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지역영화

과도기에 선 대구 독립영화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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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부산국제영화제에 ‘내 영화’가 초청받는다는 의미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린 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봄에는 전주, 가을에는 부산’, 국내 영화제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이른바 ‘국롤’ 같은 일정일 테다.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가능한 오랫동안 머무는 게 영화제 애호가들의 로망일 만큼 두 국제영화제는 일상에선 접하기 힘든 영화적 체험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2024년의 전주도 여전히 그랬다.

1996년 시작되어 국내 영화제의 창세기 격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시작부터 ‘아시아 영화의 창’이라는 표어를 앞세우며 세계 영화제 질서에서 (동)아시아 영화의 쇼-케이스 전시장이자 허브 역할을 자임했다. 2000년 개막된 전주국제영화제는 부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몇 년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해 초창기에 ‘디지털 영화’와 ‘독립영화’ 중심 영화제를 표방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영화제별로 제법 부침을 겪긴 했지만, 다행히 거위 배를 갈라버리진 않으면서 중단 없이 이어져왔다. 사회적으로 한 세대가 순환될 만큼의 세월을 거치면서 두 영화제는 단순한 지역 영화축제를 넘어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며 영화는 물론 대중문화 전반에 적지 않은 상징성을 구축한 채 국내 영화제의 양 축으로 서 있는 상태다.

두 영화제는 봄과 가을로 각자의 시간대를 형성하며 일종의 사이클을 구성한 지 오래다. 우스개소리를 조금 빌자면, 가을~겨울에 촬영한 영화는 전주에, 봄~여름에 촬영한 영화는 부산에서 상영되는 걸 최우선 목표로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내 독립영화인들이 자신의 신작을 가장 먼저 세상에 공개하고픈 장이 된 것이다. 독립영화인들에게 자신의 영화가 부산이나 전주에 초청된다는 것은 조선 시대로 치자면 과거 급제 정도의 위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셈이다. 이들 국제영화제는 영화제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특별 기획전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대개 ‘월드 프리미어’ 원칙을 고수한다. 즉 해당 영화제에서 세계 최초 상영을 전제로 공모를 받는 것이다. 전주/부산의 선택은 그만큼 공신력을 인정받으며 일종의 ‘등용문’ 기능을 담당한다. 단순히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넘어서는 ‘라이센스’ 후광 격이다.

모든 게 서울 중심으로 과밀 집중된 한국 사회에서 대중문화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지방러’에겐 더 비좁은 문이기에 어떻게든 인지도를 올리고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 이른바 ‘메이저 영화제’에서 선택받는 건 비길 데 없는 기회이다. 지역 독립영화인들은 어쩔 수 없이 혹은 야심을 품고 자신이 공들여 작업한 신작을 이들 영화제에 제출하고 선정을 기다린다.

여기에서 의문점 하나. 왜 국제영화제는 마치 과시하듯 ‘월드 프리미어’ 원칙을 고수하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하는데 일단 영화제 내부적으로는 상업영화 경계 바깥에 존재하는 낯선 영화들 – 흔히 독립예술영화라 불리는 – 발굴 선구안을 인정받는 의의가 있겠다. 두 번째는 국내에서 특히 심화된 형태인데, 국제영화제가 공적자금 지원을 더 받기 위한 중앙정부 평가기준에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 편수 지표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영화제가 그저 체면치레 혹은 타 영화제와의 경쟁심 때문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건 아닌 셈이다. 어쨌거나 개별 영화인은 자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작업 결실을 ‘전술적’으로 고려해 제출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자연히 각 영화제의 성향이나 경합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나름대로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고 때로는 그런 경향에 대해 날선 비판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엄연히 존재하는 셈이다.

일단 공신력 있는 이들 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를 선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후 작품활동을 위한 상당한 경력과 자산이 되는 건 물론이지만, 대형 영화제에선 그저 영화상영과 관객과의 대화 등 부대행사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 배급이나 개봉을 위한 관계자 면담이나 차기작 제작지원 논의, 교류를 위한 행사 등이 뒤따른다. 지역 독립영화인들에겐 이 영화제에 초대받지 않고서는 쉽게 체험하기 힘든 경험의 장이 즐비한 것이다. 자신의 작업을 평가해주고 충고와 조력을 끌어낼 네트워크 형성은 좁은 지역 독립영화 생태계 외부로 영역을 확장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관객들이 주목하는 지점과는 다른 결에서, 독립영화인들의 영화제에서의 시간은 빠듯하고 치열하게 흘러간다. 특히 자신을 알릴 기회가 서울에 비해 부족한 지역 영화인들에겐 동아줄과 같은 공간인 것이다.

