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희생 넘어 끝까지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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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일, 대구의 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남구에서 전세보증금 8,400만 원으로 전세계약을 맺었지만, 다가구 후순위에 해당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당시 제정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에 근거해 피해자 신청을 했지만, 피해자 대신 ‘피해자등’으로 인정받는데 그쳤다. 이의신청을 하고 피해자로 인정 받긴 했지만 결정문은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전달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난 1일 국회는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수준에 그쳤다.

전국 곳곳에 피해자와 연대단체들이 모인 대책위원회가 꾸려진 상황에서, 대구에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대구대책위)가 피해자 상담, 제도 마련 촉구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구대책위는 여전히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갈 길이 멀다고 본다. 대구 뿐 아니라 경북 전역에서 피해 사례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해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의 고통도 현재진행형이다. 전세사기 피해 예방 대책으로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제시한 전세가율 규제, 등기 의무화,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 임대사업자 관리 감독 강화 등 제도 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이 요구해 온 사각지대 피해자 지원 방안 마련, 피해자 인정 요건 완화 역시 이번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2일 오후 1시 중구 CGV한일극장 앞에 마련한 추모분향소에서 ‘대구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2일 오후 1시,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 10개 단체가 모인 대구대책위는 중구 CGV한일극장 앞에 마련한 추모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 전세사기 희생자의 1주기를 추모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고인은 당시 제대로 된 특별법 개정과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활동을 했다. 본인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특별법상 피해자 인정 이의신청, 긴급생계비 지원 신청을 하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며 고인의 죽음이 잘못된 제도와 전세사기를 방치한 국가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정태운 전세사기 대구피해자모임 대표는 “고인의 유서에는 ‘나도 잘 살고 싶었다’고 적혔다. 그 마음은 전국 수많은 피해자들의 외침과 같다. 고인의 사망 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 보증금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희생자 수는 늘고 있지만 여전히 법은 피해자를 가려내는 데만 급급하다”며 “삶의 뿌리인 주거가 흔들리는데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며 미래를 꿈꾸고 결혼과 출산을 말할 수 있겠나. 주거권이 무너진 사회에서 청년은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린 피해자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정 대표는 “고인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 자신이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발로 뛰고 자료를 모으고 목소리를 냈다. 때문에 고인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 아닌, 무책임한 제도, 느린 행정, 외면하는 정치가 만들어 낸 사회적 타살”이라며 “여전히 우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에 있다. 살고 싶다는 그 절규에 사회가 응답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석진미 경산 전세사기 대책위 공동위원장도 “전세사기는 단순한 계약 분쟁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노린 조직적 사기다. 이 구조적 범죄를 방치한 채, 피해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법과 제도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임대차 시장의 비대칭은 심각하고, 전세보증금 보호 장치는 실효성이 약하며, 수사는 더디고 처벌은 미약하다”며 “우린 더 이상 홀로 울지 않겠다고,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늘 추모제도 다시는 같은 희생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이날 오후 8시까지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분향소를 운영하며, 오후 7시에는 1주기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한편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대구시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 건수는 1,021건, 피해자 인정(피해자 등 포함) 620건, 불인정 293건이다. 나머지는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620건의 피해액은 676억 원이며, 이 중 20~30대 피해자가 425명(68.5%) 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