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고용친화기업의 민낯] (1) 취업준비생에게 한숨과 자괴감만 안겨주다

대구 청년 눈높이에 맞춘 '연봉 높고 복지 좋은 기업'...이거 실화냐?
개별 기업 정보 안내 없어 구인사이트 뒤졌더니
“야근 많음”, “복지 없음” 단점 리뷰 수두룩
생산직, 비정규직은 해당 안 되고, 기업이 준 자료 홍보에만 그쳐

10:59

뉴스민은 대구시가 지난해부터 진행한 고용친화기업의 의미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살펴봤다.

[대구 고용친화기업의 민낯] (1) 취업준비생에게 한숨과 자괴감만 안겨주다
[대구 고용친화기업의 민낯] (2) ‘비정규직 비율’조차 파악 못한 ‘고용의 질’ 지표
[대구 고용친화기업의 민낯] (3) 청년 채용 실적도 모른채 2017년 지원 확대

얼마 전 성서산업단지 내 중견기업 한국OSG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불거졌다. 한국OSG는 지난해 대구시 ‘고용친화기업’에 선정됐다. 비정규직 차별 기업이 어떻게 고용친화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뉴스민>은 대구시 고용친화기업 실태를 3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첫 번째로 가상의 청년 구직자(27, 대구 거주)가 고용친화기업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

청년 취업 문제가 심각하긴 한가 보다. 새 대통령이 일자리 상황을 실시간 점검한다고 나섰다.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돈도 적당히 벌고 싶은데, 나도 대구에서 그런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공무원 준비를 시작해볼까.

답답한 마음에 포털 사이트에 ‘대구 청년 취업’을 검색했다. 오, 대구에서도 우리 취업 문제에 관심이 많구나! 청춘 힙합 페스티벌도 열어준다고 하고, 청년센터라는 곳에서 청년들을 위한 강의도 하고 있었다.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고용친화기업도 있다.

‘고용친화’라는 단어에 솔깃해 기사를 클릭했다. 임금, 근로시간, 복지제도가 우수한 기업들이라니 더 기대된다. 연봉 2천7백만 원 이상에 야근, 주말 근무가 거의 없는 곳! 복지 5개 이상! 이거 실화냐?!

“아울러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용환경 개선을 위해 청년고용친화 대표기업도 지난해 23곳에서 올해 40곳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청년들이 믿고 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한다는 취지다. 청년고용친화 대표기업은 청년 구직자가 중요시하는 임금, 근로시간, 복지제도가 우수한 기업이다.” – <매일신문 / ‘17.5.25> 중

▲2016 대구시 고용친화기업 23개사(자료=대구시)

본격적으로 고용친화기업 23곳 명단을 찾으려고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지난해 나온 언론보도를 통해 명단을 찾을 수 있었다. 경창산업, 경창정공, 구영테크, 대구텍, 대구은행…

대구에서 연봉 높기로 유명한 기업들도 보인다. 모두 연봉 2천7백만 원 이상이다. 주말 근무가 없는 곳이 여덟 군데나 되고, 대부분 일주일에 야근을 1~2번밖에 안 한다. 잠깐만, 야근 일주일에 두 번이 적은 건가? 나중에 생각하자. 복지도 25개 이상인 곳이 절반 넘으니까.

아무리 찾아도 기업 명단만 있고, 기업 정보가 없다. 23곳 중 20곳이 제조업인데, 어떤 업무를 하는지, 하루에 몇 시간 근무하는지, 어떤 복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23개 기업이 모두 우리가 취업하기 좋은 곳이라는 언론보도뿐이다.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취업 사이트 등에 올라온 기업 정보와 기업 리뷰를 하나씩 찾아봤다. 23개를 하나씩 찾고 있자니, 내가 이러려고 취준하나 자괴감이 든다.

사람인, 잡플래닛을 샅샅이 뒤졌다. 취준생이라면 당연히 거치는 확인 작업이니까. 다 뒤졌는데도 23곳 중 8곳의 연봉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ㅌ사는 현재 진행 중인 채용 공고에도 급여 정보를 알 수 없었다. 고용친화기업이니 연봉 2천7백만 원은 넘겠구나 미루어 짐작했다.

