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명 끼니 책임지는 대륜중·고 급식조리원 휴게실은 ‘2평’

학교‧교육청 측 “열악한 환경 인정... 내년 시설 개선 예정”
노조, 전문가 "고강도 노동에 맞는 휴게시간과 공간 필요"

11:44

매일 2천명분을 조리하는 대구 수성구 대륜중고등학교 급식실 조리실무원들의 휴게공간은 2평 남짓이다. 조리실무원은 총 19명으로 대부분 50대 여성이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한다. 중고등학교 약 2천명분의 조리를 해야하고, 순차 배식을 하기때문에 업무 강도도 크다. 허기를 면하기도 빠듯한 휴게시간도 문제다. 올해부터는 학교 측에 사정해 오전 9시쯤 휴게시간 10분을 얻었지만, 장시간 조리와 배식 후 퇴근 직전에야 늦은 식사를 하고 있다.

▲ 대구 수성구 대륜중고 급식실 조리실무원들이 일하는 모습. (사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양파 100kg, 쌀 190kg, 고기 340kg 등
공정별로 정해진 매뉴얼따라 앞치마 바꿔가며
매일 2천명 분 식사 준비

보통 오전 7시 40분쯤 학교에 도착해 위생복으로 갈아 입고 조리 준비를 시작한다. 식재료 박스를 뜯고, 검수 작업을 시작한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식재료는 감자 50kg, 호박 50kg, 양파 100kg, 당근 25kg, 쌀 190kg, 고기 340kg 등이다. 볶음 메뉴라도 있으면 식재료는 평소 2배에 달한다.

17년째 대륜중고에서 조리실무원으로 일하는 손명선(58) 씨는 “집에서 몇 명 밥하는 것과 비교도 되지않을 정도로 깐깐한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 공정을 지켜야 한다”며 “생야채 소독 시간과 횟수 등을 철저히 지키고, 배식 전까지 학생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먹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식재료 상자를 뜯을 땐 파란색 앞치마를, 조리실 안으로 식재료를 받을 때는 분홍색 앞치마를 착용하는 등 식자재와 조리 과정에 따른 정해진 색깔의 앞치마를 수시로 갈아 입어야 한다. 식재료 검수가 끝나면 손씨와 동료들은 재료와 공정별로 ▲생선 2명 ▲튀김 2명 ▲무침 2명 ▲밥 2명 ▲국 2명 ▲전처리(세척) 4명 ▲뒷정리 5명으로 나눠진다. 각 조는 보통 일주일마다 바뀐다.

인근 비슷한 규모의 중고등학교 급식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밥을 해야 한다. 하루에 쓰는 쌀은 20kg 약 10포대 정도다. 대형 밥솥 30개 양이다. 아침 8시 10분부터 쌀을 씻어 밥을 안쳐도 밥솥이 21개에 불과해 11시 20분쯤 나머지 9판을 추가 조리한다. 국도 마찬가지다. 9시부터 1시간 30분간 중학교 배식분을 먼저 끓이고, 10시 30분부터 고등학교 배식분을 끓인다.

▲ 하루 대형 밥솥 30개 분량의 밥을 해야한다. 아침 8시 10분부터 쌀을 씻어 밥을 시작해도 밥솥이 21개에 불과해 나머지 9판은 11시 20분쯤 추가 조리에 들어간다. 국도 마찬가지다. (사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조리 기구 앞에서 한참 씨름하다보면
어질어질 탈수증상 오기도
분주하게 움직이다 화상 입기도 해

반찬 중에서도 튀김은 손이 많이 간다. 9시부터 튀김 작업을 시작해도 중학교 배식이 시작되는 11시 50분을 넘기기 일쑤다. 손은 더 바빠지고, 마음도 초조하다. 습도가 높고 환기가 잘 안 되는 조리실 환경에 더해 200도가 넘게 올라가는 고온의 튀김기 앞에서 한참 씨름을 하면 몸이 어질어질하다. 긴장이 풀린 몸에 두통과 현기증, 탈수증상이 몰려온다.

전처리로 불리는 재료 세척도 정해진 업무 매뉴얼에 따라 돌아간다. 야채를 종류별로 다듬어 3번씩 세척하고, 불에 익히는 재료는 조리실로, 생무침에 들어가는 재료는 따로 소독한다. 야채를 자르는 기계가 따로 있지만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60%라 칼날에 베이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썰어야 하는 김치만 해도 하루 85kg 분량이다.

17년째 대륜중고에서 조리실무원으로 일하는 최영자(55) 씨는 “한정된 조리공간에서 많은 인원이 먹을 식사를 정해진 시간에 하다보니 마음이 급하다”며 “밭솥과 국통 개수가 부족한데다, 해야 할 양이 많다보니 계속 조리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최 씨와 동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삐끗하거나 뜨거운 조리기구 등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 하루 대형 밥솥 30개 분량의 밥을 하기위해서는 20kg 10포대 정도를 날라야 한다. 급식 노동의 특성상 근골격계에 부담이 많이 간다. (사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식자재 쓰레기 수거 인력 충원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들어주지 않았다 

각 조별로 공정별에 따라 조리를 하고, 중고 학생들이 순차적으로 식사를 마친 시각인 2시 20분부터 30분간은 이들의 휴식시간이다. 이때 식사를 해야 한다. 오후 4시 퇴근 시간 전까지 청소 등 뒷정리를 한다. 약 2천명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식재료 박스, 비닐 등 쓰레기는 부피만 해도 상당하다. 급식 메뉴로 나온 간식 봉지 쓰레기만 600리터 정도다. 손수레를 끌고 내리막길과 운동장을 지나 다시 내리막길에 이르는 200m 길을 최소 대여섯 번, 많을 땐 10번쯤 왕복해야 한다. 동료들이 짐을 옮기다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을 보기도 해서, 더 몸을 사리게 된다.

