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치료제 거품, 그 위험한 도박

[기고] 대기업 위한 박근혜 정부의 줄기세포 정책

13:15

*이 글은 최규진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이 ‘노동자연대’ 169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필자와 ‘노동자연대’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 동시 게재합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고는 하나 신체 일부분을 잃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질병관리본부에 등록된 장기이식 대기자만 2만5천 명에 이른다(2014년 말 기준).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일상생활이 가능하더라도 끝없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줄기세포 치료제는 기대해 볼 만한 대안일 것이다. 필자 역시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다만, 줄기세포 치료제는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상용화를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 예컨대 최근 일본에서 줄기세포(iPS세포)를 망막세포로 분화시켜 노인성 망막황반변성증 환자에게 이식하는 시험에 성공하며 그 가능성을 보여 줬다. 그러나 두 번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돼 중단됐다. 특히, 이 중에는 발암 유전자도 포함돼 있었다. 이론적으로도 아직 줄기세포의 정확한 조절 메커니즘이나 부작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또다시 쌓이는 거품

황우석 사태를 통해 겪었듯이 ‘산업’적 전망을 앞세운 개발 시도는 오히려 제대로 된 줄기세포 연구와 치료제 개발을 저해할 수 있다. 2005년 황우석 사태에는 중증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기대보다 그것을 이용해 정치적·상업적 이익을 취하려 한 권력과 자본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황우석에게 별다른 검증 없이 수백억 원 지원됐지만, 황우석과 함께 사기극에 대한 책임을 진 사람은 없었다. 거품을 만드는 데 일조한 그 많은 지식인도 별다른 반성 없이 딴청하기 바빴다.

제대로 된 비판과 반성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결국 줄기가 다시 자란다. 벤처 회사인 RNL바이오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관광’ 흐름에 편승해 한국인을 일본과 중국에 데려가 줄기세포 시술을 했다. 무분별한 줄기세포 치료를 금지한 국내법을 피하려 원정 시술을 한 것이다. 2009~2012년 말까지 일본·중국에서 2만여 명이 시술을 받았는데, 이 중 2명이 사망하고 나서야 그 실체가 겨우 드러났다.

이어 RNL바이오는 2011년에 부실 회계 무마를 위해 김종률 전 민주당 의원에게 5억 원을 건넸고, 성체줄기세포 치료를 합법화하는 내용이 담긴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당시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비서관에게 로비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이후 김종률 전 의원은 자살했고, <한겨레> 보도를 보면 비서관 이 모 씨는 CJ그룹에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제2의 황우석 게이트라고 불릴 만한 이 사건은 언론에서 모습을 감췄고, 상황은 거꾸로 치달았다. 당시 대통령 이명박이 직접 나섰다. “너무 보수적으로 하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없다”며 식약처(당시 식약청)에 업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 개선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에 식약처는 임상시험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고, 한국보다 오랜 기간 방대한 시험을 진행한 유럽과 미국에서조차 감히 하지 못했던 줄기세포 치료제 시판을 허가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 3종이 허가를 받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1종이 추가됐다. 전 세계에서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 7종 가운데 4종이 한국에서 나왔다. 진정 의미 있는 성과라면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가 ?네이처 메디신? 같은 유수의 과학잡지들을 통해 한국의 허술한 줄기세포 허가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한국, 동료심사 자료 적은데도 줄기세포 치료 허용’, 2012년 18권 3호). 한국에서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외국에서 한 건도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줄기세포

아베 정부가 쏜 위험한 화살

최근에는 한·일 간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경쟁이 불붙으며 한층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베 정권은 2013년 ‘세 번째 화살’로 불리는 경제성장 전략을 발표하며 줄기세포 산업에 대한 규제를 전폭적으로 완화했다.

첫째, 후생노동성에 비교적 간단한 승인절차를 밟으면 병원 내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일본 전역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정식 치료제 시판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승인받은 지정 병원에서만 시술을 허용하는 것이다. 둘째, 일본 전역에 적용되는 정식 승인 절차로서, 약사법을 개정해 안전성을 확인한 경우라면 유효성(실제로 치료 효과가 있는지) 검증이 끝나지 않아도 일본 전역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일단 판매해 보고 효과가 있는지는 이후(7년 내)에 판단해 보자는 것이다.

