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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을 챗지피티로 애니메이션화)

“배양액 같은 역할을 하는거죠. 색깔론 혹은 파시즘의 배양접시 같은 역할을 일부 대구·경북이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는 전국에서 박정희 동상을 가장 많이 보유하는 지역에 살고 있어요. 박정희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대구시장이 공식적인 힘을 발휘해 대구시의 사업으로 동상을 만드는 건 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일을 하는데 저항이 있지만, 다시 당선이 되죠. 우리 지역의 샤이한 보수들이 날 지지해주는 건 박정희 때문이라는 인식이 그들에게 있지 않을까요.” (김기훈)

김기훈(40대, 대구) 씨는 내란을 일으킨 극우적 정치 집단을 배양하는 배양액 같은 역할을 대구·경북이 한 것 같다고 자조했다. 그가 보는 배양의 근원은 ‘청산하지 못한 박정희’다. “우리 지역의 샤이한 보수들이 날 지지해주는 건 박정희 때문이라는 인식”으로 보수 정치인들이 박정희 동상까지 만들며, 연일 박정희를 추앙하기 바쁘다는 평가다.

박정희는 이번 내란 사태에서 광장을 지킨 시민들이 보는 내란의 근원적 원인 같은 존재다. 뉴스민이 만난 41명의 광장 시민은 ‘대구·경북이 내란 사태에 특별히 더 기여한 게 있는 것 같으냐’는 물음에 답하면서 여러 차례 박정희를 소환했다. 과거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며 오히려 진보적 가치를 선두에서 이끌었지만, 현재 대구·경북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할 정도로 극우적 가치에 매몰되어 가는 유권자가 절대 다수로 구성되는데 박정희 영향이 크게 미쳤다는 논리구조다.

김종국(58, 영천) 씨는 “한때는 조선의 모스크바였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을 거다. 그만큼 깨어 있었는데, 제가 봤을 땐 박정희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19년 동안 장기 집권을 했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까지 50여 년을 권력의 우산을 쓰고 있으니 좀 먹고 살고, 잘살아 보려면 경상도 권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헤게모니가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러니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먹고 사는 방식을 잘 아는 사람은 권력에 줄을 댄다든지, 힘 있는 사람에 기댄다든지 하면서 지금 같은 극우, 매국적인 정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조석옥(65, 안동) 씨는 “안동도 박정희 독재가 강화되기 전에는 상당히 야당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닐 때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당선된 경우도 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 것”이라면서도 “박정희 독재 정권이 강화되면서, 박정희 정권이 만든 그 의식을 자기의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한숙(62, 대구) 씨는 “대구가 굉장히 야성의 도시고, 2.28 학생 운동도 있어서 대구 역사를 따지고 보면 굉장히 야성의 도시라고 하는데 박정희 정권하에서 지역 감정을 많이 이용하면서 정치화한 면이 있다. 그다음부턴 별 비판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서 고착화됐다”고 했다.

김언수(40대, 대구) 씨는 “나름대로 분석을 한 건데, 대구·경북 시민들은 엘리트주의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경험이 많다. 박정희부터가 그 성공 신화의 하나”라며 “대구·경북은 지역적으로 차별 받은 역사가 없다. 항상 우대 받아왔고, 엘리트 연줄이 많아서 삼성이나 검찰 정권이 들어오든, 박근혜 정권이 들어오든 뭐가 되었던 차별 받아온 역사가 별로 없는거다. 이 질서가 유지되었으면 좋겠어 라는 보수적 마인드가 강해진 거다”라고 평했다.

김재은(26, 경주) 씨는 “경상도에는 박정희가 없었으면, 이렇게 발전을 못 했다고 미화하거나, 실제로 경주 보문호나 대구에 박정희 동상이 있고, 그런 식으로 우상화해서 어떤 신물처럼 만들어서 추앙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대구·경북이 크게 일조했다”고 말했다.

신동균(62, 대구) 씨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1990년 3당이 합당해서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고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민주당을 고립시키기 시작하면서 지역 감정을 심화시킨 정치권의 잘못을 생각 없이 수용한 결과가 지금의 이러한 경직된 보수가 지역사회를 장악하게 된 핵심 원인”이라고 했다.

▲지난해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이 들어섰다.

이들을 포함해서 41명 중 13명이 대구·경북이 내란에 기여한 바를 설명하면서 박정희를 소환했다. 이들의 분석은 대동소이하다. 박정희를 신화화하고, 그로 상징되는 산업화의 자부심으로 영남 패권주의에 가까운 지역주의를 견고히 해왔다는 인식이다. 그 과정에서 인민혁명당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지역민들에겐 집단적 트라우마나 반공주의, 적색공포를 내면화하게 된 것도 보수정치집단을 향한 맹목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의 배경이 된다. 맹목적이고 집단적인 지지는 지역 사회의 정치적 다양성을 잃게 할 뿐 아니라 내부의 자정 기능도 차단한다. 그로인해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악순환을 이어가도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다.

