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유령이다: ‘유일자(唯一者)’ 막스 슈티르너 ①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11)

18:17

1. 슈티르너의 생애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도다!”
“Ich hab’ Mein’ Sach’ auf Nichts gestellt.”
“All Things Are Nothing To Me.“*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6)의 대표적 저서《유일자와 그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hum)》(이하,《유일자》)**는 이 말로 시작한다. 슈티르너는 무엇을 이렇게 ‘헛되다’며 탄식하며 이 책을 썼을까? 이 탄식은 자유주의자들이 품고 있는 ‘국가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과 직결된다.

슈티르너만큼 국가와 개인을 대비시켜 철저하게 국가를 비판하고, 개인의 주체성을 탐구한 철학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프로이센의 청년 헤겔학파 철학자로 출발했지만, 그의 철학은 허무주의와 개인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에고이스트 연합’을 주창한 그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인 프루동이나 바쿠닌과는 달리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슈티르너는 1806년 10월 25일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에서 플루트를 만드는 장인인 아버지 슈미트(Albert Christiam Heinrich Schmidt)와 어머니 엘레노라(Sophia Elenora)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슈티르너가 태어난 지 6개월만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그의 모친은 2년 후 궁정악사인 발러스테트(Heinrich Friedrich Ludwig Ballerstedt)와 재혼한다.

1826년 9월, 슈티르너는 김나지움을 졸업한다. 그때까지의 그는 조용한 성격의 착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크게 두드러진 점은 볼 수 없다. 슈티르너의 본명은 요한 카스파르 슈미트(Johann Caspar Schmidt)이다. 어릴 적 그의 두드러진 이마 때문에 친구들은 ‘막스 슈티르너’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후일 그는 이를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1826년 10월, 베를린대학의 철학부에 입학하여 4학기 동안 헤겔,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등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로부터 4학기 동안 철학을 배운다. 2년 후인 1828년 정신질환을 앓던 모친을 돌보기 위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1832년 베를린대학에 재입학한다. 1834년 4월, 교수자격시험을 통과하고, 몇 해 동안 베를린의 슈틸레케왕립실업학교(Spileke’s Ko?nigliche Realschule zu Berlin)에서 무보수견습교사로 지낸다. 그러다 1839년 10월 베를린의 그로피우스여학교(“Lehr-und Erziehungs-Anstalt fu?r ho?here To?chter” der Madame Gropius)에 교편을 잡게 되면서 비로소 그의 생활은 안정을 찾는다.

슈티르너는 이 여학교에서 역사와 독일어를 가르치면서 5년간 근무한다. 이 기간에 그의 행적에서 특기할만한 사항은, 베를린의 청년헤겔학자들의 학술모임인 <프라이엔(Die Freien)>에 참가한 것이다. 그 모임은 베를린 프리드리히가에 있던 힙펠(Hippel)의 와인바에서 열렸다. 여기에서 슈티르너는 바우어(Bruno Bauer), 맑스(Karl Marx), 엥겔스(Friedrich Engels) 및 루게(Arnold Ruge) 등과 교류하면서 그의 철학 사상의 체계를 다듬는다. 이 시기에 그는 <라인신문(Die Rheinische Zeitung)>과 <라이프치히신문(Leipziger Allgemeine Zeitung)>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수많은 논문을 발표한다. 이에 반해 저서는 많지 않다.? 1844년 11월에는 그의 주저(主著) 《유일자》를, 그리고 1852년에는 《반동의 역사(Geschichte der Reaktion》를 두 권으로 발간하였다.

1843년 슈티르너는 <프라이엔>에서 만난 지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댄하르트(Marie D?hnhardt)와 결혼한다. 그러나 조용하고 내성적인 슈티르너와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격의 댄하르트는 처음부터 성격이 맞지 않았다. 결혼 후 3년 후인 1846년 부부는 이혼한다. 그 후 댄하르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1902년 런던에서 사망하였다. 비록 이혼했음에도 댄하르트를 잊을 수 없었을까? 슈티르너는 “나의 연인 마리 댄하르트에게(to my sweetheart Marie D?hnhardt)”라며《유일자》를 댄하르트에게 헌정한다.

《유일자》출간을 한 달 앞둔 1844년 10월, 슈티르너는 그로피우스여학교에서 퇴직한다. 그 이듬해 우유배달사업을 시작하지만 실패하고, 그 이후 말년까지 곤궁한 생활을 한다. 심지어 연이은 사업 실패로 채무를 갚지 못한 그는 1853년과 1854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2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다 그는 1856년 5월 벌레에 물려 열병을 앓다가 그 다음 달인 6월 25일 사망한다. 그의 나이 만 49세였다.

그는 한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러다 사후 40여 년이 지난 1890년대에 들어 아나키스트집단을 통해 《유일자》가 널리 읽히면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생애와 학문적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맥케이(John Henry Mackay) 덕분이다. 맥케이는 1898년 슈티르너의 저작물들을 모아《막스 슈티르너 논문모음 제1집(Max Stirner’s Kleinere Schriften und Entgegnungen auf die Kritik seines Werkes)》을, 그리고 이를 보충하여 제2집을 발간하였다. 이후 다른 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보완되었다(슈티르너 저작물 목록과 원본은,?https://de.wikisource.org/wiki/Max_Stirner’s_Kleinere_Schriften_und_Entgegnungen).

