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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말을 2025년에 다시 듣게 될 줄 몰랐다.”

내일, 3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12.3 내란 사태는 완전히 종결되고,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를 탄핵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이로 대체하더라도 12.3 내란 사태가 남긴 상흔을 치유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무엇보다 2024년 12월, 아닌 밤중에 실행된 내란 시도는 사회 깊숙한 곳에서 싹트던 ‘혐오’의 씨앗을 마침내 발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그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낸 혐오의 꽃은 우리 사회에서 극우적인 집단의 목소리에 힘을 더하고,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해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 토대를 약화시킬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지켜오던 연대의 힘은 약화되고, 정치적 파시즘이 곳곳에 발호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동시에 경제·사법·종교·언론 등 제도 영역에서도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것이 <뉴스민>이 만난 대구·경북 광장 시민들의 가장 큰 우려다.

▲2024년 12월, 아닌 밤중에 실행된 내란 시도는 사회 깊숙한 곳에서 싹트던 ‘혐오’의 씨앗을 마침내 발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사진=ChatGPT)

대구·경북 광장 시민의 우려, 혐오의 발화
내란 사태 후 더 심화될 우리 사회의 문제는?
41명 중 23명 ‘혐오·배제’ 키워드로 답변

12.3 내란 사태 이후 대구·경북청년대학생시국회의 활동을 한 김지유(22, 대구) 씨는 2025년에 다시 소환된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표현에서 강화된 혐오와 양극화를 목도했다. 12.3 내란 사태 후 더 심화될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묻는 물음에서 김 씨와 마찬가지로 ‘혐오·배제’를 키워드로 한 대답을 내놓은 이는 41명 중 23명이다. 이들은 ‘빨갱이’라는 표현을 통한 ‘정치적 혐오’부터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만나면서 강화된 ‘혐중’ 정서를 너머, 광장에서 목도한 ‘조롱’을 통해 눈앞까지 다가온 혐오를 목격했다.

김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보수 집회만 봐도 ‘좌파’라는 단어 하나로 사람을 악마화하는 게 굉장히 심각해졌다. 예를 들어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말을 2025년에 다시 듣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윤석열이 계엄 포고령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란 사태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 게 아닌가 생각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1020 청년층의 우경화는 좌우 이분법의 강화랑 조금 더 연관이 되어 있다. 이번 사태로 우리 청소년, 청년들이 굉장히 우경화됐다는 기사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전 내란 사태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제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일베 같은 특정 사이트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풍자하고 비난하는 게 유행이었다. 놀이처럼 당연하게 했다”며 “1, 2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번 사태를 통해서 조금 더 심각해진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광장 사회자 였던 박석준(45, 대구) 씨도 “혐오가 굉장히 심화됐다. 집회에서 지켜보면, 중학생 정도 되는 친구들이 ‘이재명 사형’ 이렇게 말하며 지나가는 걸 볼 때마다, 도대체 무슨 맥락인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주장을 하기보다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폄훼하고 훼손하면서 정당성을 취하려 하는 문화가 굉장히 강화된 걸 느꼈다”고 전했다.

박 씨는 “광장에서도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로 나뉘긴 하지만 표현을 보면 저희는 그런 걸 굉장히 지양하긴 했지만 일부에선 ‘윤석열을 사형해야 한다’는 표현 같은 걸 한다”며 “탄핵 반대하는 분들은 집회를 지나가보면 알겠지만 거의 다 욕이다. ‘빨갱이 죽여’ 같은 이야기 밖에 안 나온다. (양쪽에서) 혐오가 굉장히 심화되고 있는거다. 굉장히 우려스럽고,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 탈시설 당사자로서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면서 누구보다 혐오에 민감한 임재원(34, 대구) 씨도 “집회에서 행진을 하면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큰 반대 액션을 하거나 욕을 하면서 지나간다. 마치 정말 소위 빨갱이를 대하듯 하는데, 저 또한 저와 반대편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제 안에서도 혐오적인 마음들이 일어나기도 하더라”고 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나와 맞지 않은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윤석열이 담화문에서 반국가 세력이라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을 규정하면서 혐오를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혐오의 대상을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 나조차도 혐오의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이건희(25, 대구) 씨는 ‘중국’을 표적으로 삼은 혐오 표현의 강화를 이야기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중국 공산당 나가라’고 하는 극우 계정이 많다. 흔 ‘화짱조’라고 하더라. ‘화교’, ‘짱X(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 ‘조선족’을 합쳐서 ‘너 화짱조지?’ 이런식으로 공격하는 계정들도 있다. 이게 불어났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며 “실제 현실에서도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이 모국인 이주여성 손홍매(46, 대구) 씨는 더 직접적으로 혐오의 경험을 하고 있다. 손 씨는 대구에서 18년을 살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중국인 혐오가 심화되기 시작해서, 윤석열 내란을 거치며 더 강화됐다고 전했다.

