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시장 상인들과 길냥이의 공존 실험

지정 급식소 만들고, 화장실도 마련
캣맘과 상인들, “길고양이 갈등 해소할 좋은 선례되길”

14:25

길고양이는 생태계의 일원이지만, 울음소리나 경관 훼손을 이유로 싫어하는 주민들에 의해 민원의 대상이 된다. 불과 한 달 전까지 달서시장도 비슷한 이유로 길고양이를 싫어했지만, 이제는 ‘달냥이(달서구+고양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보금자리가 생겼다. 캣맘은 밤 중에 사람 눈을 피해 길고양이를 찾지 않아도 됐다. 길고양이와 공존을 시작한 달서시장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달서시장에 사는 고양이 ‘달순이’가 밥자리 근처에 있는 담벼락에서 낮잠을 청하려고 하고 있다.

‘밥 주지말라’는 말을 듣던
달서시장 캣맘의 ‘전화위복’

지난해 가을부터 김소연(41) 씨는 대구 달서구 달서시장에 사는 길고양이 사료를 챙겨줬다. 우연히 시장을 지나던 김 씨가 배고파 보이는 길고양이를 보고 밥을 챙겨주던 게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김 씨는 “집에 반려묘가 있어서 그런지 길을 가다가도 길고양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며 “제 시간과 돈을 들이는 일이지만, 길에서 뭐라도 먹었을까 걱정이 돼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그러던 지난 4월 초, 그날도 밤 10시 무렵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러 달서시장에 왔는데, 시장 경비원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멈춰 세웠다. 그는 김 씨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

고양이들이 똥을 아무 데나 싼다는 거였고, 시장 안에 먹을거리가 많으니 밥을 안 줘도 알아서 잘 살거니 챙겨주지 말라는 거였죠.  고양이들이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어요. 아, 물론 저도 심장이 쿵쿵거릴 정도로 무서웠죠. _ 김소연

김 씨는 온라인 고양이 커뮤니티에 속상함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이율리아(48) 대구길고양이보호협회 대표가 그 글을 보고 김 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 대표는 달서구가 동물보호 활동을 위해 위촉한 동물복지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달서구는 2019년 대구 기초지자체 중 최초로 공공 길고양이급식소를 설치하고, 같은 해 동물복지 조례를 통해 동물복지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율리아 대표는 당시 급식소 설치 사업을 담당했던 박성배 달서구 경제지원과 유통지원팀장에게 시장 상인회와 중재 자리를 요청했다. 박 팀장은 지난 3월 완공된 달서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시장 상인회와 안면이 있었다.

4월 15일, 달서시장 상인회 사무실에 캣맘 김소연 씨와 이율리아 대표, 박성배 팀장 그리고 신동수(64) 달서시장 상인회장이 둘러앉았다. 처음 분위기는 냉랭했다. 이율리아 대표가 적극적으로 공존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거든요. 몰아내도 결국 다른 고양이가 나타날 것이고 제대로 관리를 안 하면 이래저래 문제가 되는 건 마찬가지고요. 차라리 밥 주는 곳을 정해서 거기에서만 밥을 주고, 화장실을 만들어서 정해진 자리를 잘 관리하면 깔끔해지지 않을까요?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보기도 좋을테니, 상인들 입장에서도 더 좋지 않냐고 설득했죠. _ 이율리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길고양이 급식소와 화장실, ‘한번 만들어보이소’

오랫동안 상인회 회장을 맡아 시장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신동수 상인회장은 “다른 것보다 길고양이 배설물이 여기저기 있으니, 깨끗해야 할 시장 환경이 냄새도 나고, 더러우니까 상인들이 길고양이를 없애 달라고 할 정도로 길고양이는 시장에서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이 대표 설득에도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하며 이 대표의 제안을 수락했다.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고양이 화장실을 별도로 만들고, 밥자리를 정하면 됐다. 시장 한쪽에 있는 상인회 자투리땅에 그렇게 ‘달냥이’의 화장실과 밥자리가 생겼다.