오늘날 슈티르너는 학문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지만, 그의 생애의 많은 기간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많다. 맥케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고이스트’ 슈티르너의 삶의 많은 부분은 불분명한 채로 남아있다. 이에 대해 맥케이는, “그 자신의 시대에도 이미 망각된 존재인 자에 대해 누가 아직도 증언할 수 있겠는가?”며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정문길, 314쪽에서 재인용).

슈티르너는 평생을 고독한 ‘에고이스트’로 살다가 갔지만《유일자》를 통해 그가 남긴 학문적 업적과 영향은 지대하다. 엥겔스는 자신의 희극적 시 “신앙의 승리”에서 자유인 그룹 <프라이엔>에 나타난 슈티르너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박종성, 11쪽에서 재인용).

“당분간 그는 여전히 맥주를 들이켜고 있겠지만
곧 그는 물처럼 피를 마실 것이다.
“왕을 타도하라”고 거칠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면,
슈티르너는 곧 이를 첨가하여
“법 또한 타도하라”고 외칠 것이다.“

2. ‘유일자’의 개념

《유일자와 그 소유》라는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슈티르너 사상의 핵심은, ‘유일자’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유일자》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일자(The Unique One)’의 의미에 대해서는 제2부 제2장 소유자(The Owner) 제3절 자기향유(My Self-Enjoyment) 마지막 문단에 기술되어 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 밖에 있는 사명을 자신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연유로 그들은 나 자신이 곧 인간(I am-man)이기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마법의 원(圓)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자아이기 때문에 피히테의 자아(Fichte’s ego)도 나 자신의 밖에 있는 것과 동일한 본질이다. 그리고 만약 이 자아만이 권리를 가진다면, 그것은 “그 자아”이고,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은 다른 사람과 동일한 자아가 아니다. 오직 유일한 자아(the sole ego)다. 나는 유일하다(I am unique).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구와 행위도 유일하다. 요컨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일체)가 유일하다. 그래서 이 유일한 자신으로서만 자신은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는 것이다. 나는 오직 나 자신으로만 움직이고, 자신을 발전시킨다. 나 자신이 인간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 나의 발전도 없다. 따라서 나 자신으로서 나는-나 자신을 발전시킨다. 이것이-유일자의 의미이다.”*** (Max Stirner, p. 177.)

‘유일자’의 의미에 관해 설명한 다음 슈티르너는 이어서《유일자》제2부 제3장에서 ‘유일자(The Unique One)’라는 별도의 제목 아래 자신의 견해를 보다 구체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슈티르너의 《유일자》는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유일자’를 뜻하는 독일어 ‘Einzige’에 대응하는 영어 표현으로는 ‘The Unique One’이 가장 적절하다. 그러나 슈티르너는 본문에서 ‘자아(Ego)’, ‘소유자(Owner)’, ‘에고이스트(Egoist)’ 등도 유일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일자’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김은석, 115~116쪽).

첫째, 유일자는 유일무이하다. 슈티르너의 표현을 빌리면, 유일자는 “전제되지 않은 전제”이고, 매 순간 존재하는 ‘드러난 나’,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나, ’유한한 나‘이다. 즉, 그는 보편적 관념에 존재하는 ’나‘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체로 존재하는 과정의 ’나‘, 즉 ’일시적 나‘를 유일자로 보고 있다.

슈티르너는 왜 유일자의 개념을 끌어왔을까? 그는 유일자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당시 독일사회에 만연하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철학-특히 신학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편적 이성주의-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지 않다. 그의 이 의도는 피히테(J.G. Fichte)의 ‘절대적 나(absolute ego; absoluten Ich)’에 대한 비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피히테는 ”나는 모든 것이다(The ego is all; Das Ich ist Alles)“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이 말은 나의 주제와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오로지 ‘드러난 나’,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나’, 즉 ‘유한한 나’가 오직 실체의 ‘나’이다. 피히테는 ‘절대적 나’를 말했지만 나는 ‘일시적 나’를 말한다.”****(Max Stirner, p. 99.) (김은석, 115~116쪽에서 재인용)

雅美住吉 교수는,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은 근대 시민사회 성립 이전의 주인-노예를 둘러싼 투쟁의 차원에서 확립된 욕망의 자기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의미에서 유일자의 자아는, 정신분석적으로 말하면, 前-언어적이고, 언어질서에 의해 분절화되지 않는 原-자아다. 언어표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유일자는 “언표(言表)되지 않는 나”, “無”이다. 슈티르너는 유일자라는 착상에 의거하여 독일관념론의 주류적 수법인 논리학적 혹은 형이상학적 접근에 의한 개념적 파악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는 “현실적 개체로서의 자아”를 주장하고 있다(雅美住吉, p. 675).

