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 ‘달마야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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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놀자>는 조폭 코미디가 한창 인기를 끌던 2001년 개봉했다. 누적 관람객 375만 명을 동원해 흥행수입만 약 120억 원에 달했다.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까지 팔았다. 여느 조폭 코미디처럼 건달을 미화한다는 비판은 받았지만, 사실 조직 폭력배의 배신을 다룬 주제라서 노골적인 미화로 보기는 어렵다. 조폭과 승려들의 면면이 입체적이고 불교적 메시지를 주제에 잘 녹여냈다. 조폭이 나오기는 해도 조폭의 의리 따위가 아닌 불교적 감화가 다뤄졌다. 영화가 전달하는 교훈은 당시로서는 촌스럽지 않고 꽤 세련됐다.

영화 플롯은 동양 문학에 자주 나오는 사찰로 도피한 범죄자의 모티브를 따른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기습을 당해 갈 곳이 없어진 재규(박신양) 일당은 잠시 숨어 있을 곳으로 사찰을 찾는다. 승려 대봉(이문식)을 인질로 잡고 소란을 피우는 재규 일당은 명천(류승수), 현각(이원종), 청명(정진영)과 마찰을 빚지만, 이내 주지승(김인문)이 나타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재규 일당이 절에서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다만 승려들의 수양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얻어먹은 만큼 밥값을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사회와 단절된 사찰 생활이 따분해진 재규 일당은 말썽을 피운다.

재규 일당은 바깥의 상황을 몰라서 일주일 더 머물려고 하는데 승려는 단칼에 거절한다. 관대하던 주지승도 선을 긋는다. 건달들도, 승려들도 물러서지 않을 때 두 집단은 시합을 하기로 한다. 삼천배, 족구, 잠수, 369게임을 하지만, 재규 일당이 대결에서 연거푸 진다. 쫓겨날 처지에 이른 건달들은 막무가내로 버틴다. 그러자 주지승이 양 측을 모아 밑 독이 깨진 항아리에다 물을 가득 채우라는 문제를 낸다.

청명은 주지승이 제 편을 들어줄 거라 믿고 자신이 직접 항아리 안에 들어간다. “마음이 물이요, 몸 또한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깨진 독에 들어간 소인의 몸과 마음은 깨끗한 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지승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난 물을 채우라고 했지, 사람을 채우라고 하지 않았느니라. 그건 답이 아니야.” 주지승이 낸 문제는 건달들이 해결한다. 연못에 항아리를 던진 다음 손으로 눌러 깨진 독에 물이 가득 차게 한 것. 뒤따라온 주지승은 “독에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른다”며 그들을 계속 머물게 해준다.

사찰에 머물게 된 건달들은 장난치다가 불상의 귀를 부러트리고 사찰 마당에서 소변보는 등 온갖 소란을 피운다. 이에 승려들이 주지승에게 항의하지만, 주지승은 오히려 승려들을 나무란다. “부처님 귀가 떨어졌으면 다시 붙이면 될 거 아니냐? 너희들 눈에는 그게 부처님 귀로 보이냐? 그게 아니라면 법당의 불상이 부처님으로 보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너희들은 지금까지 나무토막을 섬겼어? 너희들 마음속에 부처가 들어있거늘, 불상에 귀 하나 떨어졌다고 호들갑이야?”

재규는 건달들을 챙기는 주지승과 숲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스님, 저희를 이렇게 감싸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주지승이 되묻는다. “누가 누굴 감싸줘?” 주지승은 말한다. “네가 내 문제를 풀었으니까 더 있으라고 한 건데 누가 누굴 감싸줬다고 그래.” 재규는 묻는다. “그래도 착하게 살라든지 뭐 남들 괴롭히지 말라든지 아무튼 원하는 게 있으시니까 이렇게 감싸주시는 거 아닙니까?” 주지승은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그럼 너 밑 빠진 독에 물을 퍼부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채웠어?” 재규는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그건 그냥 항아리를 물속에다 던졌습니다.” 주지승은 가르침을 준다.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달마야 놀자>는 불교의 뜻을 쉽게 알려주는 철학적인 장면들이 눈에 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승려들은 불상을 곧 부처로 여기고 부서진 불상의 귀를 귀중한 것인 것처럼 고운 천에 감싸 주지승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불상은 그저 물건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상징적인 플롯이다. 주지승이 재규에게 전한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밑 빠진 독의 구멍을 억지로 막아 물을 붓지 않고 연못에 던졌듯, 밑 빠진 조폭을 억지로 갱생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불법의 깨달음을 스스로 얻도록 한 것이다. 재규는 주지승의 말에 감명을 받고 사찰의 규칙을 따른다. 절을 떠날 때는 주지승의 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주지승의 가르침을 회상한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