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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아파트단지에서 넘어온 불빛이 불탄 공장의 윤곽을 비춘다. 화재 이후 공장과 노동자를 버리고 철수해 버린 탓인지, 반사광에 번뜩이는 공장도 날 선 듯 보였다. 공장 위, 지난 1월 8일부터 248일째 고공농성을 이어오는 해고노동자 소현숙, 박정혜 씨가 있다. 이들은 지난 설 명절을 농성장에서 보내고도 오는 추석 또한 농성장에서 버티려 한다.
어둑한 공장 아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공장의 적막을 걷어내고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다. 11일 오후 6시 30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는 구미 지역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한국옵티칼 해고자들을 응원하려는 노동자·시민 80여 명이 모여들었다.
비막이 천막이 무대가 됐다. 음향 설비는 불안정했지만, 비는 음향은 ‘떼창’과 박수로 채워졌다. 고공농성 천막 바로 아래에서 참가자들의 노래와 춤으로 2시간이 가득 찼다.
흥겨운 시간으로 힘을 복돋아준 다음, 이들은 엽서를 써 고공농성장으로 올려 보냈다. 한 참가자는 “눈물 날 거 같아서 전화 한 통 못 걸었다. 지금도 힘 내고 있을 거기 때문에 힘내란 말 하기가 어렵다. 필요할 때 언제든 달려오겠다는 약속만 하겠다. 항상 사랑하고, 건강 조심해달라”라고 적었다.
얼마 전 긴 투쟁 끝에 현장으로 복귀한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도 눈에 띄었다.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은 해고 후 10년 가까이 거리에서 투쟁하다 최근 공장에 복귀했다. 조합원 박성철 씨는 “첫 명절에는 별 생각 없었지만, 매번 반복되니까 명절이 싫었다. 사람들이 걱정도 했지만 반복되니 할 말도 없었다. 한국옵티칼 해고자도 마찬가지일 그 마음을 잘 안다”며 “여기 모인 노동자들은 우리가 해고자일 때도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여기 말고 어디 가서 아프다고 이야기하겠나. 같이 격려하고,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농성 중인 소현숙 씨는 “추석맞이 문화제를 진행하니 힘을 크게 받는다. 노동자가 지쳐 떨어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자본에 대항할 힘은 연대와 지지 뿐”이라며 “우리가 지쳐갈 때마다 힘을 주셔서 감사하다. 노동자를 기계 취급하고 버린 자본과 싸움은 이제부터다.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억지를 넘어서 일터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연대를 부탁드리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추석 잘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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