◆ 지역 독립영화 평판에 큰 힘이 되어온 전주국제영화제 내력

그렇기에 지역 독립영화인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전주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길 꿈꾸게 된다. 만약 한국 사회가 일정하게 지역 균등발전이 이뤄지는 상황, 수도권이 우위에 있더라도 최소한 일본처럼 독자적인 광역 중심축(도쿄에 대비되는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이 별개로 구축되어 있다면 이런 편향은 다소나마 경감될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극한의 서울편중은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문화예술인 일반에게 서울로 진출하지 못한 이류 삼류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 독립영화인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역수입’이 필수다. 즉 자신의 영화가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고, 수상 실적을 거두며 더 좋다. 그런 경력을 쌓다 보면 단편에서 장편으로, 개봉과 투자로 이어지는 일련의 링크와 접속할 확률이 높아지기에, 영화를 계속하고 싶다면 선택을 강요당하는 수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의 독립영화인이라고 의외일 리 없다.

전주와 부산이 봄과 가을 국내 영화제의 ‘패왕’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이 두 영화제 상영작 선정이 확인되면 희비가 교차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두 영화제 모두 근래 지역 영화인들의 작업이 자주 오르내리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그 출발점이자 기회 제공은 전주의 몫이 되어왔다. (여기엔 몇 가지 사연이 있지만 일일이 옮기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한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꾸준히 대구 지역 독립영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호의적 평가를 내려왔기에 ‘대구 독립영화 르네상스’와 시기적으로나 경향적으로나 떼어낼 수 없는 근접성을 지닌다.

2017년 18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지역에서 꾸준히 단편 작업을 해온 김용삼 감독의 <혜영>에 한국단편경쟁 감독상을, 성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의 전반기 상황을 속보 형태로 담은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에 다큐멘터리상을 수여했다. 출중한 단편독립영화를 시상하는 국내 영화제는 적지 않지만, 전주와 부산의 선택에는 무게감이 실리게 마련이고, 김용삼 감독의 <혜영>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런 평가에 힘입어 전국 각지의 영화제와 상영회에 호명되었다. 그리고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는 독립영화가 과거 수행해온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과 주류 매체가 방기한 대안 미디어 활동에 대한 응원을 보탠 평가였다 봐도 과언이 아닐 테다.

2018년 19회 영화제에선 대구 독립영화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온 최창환 감독의 첫 장편 <내가 사는 세상>이 CGV아트하우스 – 창작지원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지역 독립영화가 단편으로 조명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환경의 제약상 시도가 드물었던 장편으로 수상한 건 작지 않은 결실이었다. 최창환 감독은 연이은 후속작 <파도를 걷는 소년>으로 다음해 20회 영화제에선 한국경쟁 배우상과 심사위원특별언급에 호명되어 많은 독립영화감독이 봉착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돌파하고 지역뿐 아니라 국내 독립영화계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쌓는 분기점을 맞기도 했다.

2020년 21회 영화제에선 박문칠 감독이 이번엔 지역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과 협력해 위안부 피해 당사자 생애사를 재구성한 작업 <보드랍게>로 두 번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지역 내 의제에 조응하며 기록작업과 형식실험을 결합한 다큐멘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하는데 전주가 한몫한 셈이다. 2021년 22회 영화제에선 대구영화학교 1기 출신 박재현 감독의 <나랑 아니면>이 한국단편경쟁 감독상을 수상해 지역의 차세대 독립영화인들이 만만치 않은 내공을 지녔음을 증명했고, 감정원 감독의 첫 장편 <희수>가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수상과는 관계없이 좋은 평가를 얻기도 했다. 2023년 24회 영화제에선 본인의 영화세계 1막을 결산하고 다양한 실험과 도전으로 2막을 열어가는 과도기 모색이 살아 있는 김현정 감독의 <유령극>이 한국단편경쟁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 지역에서 제작된 독립영화가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진출하고 수상하는 건 이제 낯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무게감과 파급력에서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역 작품에 기울여온 관심과 응원은 독보적이고 일관되게 유지되어왔다는 점에서 타 영화제와 차별성이 엿보인다. 개별 영화인에게 큰 힘이 되어준 건 당연하지만, 아무래도 전국에 수십 개가 넘는 정규 영화학과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변경’이라 해도 별로 어긋나지 않을 지역 작품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조명은 중요한 자산이 되어준다. 전주와 부산, 그리고 몇 영화제 초청과 수상결과는 대략적인 지역 독립영화의 중흥기와 고스란히 일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역대 최다 지역독립영화 상영, 그 세부 내용

