았제? 우리 아직 안 끝났다. 송전탑 다 지었으니까 이제 송전탑 뽑을 때까지 투쟁할끼다”라는 그 말씀에 나는 아주 큰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 하이닉스매그너칩 노동자가 알로 연대하는 것 또한,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위안과 위로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권옥자 분회장은 지칠 수가 없다.

다음은 충남 아산의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파업 현장이다. 지난해 사측의 신종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물리적으로 막아냈지만, 악마의 얼굴을 한 사측이 다시 고개를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저녁 9시 30분 파업출정식을 열고 모든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시킨다. 공동투쟁 동지들도 파업에 힘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하이디스지회 ‘이쁜 척’ 몸짓으로 사랑받고 있는 한 동지가 1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집단몸짓을 하자고. 윤효선 강사를 모시고 모두 “진짜 사장이 나와라”를 연습했다.

갑을오토텍

갑을오토텍 공장 입구에 노동자들이 모였다. 파업이다. 노동자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누구도 핸드폰을 본다고 고개를 떨구지 않았고, 지도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파업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 처음이다. 가슴이 쿵쾅 뛴다. 공동투쟁 동지들 모두 앞으로 나가서 “진짜 사장이 나와라” 몸짓으로 보답했다. 잘했을까? 앞에서 뛰는 하이디스지회 동지들 엉덩이만 보고 열심히 따라 했다.

그렇게 셋째 날 밤이 무르익어갔다. 현안이 너무 많아 큰 그림, 큰 싸움을 그리기가 벅차다. 버스가 전국 투쟁현장을 찾는다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가는 곳마다 환영하고 반겨주는 환한 노동자들의 해맑은 얼굴이 있었다. 고민만 깊어지는 밤이다.

공동투쟁단에 결합한 지 얼마 안 된 동지들도 “공투단을 확대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분명한 것은 큰 싸움을 만들 때 전망도 열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의 공동투쟁을 실천하면서 몸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자본가들은 서로 단결하며 효과적으로 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 노동자들이 이에 대항하려면 한 곳 한 곳 현안 문제만 해결하려고 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경험이 말해주듯이 공동투쟁의 장을 더 크게, 더 넓게 열어나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세상,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노동해방이 무엇인가 질문해야 하고, 어떤 사회가 노동해방 세상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뿐만 아니라 민중의 삶 문제에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만덕주민들의 재개발반대 싸움에, 송전탑 공사 반대와 핵발전소 건설 반대 싸움에,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를 위한 싸움에 함께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다양한 사회운동과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