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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좋아하던 것 중 어른이 되면서 싫어진 것이 있습니다. 펑펑 내리는 눈과 명절입니다. 펑펑 내리는 눈이 싫어진 이유는 출·퇴근길이 막히는 번거로움 때문이고, 명절이 싫어진 이유는 벌초나 제사 음식 마련 등의 노동과 양가 어르신 및 친척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입니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명절 기간 동안 친척들 간에 벌어진 일로 다양한 송사가 진행된다는 사실은 씁쓸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설날과 추석 이후인 2~3월과 9~10월은 다른 달보다 이혼 건수가 훨씬 증가합니다. 말하자면 이혼 변호사 입장에서는 성수기가 되는 소위 ‘웃픈’ 상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명절만 지나면 이혼 건수가 증가하는 것일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고부갈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일본에서는 남편이 죽은 후 이혼을 하는 ‘사후이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시어머니가 남편 묘지 관리 등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기 때문이랍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부부갈등의 원인으로 고부갈등을 꼽는 여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어머니가 신혼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거나, 반찬을 준다는 이유로 연락도 없이 비밀번호로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아들 집이 내 집인데 뭐 어떠냐’, ‘내가 사준 집인데 뭐 어떠냐’고 말하면서 수시로 들어와 집안 청소 상태나 화장품, 옷 등을 감시하고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대적하는 요즘 며느리들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예전에는 참고 또 참는 며느리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할 말은 하는 며느리들이 많습니다. 또한 며느리들의 친정 부모님들도 더 이상 참지 않습니다. 이렇게 평소 누적된 고부갈등이 명절이라는 도화선을 따라 터지게 되면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고부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는 남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남편이 중재자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건이 단순한 명절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고 저와 같은 이혼 전문변호사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의 배우자가 나의 원가족과 원만하게 지내기를 원한다면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지 말고 적극적인 중재와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판례도 자신의 원가족과 배우자 사이를 중재하지 않고 방관하는 경우 혼인 파탄의 사유가 된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반가운 친척들을 만날 수 있는 명절.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올 추석에는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서로를 조금만 더 이해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박경연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형사 전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