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흑인에게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 무슨 의미인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미국 독립선언문, 모두가 누리고 있는가

19:42

1776년 7월 4일, 식민지 13개 주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였다. 독립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만장일치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다. 미국의 독립은 1783년 9월 3일 영국과 파리조약을 체결하면서 공식화되지만, 미국인들은 <독립선언문>이 발표된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축하하고 있다.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천명했다.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 이 세 가지 천부인권은 미국의 건국이념이 됐다. 모든 인간의 평등, 천부인권, 인민의 동의, 저항권 등은 절대군주에 저항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18세기 당시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미국 독립 혁명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프랑스 혁명과 함께 양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세계사에 자리 잡는다.

여기까지가 학교에서 배우는 미국 독립기념일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우리 눈을 그로부터 240년이 흐른 2016년 7월로 돌려보자. 장소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주도인 바톤루즈. 독립기념일 다음 날인 7월 5일, 앨턴 스털링이라는 흑인 남자가 한 편의점 앞에서 CD를 팔고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곧 다가올 줄 전혀 짐작도 못하고 말이다.

스털링의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은 마침 행인의 동영상에 그대로 찍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두 명이 스털링을 바닥에 넘어뜨려 제압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그에게 총이 있다”는 외침이 들린다. 그러자 바로 경찰이 총을 꺼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스털링의 가슴을 향해 연달아 발사한다. 마치 포획한 사냥감을 확인사살 하듯이. 스털링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동영상을 보면 경찰이 총기를 사용해 스털링을 제압해야 할만큼 위급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현장을 목격한 편의점 주인은 스털링이 총을 맞을 당시 그의 손은 총이 있던 주머니 근처에 가지도 않았고, 대신 경찰이 총격 후 스털링의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스털링은 강도를 당할까봐 호신용으로 총을 지니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스털링이 경찰에게 살해당한 바로 다음 날, 이번에는 미네소타 주에서 또다른 희생자가 나왔다. 필랜도 카스틸이라는 흑인 남성은 약혼녀와 네살배기 딸 아이를 태우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공립학교의 급식담당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던 카스틸은 경찰의 교통검문에 걸려 차를 세운다. 차 후미등이 고장났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 사실 카스틸은 흑인이어서 검문을 당했다. 카스틸의 차를 세우기 직전 경찰이 주고 받은 무전내용에 의하면, 경찰은 카스틸이 며칠 전 일어난 강도사건의 용의자처럼 ‘넓적한 코’를 가졌다며 그의 차를 세워 검문하겠다고 했다. 전형적인 인종 프로파일링이다.

경찰의 지시대로 차를 세운 카스틸은 면허증과 차량등록증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정중한 어조로 자신이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있음을 먼저 알린다. 사건 후 한 인터뷰에서 그의 어머니는 카스틸에게 경찰과 마주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릴 때부터 누누이 가르쳐 왔다고 말했다. 무조건 경찰의 지시에 따르라고. 항상 경찰의 표적이 되는 다른 모든 흑인 아이들의 어머니들처럼 말이다. 카스틸은 어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가 경찰 지시에 따라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려던 순간, 경찰은 그에게 연달아 총을 발사한다.

총격을 받고 쓰러져 하얀 티셔츠가 붉은 피로 흠뻑 젖은 카스틸의 모습은 옆에서 이를 목격한 약혼녀에 의해 페이스북에 생중계 됐다. 그의 약혼녀는 경찰이 나중에 거짓으로 사건을 조작하지 못하도록 증거를 남기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다고 했다.

카스틸은 총기소유 면허를 받아 합법적으로 총기를 지니고 있었다. 총기규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총기소유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총기소유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라는 걸 강조한다. 하지만 스털링과 카스틸처럼 흑인에게는 똑같은 총기소유 권리가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도리어 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경찰에게 사살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스털링과 카스틸의 죽음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공권력의 인종주의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졌다. 미네소타에서는 주지사 관저 앞 도로가 몇 주 동안 시위대에 의해 점령됐다. 몇몇 도시의 도심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입구가 시위대에 의해 봉쇄되기도 했다. 점차 과격해진 시위대는 경찰에 돌과 화염병으로 맞섰고, 경찰은 폭력진압으로 대응해 수백 명이 체포됐다.

이런 대중적인 분노와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비슷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스털링과 카스틸을 죽인 경찰관들은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사건 후 거의 일 년이 지나서 얼마 전 연방검찰은 스털링을 살해한 경찰들을 민권법 위반으로 기소할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카스틸을 사살한 야네즈 경관도 지난달 대부분 백인으로 이루어진 배심단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야네즈 경관은 흑인을 사살한 다른 경찰들처럼 그동안 유급휴직 조치를 받았다.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경찰은 그를 해고한다고 했지만, 그가 “새로운 커리어를 갖는데 도움이 되도록” 합의금을 지급하겠다고 해서 더 큰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다시 1776년으로 돌아가 보자. 앞서 얘기했듯이 미국의 건국 이념을 밝힌 <독립선언문>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이라는 천부인권을 지녔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을 누릴 수 있는 ‘모든’ 사람에 여성과 원주민 그리고 흑인노예는 포함되지 않았다. 초기 미국 헌법은 노예소유주들의 의회대표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흑인노예 한 명을 백인 자유인 한 명의 ‘5분의 3’으로 계산했다. 흑인노예를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독립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노예소유주였던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 것이지만, 미국의 민주주의가 시작부터 인종주의를 안고 태어났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그 자신이 노예로 태어났던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1852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흑인노예들에게 7월 4일이 무슨 의미인가?’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다.

▲프레드릭 더글라스. [사진=commons.wikimedia.org]

“시민 여러분, 실례가 아니라면 먼저 묻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왜 저를 불렀습니까? 저나 제가 대표하는 사람들이 당신들 조국의 독립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정치적 자유와 자연법적 정의의 위대한 원칙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겁니까?”

“7월 4일은 당신들의 날이지, 저의 날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큰 기쁨을 느끼겠지만, 저는 애도를 해야만 합니다. 사람을 족쇄에 채워 찬란히 빛나는 자유의 전당에 끌고와 당신들과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조롱하고 신을 모욕하는 역설적인 일입니다.”

더글라스는 이 연설에서 미국의 민주주의와 애국주의에 관한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했다. 건국 이념이 내세우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미국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미국의 독립이 역설적으로 흑인노예들에게는 체계적인 법적 차별의 시작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노예들이 해방될 때까지 독립기념일을 축하하지 않겠다고 일갈했다.

더글라스가 이 연설을 한 배경에는 탈출한 노예를 도와주는 것을 형사범죄로 처벌하고, 탈출노예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한 1850년의 소위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Act)’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더글라스는 노예제를 더 강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미국 독립혁명의 정신인 저항권을 발휘해 더 적극적으로 싸우자고 고무한 것이다.

▲2015년 벌어진 Black Lives Matter 시위. [사진=flickr.com ⓒ5chw4r7z]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외침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노예제는 오래 전에 철폐 됐고, 흑인이 최고 공직인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도 했지만,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운동 구호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다시 7월 4일을 맞아 미국의 민주주의에게 묻는다. 모든 사람들이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을 공평하게 누리고 있는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