2024년 25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상영작 숫자만 놓고 본다면, 지역 독립영화 역대 최대 실적이 될 테다. 무려 일곱 작품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들이 소개되었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영화제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쟁부문과 초청부문 중에서는 전자가 더 중시되며 당해 영화제의 선택이자 입장으로 추정되는 편이다. 이는 해당 부문 작품들이 영화제가 비상업영화 중 선택해 알리려는 방향성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작가와 경향을 소개하려는 영화제의 핵심기능이기도 하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경쟁/한국경쟁(장편)/한국 단편 경쟁 부문이 가장 핵심적인 경쟁부문이라 하겠다. 해당 부문의 경우, 특히 장편이라면 대개 두 편 이내 경력을 가진 신진 감독의 작업에 개방된다. 그리고 보다 경력이 많은 감독의 경우엔 ‘코리안시네마’ 부문으로 배치한다. 신예에게 보다 주목도와 기회를 배려하기 위해서다. 그 외에 영화제의 판단과 방향에 따라 다양한 기획전과 초청부문이 배치된다.

지역 감독의 작품 7편 중 공식 경쟁부문에 선정된 작업은 단편 경쟁 1편, 코리안시네마에 뽑힌 작업은 장편 3편이다. 그 외에 특별상영 부문에서 배리어프리 섹션 1편, 지역영화 쇼케이스 섹션 2편이 추가로 초청되었다. 단편 경쟁과 코리안시네마 합산 4편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 상영되었다.

한국 단편 경쟁은 국내 단편독립영화 경쟁이란 점에서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이들에게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자신의 이름으로 연출한 작업이 마치 일종의 ‘시민권’을 얻듯이 조명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단편으로 출발하게 마련인 영화제작 환경에서 단편에 특화된 영화제가 거의 사라진 현재 영화제 생태계를 고려하면 전주나 부산 같은 메이저 영화제 단편 경쟁 진출은 누구나 꿈꾸고 고대하는 자리일 테다. 2024년 전주에는 (이제 지역 독립영화인의 인큐베이터로 자리잡은) 대구영화학교 3기 촬영전공 출신 이호철 감독의 첫 연출작이자 2023년 대구 다양성 영화 제작지원작 <왜행성> 1편이 진출했다.

▲영화 <왜행성> 스틸이미지

해당 작품은 30여 분 분량으로 단편치고는 긴 분량에다, 어느새 ‘대구영화’ 하면 떠올리게 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립된 주변부 인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흐름을 계승한 듯 작업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마치 반어법처럼 표현된 ‘태양’은 이름과 다르게 정식 행성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반쪽짜리 별, 즉 행성과 소행성 사이에 위치한 ‘왜(소)행성’ 같은 삶을 살아간다. 우울증과 지병에 시달리는 엄마를 봉양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주인공은 하지만 반듯하고 성실하게 공부도 열심히, 엄마 돌봄도 꾸준하다. 그런 주인공을 갸륵히 여긴 종교기관의 도움도 받는다. 하지만 엄마의 우울증은 심해져만 가고 ‘태양’은 집을 나간 아빠와 형의 몫까지 감당하는데 점점 더 지쳐간다. 우리가 스쳐지나기 딱이지만 깊은 슬픔과 풀 길 없는 상처를 묵묵히 삭히는 주인공의 무표정을 따라가게 만드는 작업이다.

코리안시네마 부문에는 이제 지역 독립영화를 떠받치는 ‘얼굴’들의 신작이 대거 포진했다. 최창환 감독의 <수학영재 형주>, 장병기 감독의 <여름이 지나가면>, 김현정 감독의 <서신교환>이 그 주인공들이다. 각각 <내가 사는 세상>, <맥북이면 다되지요>, <나만 없는 집>과 <입문반> 같은 전작들로 대구에서 독립영화가 그것도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존재 증명을 해내며 주목을 이끌었던 감독들이다. 이제 장편으로 승부해야 할 단계에 접어든, 지역에선 중견 감독 대열에 진입한 이들의 신작은 영화제 안팎에서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영화 <수학영재 형주> 스틸이미지