첫째 경우는 유럽에서도 병원 내 신속적용(Hospital Exemption)이라는 제도로 10여 년간 시행된 바 있다. 그러나 유럽의 기준은 매우 엄격해 이 제도로 사용이 허가된 경우는 덴마크 1건, 네덜란드 5건, 독일 17건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 프랑스 등 다른 27개 유럽국가에서는 허가한 사례가 없다. 그나마 허용된 제품들도 이미 효과와 안정성에 대한 근거가 비교적 충분한 연골세포 이식술이 대부분이었다.

이 제도가 적용된 뒤 10년이 지난 2014년 유럽연합(EU)은 평가서를 발표했다. EU는 적절한 임상시험 없이 환자에게 광범위하게 투여할 경우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 제도의 약점으로 지적했다. 또한, 기업들이 까다로운 정규 시판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병원과 계약을 맺어 돈을 벌 수 있으므로, 오히려 올바른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둘째 경우는 더 심각하다. 기업들이 신약을 개발할 때 전체 개발 비용의 절반 이상이 유효성 검증 단계부터 투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의 약이 개발에 실패하는 것도 바로 이 유효성 검증 단계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제 엄연히 유효성 평가를 하는 “시험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돈을 받기는커녕(‘시험’이므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치료제를 맞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는 의학적으로 적절한 유효성 검증도 방해한다. 가장 확실한 유효성 평가는 이중맹검시험(Double-Blind Test)이다. 이중맹검시험은 일부러 가짜 치료제를 만들어 진짜 치료제와 섞어 놓은 뒤, 의사와 환자 모두 어느 것이 진짜 치료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을 한다. ‘위약효과’(치료제라고 믿으면 치료 효과가 일부 생기는 현상)를 피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돈을 지불한 사람에게 가짜 치료제(또는 다른 치료제)를 투여할 수는 없다. 게다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요인을 자극하여 거짓된 유효성이 발생할 수 있다(Doug Sipp, RIKEN, Nature Medicine 2013). 즉, 제대로 된 유효성 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과장된 유효성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병원 내 신속적용 승인절차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2014년 11월 25일부터 2016년 2월 29일까지) 개별 병원 책임으로 약 2천8백여 건의 시술을 허용했다. 약사법 개정 이후 정식 절차를 거쳐 전국 판매가 승인된 줄기세포 치료제도 벌써 2개다. 줄기세포 관련 기업들은 이미 일본으로 러쉬를 시작했다.(R. Lee Buckler, The Life Sciences Report, 2014. 10. 22.)

박근혜 정부의 위험한 맞장구

박근혜 정부는 의료민영화 로드맵을 제시한 2014년 8월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부터 줄기세포에 대한 규제완화를 시작했다. 이어 2015년 11월 6일 대통령 주재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어 “향후 병원 내 신속적용제도 도입을 포함한 ‘재생의료법’을 제정하여 관리체계를 정비해 나갈 계획”임을 발표했다. 2015년 12월 1일에는 새누리당 의원 안홍준이 병원 내 신속적용을 골자로 하는 ‘줄기세포치료제 활성화 간담회’를 열었고, 같은 시간 새누리당 의원 장정은이 안전성만 확보되면 일단 시판을 승인해 주는 ‘첨단재생의료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입법공청회’를 개최했다.

올해 2월 1일 ‘첨단재생의료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일본의 그것보다 심각하다. 안전성만 확보하면 시판승인을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판 이후 유효성에 관한 자료 수집, 평가 및 검토 의무조차 없다. 심지어 때에 따라서는 안전성 심의조차도 생략할 수 있다(10조 2항). 식약처의 관리감독 의무를 피하려고 별도의 “첨단재생의료심의위원회”라는 심의기관을 두려 한다. 단계별로 각각 기관 6개의 기관에 책임을 분산시켜 책임소재마저 모호하게 만들어 놓았다. 개발자와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의무로 규정해 놓았지만, 필수적인 장기추적 조사에 대해선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할 수 있다”며 허술하게 풀어 놓았다.

이제 막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가속이 붙은 줄기세포 규제 완화 시도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줄기세포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려는 듯 “재생의료”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으로는 환자들의 생명이 아니라 줄기세포 자본들만 재생할 뿐이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RNL바이오마저 보란 듯이 네이처셀로 이름을 바꿔 재생을 노리고 있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라며 또다시 쌓이고 있는 이 거품 속에서 과연 포식자가 누구이고 먹잇감이 누구인지 이미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