잡플래닛에서는 전, 현 직원이 직접 입력한 기업 리뷰도 볼 수 있었다. 고용친화기업에 걸맞은 훈훈한 리뷰가 쏟아질 거라는 기대가 깨지는 데 딱 5초 걸렸다. 기업 리뷰를 보기 위해 광고 영상을 5초 동안 봐야 한다. 두 눈을 의심했다.

▲ㄱ 사 잡플래닛 기업 리뷰 일부 갈무리

ㄱ사는 자동차 부품 공장으로 잡플래닛 기준 대졸 초임 연봉이 3천7백만 원이다. 복지제도는 5개를 훨씬 넘는다. 리뷰 중 장점으로는 “돈 많이 줌”, 단점으로는 “군대보다 더한 수직 문화”라고 적혀 있었다. 올해 1월 엔지니어로 일한 전 직원이 쓴 거다. 지난해 11월 생산관리직인 직원은 “대구에서 부러워하는 시선도 많다”면서도 “야근수당, 주말수당은 없지만 관습처럼 나와야 한다”고 했다.

야근, 주말 근무가 많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었나? 생산직 리뷰에는 “비교적 괜찮은 연봉, 야근 많다고 느껴짐”, “돈은 된다, 생산직은 무조건 아웃소싱으로 들어가게 됨”, “일한 만큼 돈 벌어가기 때문에 급여는 높은 편” 등도 있었다. 대구시가 정한 고용친화 기준에 생산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복지가 없다고 적나라하게 적힌 리뷰도 있었다. 역시 제조업 공장인 ㄷ사 리뷰였다. 장점에 “야근이 많은 편이지만, 팀을 잘 만나면 가족 같은 분위기로 근무 가능”, 단점에 “임금이나 복지 부분 부족함”이라는 현 직원의 리뷰가 제일 처음 눈에 띄었다. 장점으로 “업무 강도는 대부분 괜찮음”, “급여 높은 편”, “회사 발전 있어 보임” 등 좋은 평도 많았다. 사무직과 생산직을 막론하고 “야근이 일상이고 토요일 없음”, “급여만 높음”, “복지 수준 낮음”, “일이 없어도 야근 강요”, “복지 혜택 없음” 등 단점이 더 눈에 띄는 건 기분 탓이었을 거다.

▲ㄷ사 잡플래닛 기업 리뷰 일부 갈무리

명색이 대구시가 정한 고용친화기업인데 왜 이럴까. 연봉 이외 근무시간이나 복지 수준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회사 원칙은 고용친화기업에 적합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근무하는 직원들 환경은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리뷰 중에는 “남존여비 사상도 없지 않아 있구요”, “정치 싸움”, “동호회 많으나 시간이 없어서 활동 못 함”, “보기 드문 토요 출근 시행” 등 믿고 싶지 않은 것도 많다.

1000대 대기업에 드는 ㅍ사는 눈에 띄게 장점 리뷰가 많았다. “연봉 많음”, “자유롭게 연/월차 사용 가능”, “신입사원 교육 시간이 길어 배울 수 있는 것 많다” 등이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할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자동차 1차 밴더인만큼 경직된 분위기”, “군대식 분위기를 가지고 있음” 등 리뷰가 달렸다.

▲[사진=2017.02 뉴스민 자료사진]

연봉도 많고, 복지도 좋지만, 사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면…? 고민이 된다. 얼마 전 한국OSG라는 기업은 비정규직 상여금 차별로 징벌적 배상 판정을 받았다. 고용친화기업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더 받았다. 비정규직 처우는 고용친화 요건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답답하다. 이게 정말 청년들이 취업하기 좋은 기업이 맞나? 대구청년유니온은 고용친화기업 선정에서부터 청년의 욕구와 미스매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치 이런 문제를 예상한 것처럼 말이다.

“단순하게 임금 얼마 이상, 복지 몇 개 이상 이렇게 선정하다 보니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질적 만족도는 알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이 기업이 정말 고용친화적인지 모르는 거죠. ‘고용친화’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고, 기업에서 주는 지표만 가지고 뽑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임금이 낮고, 긴 근로시간이 취업에 애로사항이라면, 그것을 개선하는 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이미 대구에서 연봉 높은 기업들 나열해 홍보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요? 대구시 정책에서부터 청년들의 욕구와 미스매치가 생기는 거죠.” – 최유리 대구청년유니온 위원장  

다음 편 계속. [대구 고용친화기업의 민낯] (2) ‘비정규직 비율’조차 파악 못한 ‘고용의 질’ 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