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d by Amazon Polly

[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광장 : TK리부트] ④ 내란 청산이 제1과제
[광장 : TK리부트] ⑤ 내란이 들춘 언론의 민낯

12.3 내란 사태로 열린 조기 대선은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과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간 양자 대결처럼 치러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나,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등이 출마했지만, 두 후보 모두 10%를 넘기지 못했다. 이들이 부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제시된 건 ‘사표 방지 심리’다. 내가 찍은 표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일을 방조할 수 있다는 심리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 투표하는데 망설이게 된다는 논리다. 후보까지 선출하고 출마를 저울질하던 진보당이 끝내 불출마하고 ‘내란종식 민주헌전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에 참여한 배경에도 이러한 현실적 논리가 없지 않다.

사표 방지 심리는 123일 동안 광장이 열린 끝에 이뤄진 선거에서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이러한 제도의 불합리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사회 과제로 지목했다. 뉴스민이 만난 광장 시민 41명 중 20명이 정치 및 선거제도 개혁을 내란의 반복을 막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제로 꼽았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도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양당체제의 폐해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잇따른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도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양당체제의 폐해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잇따른다. (사진=ChatGPT)

10% 벽 넘기지 못한 이준석, 권영국
출마포기한 소수 정당들, 민주당 그늘 아래로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양당체제가 탄생시킨 ‘윤석열’

윤수빈(31, 대구) 씨는 “윤석열이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건 거대 양당체제 때문”이라며 “어떻게든 저 사람이 되어선 안 되니까,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게 되는 건 거대 양당체제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내가 아무리 소신 투표를 한다 해도 내 표가 사표가 되고, 막아야 하는 사람을 막지 못하면 어떤 의미가 있냐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지난 대선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거나, 공격받았지만 중요한 건 여성 유권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여성 유권자를 제대로 포섭하지 못했기 때문에 윤석열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은 측면이 있다”며 “내란을 종식하려면 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 내가 응원하고 지지하는 공약을 내건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혜령(55, 포항) 씨도 “정치 제도 개혁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고 그것이 지금의 내란 상황을 낳지 않았나 생각도 한다”며 “정치 제도 개혁을 전면적으로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지배 권력을 어떻게 할 건가, 헌법에서 대통령제를 어떻게 바꾸자, 내각제로 하자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저는 우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정착시켜 나갈 건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보탰다.

김기훈(40대, 대구) 씨는 “승자 독식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다들 고민하는 게 국민의힘에선 대선 전략으로 반이재명을 선포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재명이냐, 아니냐’를 두고 선거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고,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되느냐를 두고 이야길 해야 했는데, 그런 거 없이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귀결된다”며 “누군가 독식하지 않는, 양당이 독식하지 않는 선거제도를 제발 이번에 약속을 하고,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홍성탁(27, 대구) 씨는 “현재 국회는 민주당의 야권 연대 전략으로 소수 진보 정당이 의석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호의에 기댄 것이고 지속될 수 없다”며 “대통령제하에서 양당제를 끊임없이 반복시키고 또 양당제를 통해 정치적 절망과 답답함, 분노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현재의 체제는 변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승규(36, 안동) 씨는 “극우에 맞서는 대중적 진보 정치가 필요하다.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진보 정치가 필요하다”며 “유럽의 경우 극우 정치가 등장해도 그들에 맞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연대와 평화, 공동체를 강조하는 대중적 좌파 정당이 득표율이 적지 않다. 그러니까 서로 경쟁이 된다. 한국은 극우와 맞설 좌파 정치 세력이 허약하다. 중도 보수 정당과 극우정당이 맞서는 구도만으론 사회적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기 어렵다”고 짚었다.

허 씨는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 탄핵 국면에서 드러난 다양한 시민들의 정치를 대변할 수 있는 대중적 좌파 정당, 대안적인 대중 정당이 필요하다. 민주당만으로 담을 수 없는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정치 세력이 재구성되어야 한다”며 “이런 것이 가능하게 하는 정치 개혁이 중요하고, 한 명 뽑는 소선구제가 다수인 국회 구성에선 극우와 보수가 분리되기 어렵고 새로운 대안 정당이 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당 정치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은 차기 정부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뉴스민 TK리부트 인터뷰에 응해준 대구경북 광장 시민들.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개헌, 중대선거구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까지
다양한 정치 개혁의 방향, 이번에는?

개헌부터, 중대선거구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 손질 등 정치 개혁의 방안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이경규(40, 대구) 씨는 “지금까지 87년 헌법이 대통령 5년 단임 및 대통령 중심제로 이뤄지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잘못된 부분도 있다고 본다. 헌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권력구조라든지 이런 부분이 정확하게 제한되어 있지 않고 모호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심도 있는 개헌 논의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동균(62, 대구) 씨는 “각 정당과 개인 간 또 세대 간, 지역 간 갖고 있는 정치 이념에 따른 갈등 심화 문제를 완화 또는 해결하기 위해 현행 소선구제를 폐지하고 다변화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과 다당제 확립을 위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홍성탁 씨도 “최소한의 강령으로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든지, 더 나아가 권력 구조 자체를 개혁해 대통령의 힘을 줄이고 국회가 책임을 지는 책임 총리를 선출한다는 것도 가능할거다. 핵심은 더욱더 민주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민주적 대표성을 높이고 더 많은 정당이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허승규 씨는 “국민들이 관심이 많은 선거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요 대선 주자들이 공약하고, 차기 정부에서 개헌 논의를 할 때 집어넣어야 한다”며 “그런데 대통령 결선투표제 전에 중간 단계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정도는 헌법 개정 사항이 아니라 입법 사항이니까 빠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허 씨는 “선거 투표의 불비례성, 즉 민심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정도가 가장 심한 선거는 광역의회 선거”라며 “경북도의회, 대구시의회는 국민의힘이 90% 정도 된다. 근데 실제 지지율은 그 정도 안 된다. 전라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광역의회 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한다든가,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것을 좀 고려해야 한다”고도 전했다.

박혜령 씨는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나 전면적인 비례 선출, 정당법 개혁과 정치만 하면 밥그릇이 해결되는 이런 문제를 좀 개선하기 위해 국고보조금 제도를 개선한다든지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지역 정치로선 전국을 정당 중심으로 줄 세우기 하는 정당공천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당 등이 참여한 ‘내란종식 민주헌전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는 지난 4월 내란세력 재집권 저지를 위한 연대를 약속하면서 결선투표제 도입 등에 합의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헌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는 정말 개헌을 추진하고, 그 안에 결선투표제 도입을 담아낼까. 그리해서 5년 뒤엔 정말 광장의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가 가능해질 수 있을까.

뉴스민 TK리부트 취재팀
이상원, 박중엽, 김보현, 장은미 기자 / 여종찬 PD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