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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탄핵 국면 속 정치, 사법, 행정 등 케이(K) 엘리트의 민낯이 드러났다. 윤석열이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고, 사법부 역시 정치 개입 논란을 만들었다. 123일간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들은 내란 종식과 함께 이러한 ‘엘리트 권력 해체’를 촉구했다.
무대 위 가수로, 깃발을 든 시민으로 대구 윤석열 퇴진 광장에 꾸준히 참석한 김언수 씨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엘리트 권력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록밴드 ‘시나몬잼’의 보컬인 언수 씨는 BTS보다 많고 콜드플레이보다 적은 나이로 대구에 살며, 발 딛고 선 지역에 대한 고민이 많다. 대구·경북 지역은 엘리트주의에 경도된 정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수성구의 명문 고등학교에는 서울대 합격생 수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어요. 팔공산 갓바위에는 자녀의 명문대 합격을 위해 매일 기도하러 오는 학부모들이 있죠. 자녀가 잘 먹고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을 이해해요. 대구·경북 시민은 엘리트 계급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경험이 많잖아요. 박정희부터가 그 성공 신화 중 하나이고, 영남 출신 법조인이 많다는 것도 그 방증이죠. 재밌는 건 ‘말투’예요. 19살까지 대구에 살다가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엘리트 코스를 밟는 이들은 대구 사투리를 그대로 써요. 대구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서울 엘리트 계급 사회에서 흠이 되거나 부끄럽지 않은거죠. 그만큼 대구·경북 출신이 (엘리트 계급 내에) 많다는 것 아닐까요? 그걸 보면 ‘저렇게 돼야지’라는 심리가 강화될 수밖에 없어요.”

언수 씨가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발발한 원인으로 주요하게 꼽는 것도 이런 엘리트주의다. 검찰로 대표되는 사법 엘리트,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대표되는 행정 엘리트, 육군사관학교로 대표되는 군사 엘리트, 경찰대학교 출신의 경찰 엘리트 등 한국 사회 엘리트들이 합작해 만든 작품이라 보기 때문이다. 소수에게 너무 많은 권한과 재량이 집중됐고, 그렇게 형성된 특권 계급은 권력을 독식해 왔다.
특히 언수 씨가 문제라 보는 건 ‘검찰 엘리트’다. “검찰은 자기들이 가진 기소권과 수사권을 남용해서 상대를 제거하고 압박하는 행동을 계속해 왔어요. 그런 검찰의 수장인 윤석열 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대화나 타협을 통한 민주주의적인 해결보다는 자신의 권한을 총동원해서 상대를 제거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려고 시도해 왔죠. 그런 시도의 결정판이 이번 내란 사태라고 생각해요.”
엘리트 계급의 권력 독식이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내란 불씨가 살아 있다고 보는 언수 씨는 내란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우리 사회의 1순위 과제로 ‘검찰 개혁’을 꼽았다. 지금이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고 민주적인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검찰 개혁을 할 최적의 시기라 본다.
나아가 엘리트 계급 타파를 위해 공수처의 역할을 확대하는 등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평등을 보장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 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으며, 사회적 특수계급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위해 정치권이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헌법에 나오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 인의 기회를 균등히 한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어렸을 땐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한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우리 사회 기반이 되는 순서 같아요. 정치가 올바르게 되어야 경제가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경제 위에 건강한 사회가 성립되고, 그 사회 속에서 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거죠. 내란 사태를 겪으며 문화예술인으로서 문화에만 매몰돼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우리의 기반인 정치, 경제, 사회에도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되는거죠. 많은 문화예술인이 윤석열의 내란에 항거하는 데 뜻을 같이했어요. 하지만 일부는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자발적으로 침묵했죠. 민주공화국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내란에 침묵한다는 건 나뭇가지가 다 썩어가는 데 ‘나는 아름다운 꽃이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 같아요.”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