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TK리부트] ②-4. 구민호, “내란 사태가 4개월이나 지속된 건 무책임한 언론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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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언론인가. 유튜브가 저널리즘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린 공론장의 자정작용을 의심하게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의존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게 되고, 이게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는 것만 봐도 유튜브 저널리즘이 우리 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대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구민호(40세) 씨는 12.3 내란 사태에 언론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극우 유튜버 중심으로 가짜뉴스가 확산하고 이를 정치권이 이용하면서, 언론과 언론이 아닌 것의 경계가 옅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진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는 기성언론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본다.

“내란 사태가 4개월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극우 유튜버의 난립과 가짜뉴스를 이용한 여론조작 때문이라 봐요. 애당초 불법적인 계엄 선포도 가짜 뉴스를 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게 되면서 일으킨 거잖아요”

민호 씨 주변에도 이런 가짜뉴스를 믿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래의 독실한 기독교인 지인이 어느 날부턴가 민호 씨에게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6.25 전쟁은 중국 탓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보다도 우리나라를 괴롭혔다. 중국이 더 나쁜 놈”이라며 “대통령 탄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국으로 비롯된 외교 안보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호 씨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먼저 탄핵하고, 만약 안보에 문제가 있다면 전담팀을 꾸려서 조사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냐?”고 물으니 그는 “안된다”며 “민주당은 중국의 끄나풀이기 때문에 정권이 넘어가면 이걸 해결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태도에 ‘정말 큰 일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때까지만 해도 민호 씨는 사태가 빠르게 정리될 거라 믿었다. 윤석열을 비롯해 비상계엄 선포에 가담한 이들만 골라내면 되는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 조작과 가짜뉴스 난립으로 사태는 장기화됐다.

“부정선거를 믿는 이들은 ‘그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 모략으로 왕을 범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원을 알 수 없는 맹목적인 믿음이 확산됐죠. 여기에 더해 기성언론이 제 기능을 못 하면서 자정 작용이 안 되기도 했고요. 특히 대구·경북을 보면 보수언론이 아닌 언론이 부재하거나, 부족해요. 최근에는 지역 보수언론이 ‘언론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우 유튜브에 나올 법한 정보를 그대로 옮겨 놓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거든요. 이들이 과연 언론으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요.”

▲구민호 “내란 사태가 4개월이나 지속했던 건 극우 유튜버의 난립과 가짜뉴스를 이용한 여론조작 때문이라 봐요.”

민호 씨는 지난 4월 초 동대구역 광장에서 진행한 ‘민주주의 사물들’ 전시에 참여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들고나온 촛불, 응원봉, 깃발, 손팻말 등을 모아 박정희 동상 앞에서 보여주는 시민 참여형 전시였다. 이런 경험 속에서 민호 씨가 가장 주목한 키워드는 ‘대구의 딸들’과 ‘응원봉’이다. 실제 대구 탄핵 집회에서 그가 본 참가자 대부분은 젊은 여성이었다. 반면 행진 중 침을 뱉거나 담배 연기를 일부러 내뿜는 이들은 젊은 남성이었다. 원인도 해답도 모르겠지만 젊은 남성층의 우경화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경북은 정당이 아닌 공약, 정치인의 능력, 신용을 바탕으로 선거를 치러야 해요. 대통령 선거도 있지만 곧 대구시장 선거도 다가오잖아요. 내란 사태를 통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비겁한 모습을 우리 다 같이 목격했고요. ‘저들이 내가 생각한 사람이 아닐 수 있겠다’고 의심해보면 좋겠어요. (뽑던 사람을 뽑는 게) 의리일 수 있지만 지역 사회 전반으로 보면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거든요.”

민호 씨는 그 연장선에서 대구·경북에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하다고도 느낀다. 아파트 미분양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거나 지역 문화 예산을 삭감하면서 아무도 가지 않을 프러포즈 공원을 조성하는 지자체의 행태에도 반발해야 한다고 본다. 민호 씨는 “그러기 위해선 검증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