손 씨는 “윤석열은 후보 시절부터 중국 사람 싫다고 했고, 내란 할 때도 중국 사람 때문에 내가 내란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이야길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중국 사람을 혐오하는 게 조성된 거 같다”며 “한 나라의 대표인 사람인데, 공식 석상에서 중국 사람이 어떻다, 이렇게 이야길 해버리는데, 원래도 혐오는 없지 않았지만 대통령부터 그런 이야길 하니까 사람들이 훨씬 더 크고 세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여성의전화 활동가로서 광장을 지킨 스텝으로도 일한 윤수빈(31, 대구) 씨는 눈앞까지 찾아온 혐오를 말했다. 윤 씨는 “시국대회를 거의 대부분 참여했는데, 지나가는 이들의 조롱도 인상이 깊다. 그건 혐오를 넘어 조롱이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지?’ 였다”며 “자신의 의견이 있는 것도 아닌 것 처럼 보였는데, 그냥 진심으로 이야길 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놀려주지, 어떻게 조롱하지’라는 의도가 너무 잘 보였다”고 말했다.

윤 씨는 “사실 그게 나는 익숙하다. 지역에서 여성대회를 하면, 그런 조롱을 많이 듣는다. ‘페미니스트래’, ‘왜 여성의 날만 있어요?’라며 속닥거린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단으로 조롱하며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다”며 “온라인에서, 청소년이라면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각자의 공동체에서 그런 걸 많이 느꼈을 거다.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이들이 커져서 세력으로 당당하게 나타난다는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29일 윤석열 파면하고 가자 평등으로 집회에서 나부끼는 자긍심의 깃발.

극우적인 정치 집단이 성장하기 좋은 토양, 혐오
극우 집단의 성장, 소수자와 약자 차별과 배제 인정하게 돼
양극화와 적대적 대립 심화, 사회 시스템 구조적 취약성 강화로

광장 시민들은 혐오의 꽃이 발화하는 건 극우적인 정치 집단이 성장하기 좋은 토양을 만들어 준다는 측면에서 크게 우려했다. 극우 집단의 성장은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말하는 극우적 목소리가 사회에서 정당한 하나의 몫으로 인정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 양극화와 진영 간 적대적 대립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와 적대적 대립의 심화는 결국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도 강화시킬 우려를 더한다.

대구 광장에서 ‘TK의 딸’ 대자보를 들고 나와 울림을 남긴 소결(가명, 29, 대구) 씨는 “극우화가 너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보인다. 극우화가 되는 매커니즘이 혐오를 동력으로 강화되고 있다. 여성혐오도 너무 심하고, 약자 혐오, 혐중까지. 혐오의 감성이 너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훈(40대, 대구) 씨도 “반지성주의와 파시즘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계속 발화되었다는 게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며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해야 한다는 이야길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수 있다는 게, 또 그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게 균형 잡힌 시각인 것처럼 보이는 게 이상하다”고 짚었다.

