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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거다.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최종적인 법 해석권을 가진 대법원에서 이건 경주시의 불허가가 정당하다고 했는데, 그것을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가 뒤집은 거다. 대법원 위에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있는 거다. 이건 법치주의 국가가 아닌 거다. 그런데도 이걸 경주시가 불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속력이라는 게 있어서 경주시는 소송을 할 수가 없고, 주민들도 소송할 수가 없다”
하승수 변호사가 목소리를 높여 지난 6월 이뤄진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 결정을 비판했다. 지난 6월 24일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경북 행심위)는 경북 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 일대(두류리 798-1번지 일원)에 산업폐기물 매립장 건립을 추진하던 업체가 경주시의 사업계획 부적합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경북 행심위는 “피청구인(경주시)이 주장하는 인근 주민의 건강 및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없다. 주민들 및 주변 환경 오염의 우려만으로 청구인(업체)의 사업진입 자체를 차단하는 행위는 청구인의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면서 경주시의 부적합 통보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부당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하승수 변호사의 설명처럼 거의 흡사한 내용의 산업폐기물 매립장 사업이 2017년 추진된 바 있고, 당시에는 경북 행심위뿐 아니라 대법원까지 경주시의 부적합 처분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의 판단까지 경북 행심위가 뒤집는 획기적인(?) 결정을 한 것이어서 그 배경을 두고 온갖 의혹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은 이 문제를 두고 행정심판제도 전반을 살피는 토론회까지 개최했다. 지난 19일 오후 2시 경북 안동 옥동 소재 경북도당 회의실에서 열린 ‘행정심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는 하 변호사와 정하명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자로 참여하고, 이강희 경주시의원, 임동규 김천시의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중앙행정심판위원이기도 한 이혜진 안동대 법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행정심판 제도의 이해를 도왔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행정심판 제도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
경북 경주시 폐기물매립장 둘러싼 처분과 경북 행정심판 사례 쟁점
하승수 변호사, “제가 본 사례 중 최악의 사례···대법원 판결까지 뒤집어”
정하명 교수는 행정심판제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포괄적 발제를 준비했다. 정 교수는 “행정심판 제도는 우리 헌법에 근거하고 있는데, 헌법 107조를 보면 재판의 전심절차로서 행정심판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며 “행정처분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 법으로 따지기 전에 행정청의 자율적인 통제 기능으로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하 변호사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현행 행정심판 제도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하 변호사가 제시하는 사례들은 모두 경주시 사례처럼 폐기물 매립장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안이다. 2020년 충남 당진에 민간업체가 폐기물 처리 시설 사업을 추진하다가 당진시로부터 부적합 판단을 받았지만, 충남 행심위에서 당진시 결정이 뒤집혔다. 이 과정에서 시설이 들어오는 지역 주민들은 행정심판 과정을 알지 못한 채 의견 개진 한 번 못 해봤다.
2021년엔 경기 화성시에서 민간업체가 사업장일반폐기물 매립장 건립을 추진하다가 화성시로부터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받았지만, 경기 행심위에서 마찬가지로 뒤집혔다. 하 변호사는 “이 건도 주민들이 몰랐다. 재결서를 읽어보니 기가 막힌 건 경기도 행심위가 화성시 인구가 늘어 생활폐기물이 증가하고 있어 매립장이 필요하다고 했다”며 “업체가 추진한 시설은 생활폐기물 매립장이 아니라 산업폐기물 매립장인데 판단 이유가 생활폐기물 증가였다. 이건 폐기물관리법의 ABC도 모르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하 변호사는 “제가 본 사례 중 최악의 사례가 경주 사례”라며 “6년 전 경북 행심위는 경주시가 불허한 게 맞다고 했는데, 6년 후인 올해 180도 입장이 바뀌었다.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폐기물 매립장을 하는데 어떻게 180도 입장이 다를 수 있냐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걸 보면서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업체가 행정심판제도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걸 넘어서서 대법원 판결을 행정심판으로 뒤집으려는 시도까지 하는구나 하는 걸 이번에 봤다”며 “이건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태라고 생각한다. 경주시 안강읍 사안을 이 사안 자체로만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강희 경주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도 “행정심판 과정에서 대구지검장 출신 대표가 있는 법인이 업체 대리를 하고 있는지도 행심위 끝나기 일주일 전에 알았다. 부랴부랴 알아보니 대리인 측에서 구술 심리 참여도 했더라”며 “6월에 있는 마지막 행심위에 주민들에게 말 할 기회라도 달라고 해서 급하게 주민 4명이 참석했는데, 이날 심리 끝나고 1~2시간 만에 재결이 나왔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던 마지막 심리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주민들은 정말 고생이 많다. 조용히 살던 주민들은 의료폐기물 소각장, 산업페기물 소각장으로 인한 악취 문제로 끊임없이 기본적인 생활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며 “경주는 기초지자체 중 전국 최고 수준으로 산업폐기물 매립량을 갖고 있다. 가히 경주는 산업폐기물의 천국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토론에 참석한 한 경주 주민은 “이영수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에게 부탁드리고 싶다”며 “경주시의회는 이강희 의원이 계시지만 대부분이 국민의힘이다. 그러다보니 경주에 많은 폐기물 처리시설이 입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영수 위원장께서 경주시 폐기물 문제를 민주당 중앙당 차원에서 적극 의제로 다룰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이영수 위원장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행정심판 제도가 대법원 결정까지 뒤집는 상황이 되도록 제도가 운영되는지 알고 놀랐다. 이 일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관이라고 한다. 바로 민병덕 의원과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다. 행정심판 제도가 영리법인에 의해 악용되는 사례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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