문연지(26, 경주) 씨도 “옛날에 대구·경북은 동방의 모스크바라 불릴 정도로 진보적인 운동이 활발했는데 진보세력을 누르기 위해 박정희를 비롯한 정치 세력들이 탄압을 워낙 많이 했다. 그 대표 사례가 인혁당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과정에서 대구·경북이 다른 지역 보수와는 다르게 ‘공포형 보수’로 생겨났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이창윤(63, 대구) 씨는 “TK가 보수의 성지, 국민의힘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라고 하는데, 보수화된 지가 오래되지 않았다. 박정희 때 인혁당 사건 이후 보수화된 걸로 안다. 인혁당 사건 이후 공포감이 지역민들에게 확산되면서, 정치적으로 기득권 세력에 같이 편입되지 않으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해 급격히 보수화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나라를 팔아도 무조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성향을 갖게 된 것 같고, 다수 유권자의 성향이 강하다 보니 자신은 성향이 달라도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수의 민주적 성향을 가진 지역민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경규(40, 대구) 씨는 “가장 중요한 건 유권자들이 정치 세력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주변에 보면, 정권이나 국민의힘에 불만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놈의 세상 한 번 바꿔봐야지’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아, 뽑을 사람 없네’ 그러면서 그냥 보이는 사람 뽑고, 흥미도 없다. 그러니 투표에도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허승규(36, 안동) 씨는 “박근혜 탄핵 이후 드물게 보수 정당이 분리가 됐다. 당시 보수 혁신을 들고 나온 바른정당 부류의 정당이 있었다. 바른정당의 한계도 있었지만, 보수혁신을 들고 온 정치인들이나 정치세력에 대구·경북에서 힘을 많이 실어주지 못했다”며 “때로는 보수혁신에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거나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좁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짚었다.

미호(가명, 대구) 씨는 “콘크리트 지역이라는 미명 하에 투표를 해도 효능감이 사라지니까 조금 생각을 갖던 분들도 소용 없다고 느끼거나 무관심하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겨울 대구경북 곳곳에서 형형색색 응원봉과 다양한 피켓, 깃발을 든 시민들이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과 내란 세력 청산을 촉구했다.

결국 대구·경북이 더 극단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막아서거나 방향을 틀어내기 위해선 콘크리트 깊숙히 뿌리 박힌 근원을 청산해야 한다. 이른바 ‘내란 원조’ 박정희로 대표되는 과거사 청산 없이 또 다른 내란 우두머리 전두환을 거쳐, 윤석열에 이르는 ‘내란의 길’에서 이탈할 수가 없다. 두 발을 이미 진창에 박아선 채 이어온 삶이 수십 년이기 때문이다. 두 발을 뽑아내려면 필연적으로 그 아래 박힌 오니 덩어리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채은(24, 대구) 씨는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건, 단순히 과거에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 속에 다양한 사건이 있었을 텐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과정에 대해 우리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면이 있다. 그 결과물로 대구가 탄생한 거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유(22, 대구) 씨도 “개인적으론 과거사 청산하고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내란 사태에서 지역에서 많이 이야기됐던 게 TK콘크리트를 우리가 부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콘크리트라는 단어가 사용될 만큼 짙은 보수색이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사 이야길 조금이라도 꺼내려고 하면 어떻게 그런 이야길 할 수 있냐라고 이야기하는 콘크리트 같은 현실이 지역에서 내란 사태에 더 동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재은 씨는 “분명히 정치 범죄자인데, 범죄자에 대한 제대로 된 단죄가 이뤄지지 못하고 그와 관련해 계속 파벌을 나눈다거나 차별을 한다는 게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팡자(가명, 20대, 대구) 씨도 “대구·경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진 잘 모르겠지만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라며 “지금 다 국민의힘이고. 같은 정당인데 그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서 딱히 공헌한 바도 없고 일을 잘하고 있는지도 저는 모르겠다. 실제로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고, 제대로 평가할 기회도 주지 않고 우리가 끝내는 그 기회도 뺏겨버린 상태가 돼버렸으니, 제대로 한번 그걸 뒤엎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청산은 2024년 12월 3일의 내란을 종식시키는데도 중요한 요소다. 단순한 과거사 정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문제의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광장 시민들이 내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주목하지만,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구조적 배경에는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와 지역주의, 그리고 ‘공포형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윤석열을 청산하는 일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청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 기득권 구조의 든든한 콘크리트 기반을 대구경북이 떠받들고 있는 한, 또 다른 ‘내란형 정치인’의 등장을 막을 수 없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전두환에서 윤석열로 이어진 내란의 계보를 끊어내려면, 그 출발점인 박정희부터 제대로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광장 시민들이 전하는 메시지다.

이들의 메시지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대구·경북은 과연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양이 될 수 있을 것인가? TK리부트의 가능성은 이 물음에 대한 답에 달려 있다. (계속)

▲뉴스민 TK리부트 인터뷰에 응해준 대구경북 광장 시민들.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뉴스민 TK리부트 취재팀
이상원, 박중엽, 김보현, 장은미 기자 / 여종찬 PD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