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김수영-되기] (13) 서시

18:05

서시

김수영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정리(整理)는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생기를 생기 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을

글에서 인용한 ‘서시’는 <김수영 전집 1(시)>에 수록됐습니다.

아직도 김수영을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연구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또, 그의 시적 양식의 특징을 들어 김수영을 모더니스트라고 부르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런 통념들은 적지 않은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그가 모더니즘의 흐름을 수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수영의 모더니즘은 그가 살았던 당대의 후진성을 세계사적 흐름에 근접하게 하고자 했던 시적 고투가 그 속성이지 단순한 시적 양식의 특징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비록 훗날 일이지만 그가 친구인 박인환을 가리켜 “시를 얻지 않고 코스튬만 얻었다”거나 “복쌍은 인환에게 모더니즘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양심과 세상의 허위를 가르쳐주었다”고 지적한 것, 또는 “우리의 현대시가 겪어야 할 가장 큰 난관은 포오즈를 버리고 사상을 취해야 할 일이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젊은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극복한 자신에 대한 자긍심의 표출이기도 하다.

김수영 자신은 「병풍」을 “현대시로서의 진정한 자질을 갖춘 처녀작”이라고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로 시작되는 이 시에 ‘서시’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물론 ‘서시’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이라고 해서 당연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냐, 하는 질문은 언제나 유효하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에 ‘서시’라는 제목을 달 때는 그만한 내면의 변화를 혹은 변화의 시작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봐도 무리한 해석은 아니다.

김수영이 추구했던 모더니티는 서구의 문학사적 흐름과는 일찌감치 갈라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라리 현실 안에 자신이 기획한 모더니티를 구축하려는 리얼리스트의 면모와 많이 닮아 있다. 이것은 그의 시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다. 따라서 김수영의 모더니즘은, 일테면 근대 따라잡기가 아니라 근대를 뚫고 나가려는 힘의 양식에 가까워진다. 오늘날 몇몇 평자들에 의해서 김수영 시에서 탈근대적 성격을 짚어내는 것은 이러한 맥락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1957년에 쓴 「서시」는 김수영 자신이 잠시 수용했던 서구적 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신도 또한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는 것,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라는 것은 그의 시대, 그리고 그 시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돌아보기이다. 물론 그 당시의 김수영이 근대가 야기한 미증유의 참사에 대해서 얼마나 명료히 인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라는 표현을 보면 자신이 지독하게 체험한 전쟁도 “첨단의 노래”를 지향한 근대의 필연적 결과가 아닌가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이런 전회가 찾아온 것은 확실히 서강이라는 공간을 통한 생활의 변화 때문이다. 일테면, 이 시보다 1년 전에 쓴 「여름 아침」에서 “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한다고 썼다. 그리고 이 시의 직전에 쓴 「하루살이」란 시에서 “하루살이” 날갯짓을 향해 “살아 있는 보람이란 이것뿐이라고” 하면서 이 날벌레들의 자유로움을 통해 “감정을 잊어버린” 자신을 되돌아본다. 어쩌면 김수영은 “하루살이”라는 미물에게마저 “검게 타야 할 정신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나무여 영혼이여/가벼운 참새 같이 나는 잠시 너의/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라는 구절이나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고 할 때, 김수영이 발견한 것은 ‘생명’이었음이 명확해진다. 하지만 그가 처한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지만” “명령의 과잉”이 시대적 흐름상 불가피하다는 것. 여기서 그의 중용은 “부엉이의 노래”가 된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부엉이”를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의 부엉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타당하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은 어떤 단절의 의지 혹은 “명령”이지 김수영 자신의 지금껏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을 발견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좀 성급한 일이다. 이 시에는 김수영이 보여주는 ‘반시대적 몸부림’인 “정지의 미”, “부엉이의 노래”, “지지한 노래”, “더러운 생기” 등 근대적 가치에서 벗어난 세계가 암시된다. 어쩌면 그것은 일상의 시간 속에서도 살아 있는 생성의 시간이 존재함/존재해야 함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의 세계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자신의 몸부림이 시대적 흐름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인식한 “정지의 미”와 “부엉이의 노래”가 “지지”하고 “더러운 생기”이며 급기야 “생기 없는 노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시대적 흐름의 격돌 속에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마지막 행의 “하나의 명령”은 근대의 “명령”이 아니라 ‘다른 명령’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 시에서 “성장(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정리(整理)는/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같은 구절은 작품의 내적 흐름에서 어떤 예외적인 분절로 읽히는데, 역으로 추상적인 어휘들이 가득 찬 작품 안에서 서사적인 이미지를 끌어들여와 시인 자신의 시적 기획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산문적 구절을 시적 흐름에 의도적으로 외삽(外揷)시키는 것은 김수영의 특징이지만, 독자들에게는 매우 어리둥절한 시도이기도 하다.

김수영 시를 읽을 때 그의 산문을 시와 관계없는 글쓰기로 보는 일의 위험성은 개인적으로 몇 번 강조한 기억이 있다. 이 구절만 봐도 김수영의 시쓰기는 산문적 세계를 주파한 다음에 이루어짐을 강하게 증거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수영 시의 한계가 아니다. 도리어 시와 산문의 경계에서 그의 시가 생성되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아직도 김수영의 시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그 현실에다 (서구적 흐름과는 다른) 모더니티를 구축하려는 그의 기획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리얼리티로서의 모더니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이 사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며, 그 첫걸음은 “포오즈를 버리고 사상을” 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엄혹한 산문의 세계를 섣불리 미학화하거나 또는 시를 산문의 세계 밖에 별도로 옹립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남아 있어서 하는 말이다.

“작품 전문은 저작권자와 협의하에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