10년차 급식조리실무원인 노경남(58)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 대륜고 분회장은 “몇 년 전 쓰레기와 폐지 버리던 일을 하던 남자직원이 퇴직을 한 뒤, 저희가 돌아가면서 그 일까지 하게됐다”며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계속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조리실무원들은 결국 8월 개학을 한 뒤부터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손을 놨다. 그러자 학교 측은 행정실 직원을 보내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를 모았다 욺긴다.

▲ 대륜중고 급식실에서 일하는 급식조리실무원이 조리과정에 나오는 박스와 비닐 등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적정 휴게공간‧샤워실‧세탁기 등 시설 개선 필요
쓰레기 수거 대체 인력 확보 등 노동강도 줄여야

이들은 그동안 근골격계에 무리가 가는 고강도 업무, 짧은 휴게 시간과 늦은 점심시간, 2평 남짓한 휴게시설과 샤워시설 부족 등을 수 년 간 참고 일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단체행동에 나선 건 개학을 앞두고 발생한 청소 문제가 계기였다. 학교 급식실은 개학 전에 식기 소독을 포함한 대청소를 하는데, 대구교육청은 2019년부터 연간 8일 이내로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륜중고 측에서 이를 5일 동안 하도록 했고, 줄어든 청소 일수로 고강도 노동을 우려한 조리실무원들이 반발하자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외주업체에 청소를 맡겼다.

노경남 대륜고등학교 분회장은 “그동안 전문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근무해온 직원들에 대한 무시와 오만한 태도”라며 “외주업체가 청소했다는 급식실은 청소 진행 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방학 중 청소일수 보장 ▲급식조리실무원들에 대한 존중 ▲휴게실, 샤워실, 세탁기 설치 ▲노동강도 높이는 쓰레기 수거, 교직원 식당 운영, 대체 인력 확보 등 인력 문제 ▲대구교육청 취업규칙 및 단체협약 적용 등의 요구사항을 내세웠다. 노조는 3일 학교 측과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조리원 노조는 지난달 23일과 2일 학교 앞에서 대륜교육재단 규탄 선전전을 두차례 열었다. 지난달 24일 ‘대륜중고 안전위생 급식 촉구 및 반인권적 노동환경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근로환경에 관해 공론화했다. 대구교육청 행정안전과와 대구고용노동청 산재예방지도과는 즉각 현장점검을 통한 상황 파악에 나섰다.

▲ 지난달 23일과 2일 대륜중고 급식실에서 일하는 급식조리실무원들은 학교 측을 규탄하는 선전전을 펼치는 등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공론화에 나섰다. (사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학교 측, 열악한 근무환경 공감하지만…
교육청 측, “시설 개선 빠르게 진행할 계획”

학교와 교육청 측은 급식조리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공감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을 취하는 중이라고했다. 다만 당장 해결은 어렵지만, 내년에 시설 현대화가 이뤄지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륜고 관계자는 “열악한 조리시설에 관해 학교측에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환경 부분은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개선을 하려했다. 교육청에도 시설 개선 요구를 꾸준히 해왔다”며 “내년에 현대화 사업을 확답 받은 상황으로 그 이후에는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탁기 구입은 현재 구입 모델을 논의 중에 있고, 조리원들의 늦은 식사도 내년 시설 현대화로 중고등학교 식당이 따로 나눠지면 배식 시간이 단축돼 해소될 것으로 본다”며 “이전에 상황이 되는 일부 조리원이라도 먼저 식사하시라고 권유를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교육청 측은 대륜고 급식실 시설 개선이 이뤄질 예정이지만, 사립고의 노사관계에 관여하기를 꺼려했다. 대구교육청 교육복지과 학교급식지원담당과 측은 “다른 학교와 비교해서 시설이 열악한 것이 맞다. 보통 10년 이상 경과하면 현대화 작업을 검토하기 시작하는데, 대륜중고의 경우 12년째다. 그렇지만 시설 낙후의 문제보다는 처음부터 조리장과 휴게공간 등 설계가 비좁게 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교육청 행정안전과 공무직교섭담당과 측은 “근무시간이 7시간 30분이라 학교에서 휴게시간 보장은 30분인데, 식사를 하시는 2시 20분부터 30분간 보장되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사립학교다보니 교육청에서도 처우개선 문제에 학교 측에 과도하게 요구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대구고용노동청 근로지도개선과도 “현재 법상으로는 휴게실 유무만 따질 뿐이라, 현장 근로감독을 나갔지만 그 자체로는 법 위반을 지적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구체적 휴게공간의 환경에 대해서는 현행 법에서는 명시하고 있지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대륜중고 급식실에서 일하는 급식조리실무원들이 이용하는 휴게공간 모습. 2평 남짓한 공간에 불과하지만 현행 법으로는 휴게공간에 유무만 따질 뿐 구체적인 벌칙조항은 없다. (사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실제로 현재 휴게시간과 공간 등에 대한 법 규정은 노동 현장과 괴리가 있다. 한인임 노동환경연구소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4시간 근무에 30분 휴게시간 규정은 사무직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맞춰져 있다. 급식노동자의 경우 고열작업에 노출되어 있고 노동작업 강도가 센 편이라 오히려 휴게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 노동현장의 몰이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 사무처장은 “적정한 휴게시간이나 휴게공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데 따른 페널티가 현재로선 없는 것이 가장 문제”라며 “구체적으로 규모, 온도, 환기 등 휴게실에 대한 규정이 정해져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해야한다. 급식조리원 업무 특수성을 고려하고 이들의 노동 강도를 낮추기 위한 관계기관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