<수학영재 형주>의 경우엔 친부를 찾기 위한 16살 소년의 여정을 성장담과 연결하고, 여기에 청춘 로맨스와 가족영화, 로드무비 요소를 결합한다. <왜행성>의 ‘태양’이 이 작품에선 ‘형주’로 출연하는데 공히 해당 연기자의 튀지 않지만, 사연을 잔뜩 품은 것 같은 마스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발로일 것이다. 주인공이 제목 그대로 ‘수학영재’라는 설정은 본작 특유의 유머 코드를 형성하며 이제는 완숙해진 감독의 연출력을 제대로 구현한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이미

<여름이 지나가면>은 감독 본인에겐 이름을 알리게 해준 작업이지만 어쩌면 장병기 감독의 작가적 지향과 세계관을 관객이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 <맥북이면 다되지요> 이후 꾸준히 코미디 요소를 덜어내고 인간 본성과 주변 환경을 현미경 관찰하듯 그려내는 자연주의 경향의 연장선에 서 있다. 성공작의 그림자가 너무 짙은 나머지 오히려 과소평가된 감독의 이후 작업 중에서도 가장 장대하고 복합적인 서사를 다루며 여기에 (감독 본인의 자전적 경험담이 비롯된) 입시 조건을 위한 농어촌전형 편입학이라는 시사 쟁점을 풀어낸다. 경력이 쌓인 감독답게 학생졸업영화의 사회문제 풀이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세밀하고 중층적인 설정, 그리고 개인이 규정당하는 사회적 편견과 계급 문제까지 뚫어내는 저력이 있는 작업이다.

▲영화 <서신교환> 스틸이미지

첫 장편 <흐르다> 개봉 이후 자전적 경험을 넘어 다양한 형식실험을 거듭하며 2단계 영화세계에 도전하는 김현정 감독은 지역을 벗어나 근래 강원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작업 중이다. 작년 전주에서 선보인 단편 <유령극>에 이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형식을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는 <서신교환>은 감독 본인의 영화 탐구가 고스란히 작품 전개에 반영되고, 작품 속 배경이 되는 폐광지역 기록작업 관련해서도 흔히 연상할 사회문제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쳬의 표현방식과 관계 맺기에 질문을 꾸준히 던지는 과도기적 실험의 연장선에 서 있다. 자전적 체험의 극대화에 방점이 찍혀 있던 1단계를 지나 마치 구도하듯 도전을 이어가는 감독의 종착역이 궁금해지는 작업이다.

◆ 영화제의 안과 밖, 지역 독립영화가 처한 조건들

▲영화 <유령극> 스틸이미지

이외에 특별상영 부문에서 장애인 접근성을 구현한 배리어프리 버전에 김현정 감독의 <유령극>이 상영되었고, 새롭게 신설된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로 김은영 감독의 장편 <더 납작 엎드릴게요>와 장주선 감독 단편 <겨울캠프>가 초대되었다. 후자의 경우 영화제 프로그래밍의 선택보다는 협력 차원에서 지역별 독립영화단체들의 추천으로 선정된 작품들이다. 어찌 보면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보내는 호의의 표시로, 꼬아서 본다면 지역 독립영화를 일종의 ‘보호종’ 취급하는 경우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굳이 비수도권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별도로 지정해 상영하는 게 어떤 유의미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의문부호가 붙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이라도 더 상영기회가 생기는 창작자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는 기회 부여의 측면에 대한 논란이라기보단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서열화하는 사회풍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 문제에 더 가까울 수 있겠다.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이미지
▲영화 <겨울캠프> 스틸이미지

또한 지역 독립영화의 범위와 경계에 대한 의문부호는 여전히 목록을 정리하고 경계를 구획하려는 이들에게 숙제를 안긴다. 김현정 감독의 경우 <유령극>에 이어 <서신교환>이 연속으로 대구경북이 아닌 강원지역을 배경으로 완성되었지만, 제작 지원이나 스태프의 경우 딱 어느 지역 작업이라 구분 짓기 모호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그래서 특정 기준에 의하면 대구영화도 되고 강원영화도 되는 상황에 봉착한다. 사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싶긴 하지만 실무적으로 복잡해진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역시 올해 전주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오른 신동일 감독의 장편 <문경>은 제목처럼 경북 문경에서 전체 촬영이 진행되어 지역을 배경으로 완성된 작업인데 해당 작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질문이 나올 법하다. 물론 창작자 입장에선 신토불이도 아니고 자신이 활동하던 지역만 고수하란 법도 없으니 얽매이는 게 오히려 구속될 테지만 말이다. 협의적으로 좁게 해석되지 않으면서도 지역영화 생태계 고유의 순환을 활성화하기 위한 모색은 계속 이어져야 할 테다.

