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노스텔지어 만큼 위안이 되는 것은 없다 ‘매트릭스:리저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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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는 전 세계 영화산업 역사상 기념비적인 영화다. 360도 모든 방향에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한 공중부양 신과 중력을 거스르는 액션신은 당시 혁신의 상징과 같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몸을 90도로 젖혀 총알 세례를 피하는 액션을 마치 시간을 멈춘 듯 360도 회전 화면에 담아낸 장면은 액션신의 백미였다.

수많은 아류작을 낳았고 패러디 영상이 양산됐다. 혁신적인 촬영 기법 외에 동서양의 철학과 문화가 어우러진 세계관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기계 대 인간이라는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새롭고 파격적인 세계관으로 표현해내면서 SF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류가 현실로 믿던 세상이 실제로는 거대한 매트릭스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시뮬라시옹(Simulation·실재가 가상 실재로 전환되는 일), 시뮬라크르(Simulacres·현실을 대체하는 모사된 이미지) 등의 현대철학 개념과 윤회 같은 동양사상과 거부감 없이 녹아들었다.

1편은 제작비 6,300만 달러로 7배가 넘는 수입을 거뒀고, 3부작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총 흥행 수입은 전 세계 16억 달러(한화 약 1조 원)에 달했다. 워쇼스키 감독들이 <매트릭스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 상상력, 연출, 색감과 음악은 찬사를 받았다. 워쇼스키 자매 감독은 모두 거장 반열에 올랐다. 영화는 SF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꼽히고 대중문화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전무후무한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라나 워쇼스키가 감독과 각본, 제작을 도맡은 <매트릭스:리저렉션>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3편 <매트릭스:레볼루션(2003년)> 이후 18년 만에 개봉한 4편을 향한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게 지배적이다. 굳이 또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3편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기계 도시의 지도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나 인류와 평화를 조건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4편에서 토머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크게 흥행한 게임 <매트릭스>의 개발자로 살아간다. 앞선 모든 시리즈를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게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매트릭스 세계 속의 주요 인물들 역시 게임 캐릭터이며 피규어로 제작돼 팔리기도 한다.

다만 앤더슨은 현실과 가상을 혼돈해 자살을 시도했다. 이 때문에 꾸준히 심리상담을 받고 파란색 약을 복용한다. 네오의 연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는 티파니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이다. 남편, 아이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산다. 앤더슨은 가끔 카페에서 만나는 티파니를 홀로 연모해 게임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혼란스러운 경계 한가운데서 혼란을 겪는 앤더슨의 앞에 모피어스(야히야 압둘마틴 2세)가 나타난다. 모피어스는 프로그램의 반복을 통해 부활해 매트릭스의 실체를 폭로하고 인류를 기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앤더슨을 찾은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의 세뇌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앤더슨은 네오라는 운명을 각성한 뒤 트리니티와 함께 에이전트들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중년의 네오가 예전처럼 하늘을 날지 못하고 젊은 에이전트와 대결도 힘에 부치는 것처럼 영화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낡고 닳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는 “노스텔지어 만큼 위안이 되는 것은 없다”고 말하지만 과거를 딛고 나아가지 못한다. 그저 지난 과거를 떠올리고 추억하게 한다. 앞선 시리즈의 명장면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반갑지만은 않은 대목이다.

<매트릭스:리저렉션>은 전편에서 나온 화려하고 독창적인 액션신이 별다른 고민 없이 반복된다. 18년 동안 <매트릭스> 시리즈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는 쏟아졌다. 전반적인 액션 스케일도 아쉽고 서사의 연결도 허술하다.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년)>처럼 새로운 인물들을 내세우고 과거의 인물들과 연결점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명작도 세월을 견뎌내지는 못했다. 과거를 딛지 못하고 옛 영광에 묻혀 지금 세대는 모르는, 찬란했던 과거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명작을 추억의 숲속으로 옮겼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