안동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안동시국대회 사회자이기도 했던 허승규(36, 안동) 씨 역시 “극우세력이 광장에 나오는 극단적 정치의 등장이 문제”라며 “외국인 혐오라든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든가. 모든 문제를 반대 세력에게 매도하고, 극우 개신교와 결합하면서 극단적인 정치가 등장을 했고, 물리적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이채은(24, 대구) 씨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마주하고 토론하기 보단 적으로 규정하면서 마주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서 보는 경향성이 강화된 것 같다”고 했고, 임선영(38, 대구) 씨는 “선전전, 집회를 하다 보면 우리와 입장을 같이 하는 분도 많이 만나고 힘을 받지만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분들도 많이 마주칠 수밖에 없다. 설득이 되면 뿌듯하기도 했는데 극소수는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심하면 치고 지나가는 분들도 있다. 탄핵 정국 전부터도 그런 상황이 있었지만 이번 기간 혐오와 극단적인 대립이 더 강화되는 시기”라고 말했다.

포항시민단체연대회의 집행위원이기도 한 박혜령(55, 포항) 씨는 “우리가 확인했던 게 극우 보수의 강화”라며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이 되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위 중간층이 사라지는 것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저는 경제적 양극화와 극우의 강화가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대구여성회 대표로서 박석준 씨와 함께 대구시국대회의 사회자로 활동한 김예민(47, 대구) 씨는 극우세력과의 명확한 단절을 숙제로 남겼다. “전문가들은 극우 세력의 준동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분석들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고 넘어갈 순 없다”며 “극우세력의 준동을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공존하고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에 선을 긋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 치하도 아니고 폭력이 폭력으로 해결되는 세상은 아니라는 거다. ‘극우? 좋다’ 그 생각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법을 위반하는 건 참지 않겠다. 모두가 합의해서 만든 법인데 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묵과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줘야 한다”며 “그들의 활동 범위를 축소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열린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니까 극우 세력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예민 씨의 말처럼 이미 발화한 혐오의 꽃을 단절시키는 건 내란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전진하느냐 후퇴하느냐를 점칠 중요한 요소가 될 공산이 크다. 광장 시민들은 내란 세력 단죄·청산 만큼 차별과 혐오를 해소하고, 소수자와 약자도 포용하는 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내란 이후 주요한 수습 과제로 언급했다. 특히, 이번 광장에서도 어김없이 우리 안의 차별과 배제가 드러났다는 자성과 함께 남긴 숙제도 크다.

이번을 계기로 달곰이지부 활동을 하게 된 제갈민정(31, 여성) 씨는 우리 안의 배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서부지방법원 소요 사태라든지, 광장에서 겪은 위협이라든지, 조롱이라든지, 이런 걸 생각해보면 양극화가 더 심화되었지 완화되지 않았다. 성별에 대한 양극화도 좀 심했고, 소수자를 배제하는 분위기도 처음엔 몰랐는데 광장에 나오면서 ‘그건 당장 급한 일 아니잖아’ 라면서 배제하는 걸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트위터 같은 걸 봐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배제도 보이고, 노조에 대해서도 급한 거 아니잖아, 배제하는 의견도 보이더라. 광장에서 우리 함께 가자라고 이야길 하는데 온라인 공간에선 이거 급한 거 아니잖아. 너네 조금만 기다려, 나중에 해결해 줄게라고 하는 걸 보면서 내가 본 광장과 온라인의 광장이 결이 다른가? 과연 저런 분들이 정권이 넘어간다고 해서 화합이 될까? 의구심이 들더라”고 전했다.

청소년인권단체를 준비 중인 활동가 미호(가명, 대구)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광장을 채운 존재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오래 동안 사회적인 낙인이 지어진 존재들”이라며 “여성도 있고, 퀴어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청소년도 있는데 여전히 광장이 함께 있는 주체로 세우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이재명 대표 발언하는 집회에서 발언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이재명 대표는 뭐라고(지청구를) 했고, 당원들은 ‘나중에’라고 한 적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2017년 촛불항쟁 이후 문재인 당시 후보가 토론에서 성소수자 반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할 생각 없다고 해서,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항의를 하니까 나중에, 나중에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며 사실 그들이 숨어 살지 않고 이번 일을 계기로 광장에 나온 건 민주당이 좋아서라기 보다, 민주당에 마지막 기회, 또는 경고를 준거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이번엔 할 일을 완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뉴스민 TK리부트 인터뷰에 응해준 대구경북 광장 시민들.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뉴스민 TK리부트 취재팀
이상원, 박중엽, 김보현, 장은미 기자 / 여종찬 PD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