▲ 달서시장 고양이들의 밥자리(위)와 고양이 전용 모래 화장실(아래)

‘달서시장 상인회는 쥐의 서식을 막고 청결한 시장 환경을 지키기 위해 달냥이 순찰대와 따뜻한 공존을 실천 중입니다. 상인회와 협의되지 않은 길고양이 먹이 급여와 동물학대 행위를 금지합니다.’

또 달서시장 상인회와 대구길고양이보호협회 명의로 이같은 내용의 현판을 시장 곳곳에 부착했다. 현재는 급식소 2개와 화장실 2개지만, 향후 추가로 1개씩 더 설치할 계획이다.

효과는 불과 며칠 만에 나타났다. 달서시장에서 15년째 두부가게를 해오는 고숙자(56) 씨는 “요즘에는 길에서 고양이 배설물이 안 보인다. 밥자리가 따로 있으니, 고양이가 어슬렁 어슬렁 시장을 다니면서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자기들끼리 싸우고 하는 일도 근래에는 보지 못했다”며 밝게 웃었다. 고 씨 가게 한편에는 최근 그가 가져다 놓은 까만 고양이가 캐릭터로 있는 상품이 잔뜩 걸려 있었다.

10년째 옷가게를 운영해온 박경옥(60) 씨도 “음식점을 하던 상인들이 위생 문제로 길고양이를 꺼려했는데, 이렇게 관리가 잘 되고 저렇게 현판도 붙여놓고 하니 깔끔하고 좋아 보인다”며 “고양이가 밥 먹으러 다니는 곳에 저렇게 구멍도 뚫어놓지 않았냐”고 손짓하며 말했다.

▲길고양이와 공존을 안내하는 현판이 달서시장 곳곳에 붙어있다. 벽 아래에는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캣도어도 마련됐다.

영역동물 고양이, TNR과 돌봄활동 병행 필요
“공존 실천하는 제2, 3의 달서시장 계속 나왔으면”

김소연 씨와 이율리아 대표는 고양이 급식소와 화장실 허락을 받아냈지만, 처음에는 조마조마했다. 이들은 “어렵게 허락을 해주셨는데, 잘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시간이 날 때 와서 주위도 둘러보고, 주변 청소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일 시장에 와서 고양이 밥을 챙기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틈틈이 시장을 둘러보고 고양이 배설물이 있을까 살핀다.

그동안 김 씨는 몰래 밥 주는 상황이라 개체수 조절 사업인 TNR(trap-neuter-return, 길고양이를 인도적 방법으로 포획하고, 중성화하여 다시 원래 장소에 풀어주는 사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앞으로는 달서시장 고양이의 TNR 사업을 대구길고양이보호협회와 함께 순차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상인회에서 길고양이와 공존을 위해 결심을 해주신 거고, 대구길고양이보호협회의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달서시장 고양이 ‘달냥이’가 밥자리와 화장실을 갖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좋아요. 제2,3의 달서시장이 대구에, 전국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_ 김소연

박준서 대구시수의사회장은 길고양이가 제대로 보호되고 관리되기 위해서는 캣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 회장은 “특정영역 내 길고양이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해당 영역이 꾸준히 관리가 되어야 TNR의 효과가 있다. 따라서 지자체에서도 지역 캣맘과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은 길고양이를 생태계 일원으로 포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요청된다”며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공존 사례가 주민들 사이에서 나올 수 있도록 적극 중재하고, 지정된 공공 급식소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달서구 동물복지팀도 달서시장의 길고양이 공존 소식을 반겼다. 유미자 동물복지팀장은 “TNR 스케줄이 꽉 차 있지만, 빈자리가 나면 달서시장 고양이 TNR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할 계획이다. 이러한 공존 사례가 지역 내에 더 많이 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장은미 수습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