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죽음과 삶은 하나의 같은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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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풀들이>(현대문학, 1994)는 1967년 <현대문학>지의 추천 완료를 받으면서 시단에 나온 박주일(朴柱逸, 1925~2009)의 통산 아홉 번째 시집이다. 고희(古稀)를 앞두고 나온 이 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의 노년, 아니 노년이 직면한 죽음을 응시한다. 이 시집에 실린 모든 시가 그 주제를 맴돌고 있지만, 죽음에 다가가기 전에 먼저 경험되는 것이 있다. ‘병상시초–가슴앓이’ 전문을 보자.

“그 누가 / 이 살덩어릴 헐값으로 넘겨받아 / 요행히 쓰일 데가 없나 하고? / 약봉지를 찢는다. / 알약 다섯 개 / 고운 앵두빛깔이 하나 / 나머지는 목통을 휘어넘기기엔 / 미련한 덩치라, / 만약 요 목숨이 알약 / 몇개에 매달려 간들간들 한다면 / 부질없는 노릇이라 느끼는데 / 갑작스레 / 따뜻한 겨울산 한 덩어리가 / 내 앞에 굴러와 조용히 / 주저앉는다. 웬일이고……” 인간의 삶이 생로사(生老死)로 압축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매정한 자연은 인간이 태어나고(生) 늙고(老) 죽도록(死) 내버려 두지 않았다. 태어나서 늙는 것과 죽음 사이에 아프도록(病) 설계해 놓았으니, 생로병사(生老病死)인 것이다. 시인은 ‘병상시초-오감탕을 마시며 2’ 에서 이 서러운 통과제의를 이렇게 노래한다.

“약사발을 밀치고 / 바라보는 하늘은 9만 리 / 병들었구나. // 하늘밑으로 / 창백한 빌딩 사이로 / 수 없는 내 약사발이 끝도 없이 / 곤두박질하고 있었다. / 참새 떼는 떠나고 / 겨울은 깊은데 / 이제 이웃은 영보이질 않고…… // 멀리 어머님 무덤가에 / 오늘은 / 첫눈발이 쌓이고 있겠구나.” 시인은 40년 동안 경북여중고·의성중학·포항중학·대구여고·대구상고·선덕여상(경주)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랬던 시인의 노년이 이처럼 고독했다니? 아무리 살뜰한 간병인과 치병을 기원하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하더라도 병상을 차지한 사람이 “이웃이 영보이질 않고”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억지가 아니다. 병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이 이식수술 등을 통해 병을 나눌 수 있게 만들기도 했지만, 죽음만은 그럴 수 없다.

이런저런 글에서 너무 자주 접하게 되어 진부해져 버렸지만,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를 개척한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를 설정한 바 있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퀴블러 로스가 제시한 다섯 단계를 엉터리라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저 이론에서 이분법적인 두 극(極)이 평행선을 이루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로 융합·수렴되는 서양 특유의 대결적인 사유방식을 간파하게 된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제비풀들이>에도 이 다섯 단계가 없다고 말 할 수 없을 테지만, 시인에게는 그 단계가 퀴블러 로스의 구분처럼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시에 내가 조만간 사라질 것에 대한 우울의 감정은 있지만, 죽음에 대한 부정이나 분노는 찾아 볼 수 없다. 시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담담”(‘산불 4’ )이다.

마르틴 하이데거에 따르면 죽음은 지금까지 가장 친숙했던 세계를 잃는 초유의 경험이 자, 죽음이야말로 비본질적인 것에 의해 은폐되어 온 나의 본질(존재자)를 찾도록 허용해주는 유일무이한 계기이다. 이를테면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생 동안 자신을 지탱해온 모든 기호(記號), 다시 말해 가문·출신지역·학력·지위·명성 등의 한갓된 것들을 떨쳐낸다. 죽음은 지금까지 망각해온 나의 본질을 마주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퀴블러 로스의 다섯 단계가 보여주었듯이, 대개는 죽음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바퀴 2’ 를 보면, 시인만이 담담하다. “나를 굴리는 바퀴와 / 바퀴를 굴리는 나 / 그래서 우린 더불어 살아간다. // 오토바이는 소란하고 / 돌아가는 우주는 끝내 / 소리가 없다(소릴 낸다고 상상해보라). // 가슴 폭의 / 넓음과 좁음의 차인가, / 아무튼 / 나와 나 스스로 굴러가든 / 굴러가게 하든 / 그냥 멍청히 제자리에서 영원히 /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 이래서 세상은 피가 돌아서 / 살아 있는 한 좀체 // 녹쓸지 않는다.” 죽음이 있어 삶도 녹쓸지 않는다.

장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