2024년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지역의 많은 작품이 소개되었지만 누구나 기대했을 수상 실적은 나오지 않았다. 대구 지역영화 활황에 큰 몫을 한 게 좋든 싫든 바깥에서 들려온 수상결과였음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잔치에 한 방이 없었다고 평가할 법하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상황을 경유하고 있음을 간과한 인식에 가깝다. 이미 2010년대 중반 전후 작업을 개시해 족적을 남긴 지역 감독들은 중견에 진입했고, 이들은 이제 영화제 수상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비평적 성과와 극장 개봉이란 환경에 적응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흔히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이나 베니스, 베를린과 달리 국내 영화제는 신진 급 외엔 경쟁부문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코리안시네마에 진출한 3편의 선배급 감독들의 장편이 양호한 품평을 얻었고, 근래 지역 영화인 세대 구분의 척도가 된 대구영화학교 기수 중 3기 연출작이 처음으로 메이저 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그리 비관적인 성과가 아니다.

다만 전주에서 만난 영화제 관계자와 평단의 의견에 더 신경이 쓰여지긴 했다. 어떤 이는 흔히 ‘대구독립영화’라는 경향성이 계승 및 심화되기보다는 답습되면서 점차 색이 옅어지는 느낌을 전했다. 사회의 그늘과 소외된 이들을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조명하지만, 그 깊이가 전만 못하다거나 묘사에만 그친다는 것이다. 혹은 스타일은 이전 선배들과 유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출되어야 할 대안적 전망에는 도전하지 않는다는 평판도 있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흔히 서울(그리고 부산)에 편중된 정규 영화학과에서 기성품처럼 찍혀 나오는 작업에 대비해 ‘날 것’ 같은 흥미로움으로 조명되던 ‘지역독립영화’의 매력이 이제 여러 지역에서 작업이 양산되면서 무뎌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대구지역 영화 역시 이제 특별히 새롭게 다가오는 요소가 덜하다는 것이다.

수상실적은 매년 이어질 순 없다. 개인적으로는 2~3년에 1번씩 흐름을 타면 족하다는 입장이다. 개근상을 수상하듯 매년 지역의 영화가 실적을 올린다면 오히려 그런 사이클에 속박되거나 수상을 위해 규격화되고 요령을 첨가하는 작업 관행이 스며들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에 영화제에서 수상 실적은 결과론적 평가로 그치고, 영화제 전후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관계자/관객 평가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기능이 어느 영화제나 취약해졌기에 오히려 더 수상 결과에 집중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거칠게 단견을 늘어놓자면, 중견 감독들의 신작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각자의 새로운 도전과 함께 기존의 작가적 지향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신예들의 작업은 (당연한 경우이지만) 아직 자신들만의 방향과 개성을 영화 속에 인장으로 새기기엔 좀 더 숙성이 필요해 보인다. 정밀한 묘사와 소외된 단면을 향한 시선에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적 입장과 판단이 더해져야 할 ‘진화’의 과도기로 해석해본다. 물론 다음 단계로 향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더불어 충족되어야만 한다.

<작품정보>

[한국단편경쟁]

왜행성 The Dwarf Planet
2024│Fiction│32분│12세 관람가
감독 이호철
출연 정다민, 안민영, 김준석, 김하늘, 정민지, 한희은

2023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지원작

[코리안시네마]

서신교환 Letters Unreeling
2024│Fiction│62분│전체관람가
감독 김현정
출연 김소형, 박주환

수학영재 형주 Journeys in Math and Genetics
2024│Fiction│119분│전체관람가
감독 최창환
출연 정다민, 곽민규, 김세원, 신기환, 우연서, 김일두

여름이 지나가면 When This Summer is Over
2024│Fiction│115분│12세 관람가
감독 장병기
출연 이재준, 고서희, 최현진, 최우록, 정준

2022 대구다양성영화 제작지원작

[특별상영: 배리어프리 버전]

유령극 Ghost Play
2024│Fiction│25분│전체관람가
감독 김현정
출연 고예준, 서인수
배리어프리 버전 연출 김현정
음성해설 내래이션 이현주

[특별상영: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

더 납작 엎드릴게요 Will you please stop, please
2023│Fiction│63분│전체관람가
감독 김은영
출연 김연교, 장리우, 손예원, 임호준

2023 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겨울캠프 WINTER CAMP
2023│Fiction│29분│15세 관람가
감독 장주선
출연 우연서, 백송희, 김수정, 손호석

2022 대구다양성영화 제작지원작
2023 24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