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경북 지역 청년(대학생) 노동자 중 많은 수가 노동법 위반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사업단이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41%가 노동법 위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임금 위반, 주휴수당 미지급, 직장 내 괴롭힘 혹은 성희롱 등의 경험을 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노동법 위반 사례를 경험한 비율이 높아 청년층의 노동 환경에서도 성별 격차가 있음을 보여줬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대구·경북 대학생·청년 노동인권 사업단’(사업단)에는 민주노총 대구본부·경북본부,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를 비롯해 청년 당사자 조직인 영남대민주학생연대, 계명인목소리연대 등 여러 단체가 속해 있다.
사업단이 5월 14일부터 28일까지 2주간 대구·경북 청년(대학생) 3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2.7%에 달했다. 여성 응답자 중에는 35.6%가, 남성 응답자 중에는 23.6%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최저임금 위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5%(여성 21.2%, 남성 18.2%),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25.2%(여성 27.3%, 남성 18.2%)로 적지 않았다. 여성 응답자가 남성 응답자보다 모든 문항에서 법 위반 경험을 했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노동관계법령 위반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1%에 달했다. 이 항목 역시 여성이 44.5%, 남성이 30.1%로, 여성이 일터에서 더 많은 노동법 위반 사례를 경험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복수 응답이 가능하도록 설정해 물은 노동관계법령 위반의 구체적 사례는 ▲각종 수당 미지급 66.2%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미준수 60% ▲직장 내 괴롭힘 혹은 성희롱 26.2% ▲임금체불 32.5%, 부당해고 23.7% 순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임금명세서 미교부, 근로일자나 일수 등 근로내역 조작, 과도한 CCTV 감시, 연차 사용 제한 및 강제 사용 등이 다양하게 언급됐다.
한편 현재 부채를 보유 중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34.8%로 높았다. 복수 응답이 가능하도록 설정해 물은 부채 이유로는 ▲등록금 및 학자금 마련을 위해서가 68% ▲모아놓은 자산이 적어서 30% ▲임금, 수입 등 소득이 적어서 17% 등으로 나타났으며 부채 용도로는 교육비 82%, 주거비 32%, 생활비 26%, 물건구입비 3% 순으로 나타났다.

24일 오전 11시 30분, 사업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을 비롯한 중앙정부, 대구시, 경상북도 등 지자체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다수 청년이 지역을 떠나고 지역은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지금, 청년들이 일터에서 처음 경험하는 게 불법, 좌절, 체념이 아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구시가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법률 상담, 교육, 최저임금 준수를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비정규직 근로자 권리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사례를 들며 적극적인 사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반소희(영남대민주학생연대) 씨는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며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게 주휴수당이다. 근무시간을 14시간 30분으로 설정한 게 일반적이다. 30분이나 1시간 빨리 퇴근시키거나 수습기간이라며 일한 만큼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기 쉽지 않고 구제 방법을 알아도 혹시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걱정돼 신고하지 못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임에서도 내가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있다. 이번 정책연구와 이어질 활동이 법과 제도,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창모(계명인목소리연대) 씨도 “대학생으로서 처음 만난 일터에서 노동의 가치가 아닌 체념을 먼저 배운다. 왜 아직도 청년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반복해야 하나. 법의 보호 아래 체념이 아닌, 변화와 희망을 배우고 싶다. 존중받는 일터를 위해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무근 민주노총 경북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전체 노동시장 구조에서 여성노동자의 임금 구조가 취약하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청년층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여성이 더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사용자를 대변하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고용인을 두고 있는 자영업자는 20%에 불과하다. 노동취약계층의 노동권을 보장하면서 소규모 자영업자 보호 대책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총 역시 개별 사업장의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적 의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수석부본부장은 “대구시, 경상북도의 노동인권 사업은 현장의 문제를 바로잡기보다 청소년 대상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동인권 지원 조례를 설계해 도입해야 한다”며 “특히 경산은 대학이 13개나 밀집해 있는 교육도시다. 이름에 걸맞게 대학생·청년의 노동이 소외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자체의 역할을 덧붙였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