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100일 트라우마 여전···엎친 데 덮친 폭염 그리고 폭우

집이 전부 타버린 권춘월 할머니
앞날 생각에 한숨만
산불에 집 타고 벌통 100여 개 다 타버린 박우영 씨
산사태, 폭염 걱정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 필요"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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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임하면 추목리는 지난 산불에 마을 대부분이 타버렸다. 마을회관 앞 공터에 들어선 임시주택 위, 한낮의 태양이 작열한다. 그늘도, 차광막도, 방음벽도 없는 이곳 공터에 임시주택 약 20채가 모여 있다. 임시주택은 산불 피해 주민들이 살던 터가 아닌, 마을마다 주택을 설치하기에 편리한 곳에 듬성듬성 들어섰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한숨만 내쉬며 지난 100일을 지냈다. 일상은 언제 회복될 수 있을까. 앞날을 생각하면 다시 한숨이 나온다.

추목리 임시주택 1번 집에는 권춘월(88) 할머니가 살고 있다. 권 할머니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마을 쉼터 의자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아침 식사 후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종일 쉼터에서 지내는 것이 권 할머니의 일과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조립식 패널로 만들어진 임시주택은 낮 동안 쉽게 뜨거워진다. 전력 문제인지, 에어컨이 있지만 성능이 시원찮게 느껴졌다.

권 할머니는 산불이 번진 3월 24일쯤이 툭 하면 떠오른다. 추목리에도 산불이 확산하면서 권 할머니와 남편 이홍구(89) 할아버지가 고립된 것이다. 대피 안내를 듣고서도 다리를 쓰기 어려운 이 할아버지는 대피하지 못했고, 상당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소방관의 도움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그 후, 자녀들이 독립해 살고 있는 대구, 천안을 전전했지만, 이들은 도저히 아파트에서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어 다시 추목리로 돌아왔다.

▲추목리 임시주택 1번 집에는 권춘월(88) 할머니가 살고 있다.
▲추목리 임시주택 단지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단지 뒤로 불탄 산림이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체감한 권 할머니는 터만 남은 집 위에 다시 집을 지어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더위를 피하고, 비가 내릴 때마다 산사태를 걱정하며, 겨울의 추위를 버텨낼 생각을 하면 다시 한숨을 내쉬게 된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똑같아요.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 다 타버렸으니까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사람들을 만나도 다 나처럼 우울해요. 석 달 열흘 애먹었는데, 앞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죠. 다 타버려서 숟가락 하나 남은 것도 없어요. 그나마 임시주택 지원 받은 건 나라에 고마운 일이죠. 그래도 여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앞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죠. 우울해요.” (권 할머니)

집이 전부 타버린 권춘월 할머니
앞날 생각에 한숨만
산불에 집 타고 벌통 100여 개 다 타버린 박우영 씨
산사태, 폭염 걱정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 필요”

▲박우영 씨 임시주택이 비탈면 아래로 보인다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에서 사는 박우영(76) 씨는 지난 산불에 양봉벌통 116개가 모두 타버렸다. 산에서 기르던 도라지 등 임산물도 타버려, 수입원을 모두 잃었다. 집도 전소했다. 집터 위쪽으로 산비탈이 있어, 타버린 집 한쪽 벽면은 허물지 않고 그대로 세워두었다. 혹여나 폭우에 산사태가 일어나면 방재벽 구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산불 당시, 박 씨는 양봉벌통 걱정에 산으로 향했다. 불에 타는 벌통을 수습할 방법은 없었다. 벌통을 보며 애를 태우는 동안, 집마저 타겠다는 생각에 급히 돌아섰는데, 정말로 산불이 순식간에 집마저 불태웠다. 그나마 아내, 장모와 함께 빠르게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박 씨 역시 앞날이 걱정이다. 지난 100일 동안 벌통을 60통 복구하긴 했지만, 당장에 수익을 낼 수는 없다. 앞으로 폭우나 폭염과 같은 자연재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마음이 무겁다.

“고향이라 2017년에 귀촌했는데, 모두 다 타버렸어요. 이곳을 복구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지금 저 비탈에 보면 나무가 다 타서 없잖아요. 큰비 오면 저거 다 쏟아질 수도 있어요. 그런 산사태 방재 조치를 해야 하는데, 내가 다 할 수는 없고 군에서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안 하네요. 거적이라도 깔고 풀씨를 뿌리면 나을 텐데, 군에서는 워낙 면적이 넓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사람 사는 곳에는 조치를 해줘야 할 텐데. 전기세도 문제예요. 6개월은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그럼 겨울에는 지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이 임시주택에서 겨울을 나게 되면 전기세가 얼마나 나올지. 집 다 지으려면 2년은 걸릴 거 같은데. 우리는 이런 세세한 문제들이 걱정인 거예요.” (박우영 씨)

박 씨는 답답한 마음에 30일 오전 10시 의성읍사무소에서 열린 주민간담회도 찾았다. 주민간담회는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이 산불피해 회복 및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설명하고 주민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간담회에는 박 씨처럼 산불 피해를 당한 지역민 120여 명이 모였다.

주민들은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회복을 위한 대출 조건으로 주택 담보를 요구한다든지, 재난 지원을 위한 예산을 지방비 매칭 조건으로 보내 지방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문제 등을 지적했다. 이외에도 ▲부족한 재난 지원 ▲임산물 등 피해 보상 기준이 없거나 과소 책정돼 현실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는 점 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임미애 의원은 “주민들이 산불 당시 보여주신 말로 표현하지 못할 상실감, 분노를 현장에서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께서도 이 자리에 용기 내서 오실 수 있게 된 것 같다. 국회에서 좀 더 피해 회복 문제를 빨리 논의해 조속한 복구가 이뤄져야 하는데 미뤄져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이 조금 더 친절하게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정부에 전달하도록 하겠다. 오늘 주민께서 말씀하신 것도 정리를 잘해서 법안에, 아니면 시행령에라도 반드시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미애 국회의원이 산불 피해 회복과 관련해 주민 의견을 듣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산불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법안은 5개다. 국회는 오는 7월 3일 제1차 법안소위에서 임미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2025년 경북경남울산초대형산불피해보상및지원에관한특별법을 포함한 산불 피해자 지원 관련 법안에 대한 심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산불 피해 주민들은 법안소위에 앞서 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들은 ▲산불 확산 저지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책임 규명 ▲사망자에 대한 현실적인 배상안 마련 ▲재난특별법 제정 및 실효성 있는 피해 복구 체계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