둘째, 유일자는 ‘창조적 무(혹은 허무 the creative nothing; das schoperische Nichts)’이다. 유일자란 의식, 언어, 개념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면, 그 개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므로 “(허)무”라고 낙인을 찍게 된다. 이와는 달리 슈티르너는 “무”의 상태에 있는 유일자의 자아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창조적 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나는 창조적 無다. 그 無로부터 나 자신은 창조자로서 만물을 창조한다.”

“… but I am the creative nothing, the nothing out of which I myself as creator create everything.” (Max Stirner, p. 18)

이처럼 슈티르너가 말하는 ‘無’는 소극적·부정적 혹은 과거지향적인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유일자의 자아는 과거지향적인 독일 관념론적 자율관에 반하여 실존적이고 장래지향적인 자율관을 제시하고 있다.

“좋다. 그렇다면 나와 관계하지 않는 관계가 있는가? 당신은 최소한 ”선한 원인(good cause)“만이 나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이 선이고, 또 무엇이 악인가? 어떤 이유로 나 자신만이 나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나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둘 다 내게는 의미가 없다.”(Max Stirner, p. 18)

“신의 것은 신의 것, 인간의 것은 인간의 것이다. 나는 신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나는 진리, 선, 정의, 자유 등과도 관계가 없다. 나는 오직 나 자신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나는 보편자(a general one)가 아니라 유일하다(unique). 나는 유일하다(I am unique).”(Max Stirner, p. 18)

“나는 유일하다!”
슈티르너는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은 신이 아니라 ‘유일자’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창조주’인 ‘신’과 결별하고, ‘유일자’의 자아를 통하여 새롭게 세상을 창조한다. 그에게 있어 ‘유일자’는 ‘창조적 인격을 가진 나’, 즉 ‘자기 창조적 인간’이다. 슈티르너는《유일자》서문의 마지막 문단을 이 말로 끝맺고 있다.

“나 이외의 것은 나 자신에게는 모두 無다!”
“Nothing is more to me than myself!”

슈티르너는 어떤 이유로 “無”라는 유일자의 자아를 주장했을까? 이 주장을 통하여 그는 미래지향적인 적극적 자아주체성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을까? 그가 주장한 국가론과 에고이스트연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각주

* 전도서 1장 1절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를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은 괴테의 시 “Vanitas! Vanitatum Vanitas!”(I have set my affair on nothing)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VANITAS! VANITATUM VANITAS! by Johann Wolfgang von Goethe(1789)

MY trust in nothing now is placed,

Hurrah!

So in the world true joy I taste,

Hurrah!

Then he who would be a comrade of mine

Must rattle his glass, and in chorus combine,

Over these dregs of wine.

I placed my trust in gold and wealth,

Hurrah!

But then I lost all joy and health,

Lack-a-day!

Both here and there the money roll’d,

And when I had it here, behold,

From there had fled the gold!

I placed my trust in women next,

Hurrah!

But there in truth was sorely vex’d,

Lack-a-day!

The False another portion sought,

The True with tediousness were fraught,

The Best could not be bought.

My trust in travels then I placed,

Hurrah!

And left my native land in haste.

Lack-a-day!

But not a single thing seem’d good,

The beds were bad, and strange the food,

And I not understood.

I placed my trust in rank and fame,

Hurrah!

Another put me straight to shame,

Lack-a-day!

And as I had been prominent,

All scowl’d upon me as I went,

I found not one content.

I placed my trust in war and fight,

Hurrah!

We gain’d full many a triumph bright,

Hurrah!

Into the foeman’s land we cross’d,

We put our friends to equal cost,

And there a leg I lost.

My trust is placed in nothing now,

Hurrah!

At my command the world must bow,

Hurrah!

And as we’ve ended feast and strain,

The cup we’ll to the bottom drain;

No dregs must there remain!

** 《유일자와 그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hum》는 영어로 다양한 제목으로 번역되고 있다.《The Ego and Its Own》,《The Unique Individual and His Property》,《The Single One and His Property》,《The Individual and His Pereogative》등(박종성 박사학위논문, 8쪽). 본고에서는 다음 책을 참고하였다. Max Stirner, 《The Ego and His Own》, Translated form the Germany by Steven T. Byington, With an Introduction by J.L. Walker, New York, Benj. R. Tucker, Publisher, 1907.

*** 영어 원문을 참고하라.

“People have always supposed that they must give me a destiny lying outside myself, so that at last they demanded that I should lay claim to the human because I am-man. This is the Christian magic circle. Fichte’s ego too is the same essence outside me, for every one is ego; and, if only this ego has rights, then it is “the ego,” it is not I. But I am not an ego along with other egos, but the sole ego: I am unique. Hence my wants too are unique, and my deeds; in short, everything about me is unique. And it is only as this unique I that I take everything for my own, as I set myself to work, and develop myself, only as this. I do not develop men, nor as man, but, as I, I develop-myself.

This is the meaning of the-unique one.”

**** 영어원문을 참고하라.

“When Fichte says, “The ego is all,” this seems to harmonize perfectly with my thesis. But it is not that the ego is all, but the ego destroys all, and only the self-dissolving ego, the never-being ego, the-finite ego is really I. Fichte speaks of the “absolute” ego, but I speak of me, the transitory e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