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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광장 : TK리부트] ④ 내란 청산이 제1과제
[광장 : TK리부트] ⑤ 내란이 들춘 언론의 민낯
[광장 : TK리부트] ⑥ 양당체제가 키운 내란의 씨앗
[광장 : TK리부트] ⑦ 내란을 넘어 대전환으로 : 어떤 민주공화국인가
[광장 : TK리부트] ⑧ 뉴스민이 만난 대구·경북 광장 시민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4개월가량 이어진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대구도 마찬가지였다. 광장을 만들고 참가하는 데 노동조합에 소속된 많은 이가 품을 냈다.
하지만 한편에선 노동조합에 속해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린 이도 있었다. 손기백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구지역지회 조양한울분회장(47)도 그렇게 생각했다. 노조 파괴에 맞서 2023년부터 30인 미만 작은 사업장에서 투쟁 중인 손 분회장은 광장에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나가는 게 혹여나 다른 참가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까 걱정했다.
“내란 사태가 발발한 뒤 좌우 상관없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란 걸 알았잖아요.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갔을 거고, 저도 그중 한 명이었죠. 다만 노동조합을 하는 내가 나감으로써 나쁜 모습으로 비치진 않을까 걱정됐어요. 민주노총이 간첩이라거나 빨갱이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한두 번은 광장에 나가 진짜 내 뜻을 보이고 싶었어요. 딸과 함께 광장에 나가기도 했어요.”
손 분회장은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을 말한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내와 차 안에 있었는데 ‘파면’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엉엉 울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는 ‘미쳤냐’고 말했다. 곧바로 딸에게 전화가 왔다.
“딸도 울더라고요. ‘너 왜 울어?’ 물었더니 ‘기분이 좋아서 울어. 친구들과 윤석열이 잘못했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헌법재판관 입을 통해 확인 받으니 너무 좋아’라고 했어요. 같이 울었죠. 탄핵 자체에 대한 기쁨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잘못된 걸 바로잡았다는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대구 토박이인 손 분회장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세대를 보며 본인도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대구는 잘못됐다’고 말하시는 걸 보며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이대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똥개가 나와도 당선된다’고 말하는 일당독점의 대구를 믿고 윤석열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게 아닐까 싶었다.
“대구에도 생각이 바뀐 사람이 많아요. 올바름과 그름을 구분하는 시민이 많다는 걸 저도 이번 내란사태를 거치며 알게 됐고요. 흔히 대구·경북에는 빨간색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정과 상식을 고민하는 시민도 많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죠.”
그럼에도 내란을 옹호하는 이들에 대해선 명확하게 짚고 처벌해야 한다. 손 분회장은 대한민국을 망치는 이들에 대해선 분명하게 정리하고 가야 제2, 제3의 내란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 강조했다. 법원 폭동을 일으킨 극우 세력처럼 자유를 외치지만 실제론 자유가 아닌 이들이 많아진 건 우리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라 본다. 다음 대통령은 언론, 종교,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에 분포한 이들과 단절하고, 필요하다면 개헌을 해서라도 사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게 손 분회장의 생각이다.
“내란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권력자들의 담합을 일반 국민들이 알 수 있나요. 계엄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관련해서 국회에서 질의가 있었잖아요. 국회의원들은 조짐을 느끼고 있었다고 봐야죠. 이를 감시하는 기구가 있어야 해요. 공수처나 검찰이 있지만 그들론 부족해요. 대통령과 권력자를 감시할 수 있는 권력기구를 만들고 국민들이 거기에 힘을 실어줘야 해요. 이를 위한 시민의식과 제대로 된 언론도 필요하죠.”
손 분회장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도 강조했다. 2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의 처벌과 1억 원을 횡령한 자본가의 처벌이 같은 사회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라 보기 때문이다.
“가진 자는 적게 처벌받고 때론 법을 피해 가는 모습을 우린 다 보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해요. 그건 기성세대의 역할이겠죠.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해요.”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