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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면 폐지하고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기후위기와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감 속, 어떤 이는 원전이 답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답이 아니라며 대립한다. 하지만 양쪽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한 문제가 있다. 핵폐기물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은 90년대부터 줄곧 입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전 지구적으로 아직 영구처분장을 마련한 곳은 없다. 무작정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쌓여만 가는 핵폐기물. 답을 내야 할 정치인은 이 문제에 대해 말하길 꺼린다. 한국 원전 가동 40년, 진척 없는 빨간불만 이어지고 있다.

① 응답 없는 정치, 불안한 주민
② “고준위 방폐장, 답 있다는 사람에게 속지마라”
③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실패의 역사
④ 월성원전 인접지 주민에게 방폐장이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방침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 진흥 방침을 밝혔다. 탈원전을 외친 문재인 정부와 탈원전 폐기를 외친 윤석열 정부의 공통점이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처분장(고준위 방폐장) 문제에 대한 답은 없다는 점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즉 원자력 발전에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사용후 핵연료, 폐연료봉)는 이론은 있지만 학계에서는 최소 10만 년 이상 외부 격리를 거쳐야 방사성 핵종이 반감기를 거쳐 안정화될 것으로 추정한다. 인류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이 기간, 사용후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보관하는 문제는 기술적으로도 주민 수용성 문제에서도 여느 오염 시설이나 기피 시설과 차원이 다른 난제다.

그래서일까. <뉴스민>이 지난 3월 대구·경북 지역구 국회의원 25명에게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안에 대한 정책과 국회 계류 중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내고 확인 전화도 여러 차례 했으나, 어떤 의원실도 답을 해오지 않았다. 의원실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자신의 지역구와는 큰 관련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답 없는 사용후 핵연료 상황은 한국 만의 상황은 아니다. 2022년 현재, 고준위 방폐장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 두 나라, 핀란드와 스웨덴만 영구처분장을 위한 부지 확보에 성공했을 뿐이다.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처음 가동한 뒤인 1986년, 고준위 방폐장 건설 논의를 시작해 총 9차례 부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화장실도 짓지 않고 만든 아파트에 일단 입주부터 한 격이다. 원전 최초 가동 이후 40년이 넘도록 여전히 고준위 방폐장 입지 선정은 요원하다.

갈 곳 없는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돼 쌓이고 있다. 정의당 류호정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9월 30일 기준 국내 사용후핵연료 임시보관 시설 현황은 고리본부 6,737다발(핵연료봉 다발)로 저장용량의 83.8%를 차지했다. 이어 한울본부 6,342다발(80.8%)로 80%를 넘긴 상태고, 한빛본부 6,691다발(74.2%), 월성본부(경수로) 658다발(62.9%), 새울본부는 296다발(19.0%) 순으로 저장용량을 채워가고 있다.

같은 시점, 경수로 2기·중수로 4기로 구성된 월성원전은 중수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 48만 4,076다발(98.8%, 습식보관 포함)을 소내 임시저장시설인 맥스터와 캐니스터에 저장하고 있다. 핵폐기물이 포화 직전 상태에 이른 셈이다. 맥스터 포화 때문에 발전소 가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앞두고 한수원은 맥스터 증설을 추진해, 2022년 3월 기존 맥스터 7기에 추가 맥스터 7기를 완공했다.

월성원전, 중저준위 방폐장 있는 경주
논란 끝에 유치한 중저준위 방폐장
지원책 체감도는 “크지 않아”
불안한 주민들···”문제 생기면 같이 죽는 거죠”

지난 1월 5일 오전, 장날을 맞은 양북공설시장. 양북공설시장은 동경주 지역으로 구분되는 문무대왕면(구 양북면)에 있다. 과거 동경주 지역(문무대왕면, 양남면, 감포읍)은 월성군으로 경주와 분리되어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경주와 경계에 있는 토함산이 동경주를 분리해서 생활권도 구분된다. 월성원전, 중저준위 방폐장은 동경주 지역에 있다. 1989년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됐고,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경주시로 통합됐다.

양북공설시장은 월성원전에서 약 10km, 중저준위 방폐장으로부터는 약 7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체로 핵폐기물 분류나 현황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했지만, 한 좌판의 상인 A(70) 씨와 단골 B(70) 씨는 평소 관심 있던 주제인듯 주거니받거니 서로 다른 견해를 밝혔다. B 씨는 월성원전 민간환경감시단 위원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들은 원전 필요성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일단은 기존 원전 부지 내에 보관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A : 봉길리에 있는 거(중저준위) 말고, 진짜배기 핵폐기물(고준위). 그 위험하고 안 좋은 거. 일본처럼 지진 날까 봐 걱정돼. 우리가 힘이 안 돼서 그것도(중저준위 처리장) 들어왔는데. 앞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국가가 짓는다고 하면 또 얼마나 시끄럽겠습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B : 제가 환경감시반인데요. 일단 원자력에서 보관(소내 보관)하는 게 맞아요. TV 수신료 해주지, 주민세 싸게 해주지. 그런데 지원 나오는 걸 일부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주지 않고 꿀꺽해서 감옥 간 경우도 있긴 했어요. 그런 짓은 하면 안 되죠. 그래도 지금은 이거저거 다 해봤지만 원전 밖에 답이 없는 거 아닙니까.

A : 지원도 공정하게 분배가 안 되고. 지원해준들 건강에 해로운데 무슨 소용입니까. 원천적으로 다른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해요. 원전을 계속하면 지구가 망해요.

B : 그건 언젠가는 망합니다. 원전 했다고 망하는 게 아니에요. 방사능 수치도 정상이고. 외국에도 원전을 다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이것저것 다 해본 결과 원자력을 다시 돌려야 한다는 거예요.

A : 핵폐기물은 어쩌고요. 다른 데서 누가 가져간답니까. 그러면 또 다른 데 난리 납니다. 그럼 어디 가겠어요. 경주지. 또 무슨 연구소 짓는다 해놓고 그건 지켜졌습니까? 동경주가 아니고 시내에 지어야 한다고 막 싸움도 하고 그러던데. 나쁘고 안 좋은 건 여기 다 있고. 지원도 골고루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동경주 사람들이 자꾸 떠나지···. 하여튼 핵폐기물은 어디 갈 데는 없을 거 같고 있는 데서 보관하는 수밖에는 없겠지요? 그러다가 문제 생기면 뭐 같이 죽는 거죠. 문제 안 생기게 튼튼하게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1월 13일, 경주 중심가 성건동 경주중앙시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고준위 방폐장 문제에 전반적으로 거부감을 표현하면서도, 일부 시민은 기왕 지어야 한다면 제대로 처리장을 지어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보였다.

장을 보러 나온 곽창호(61) 씨는 “나는 고향이 동경주 쪽인데, 원전 짓는다고 우리 마을이 없어져서 철거민이 됐다. 핵폐기물은 보관할 데가 없어서 야외 보관한다고 들었다. 최종처분장이 경주에 오는 건 반대다. 폐기물 처리장은 당장 지역에 도움 되는 게 없다”며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할 때 경주시민들이 찬성을 많이 했는데, 들이고 보니 특별하게 득 되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경주는 2005년 경주시민 투표를 통해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동경주 지역인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에 유치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는 중저준위방폐장 유치지역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유치신청을 받아, 신청이 접수된 경주, 군산, 영덕, 포항에서 주민투표 시행 후 가장 투표율이 높은 곳을 선정하기로 했다.

투표 결과, 경주가 89.5%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에는 특별지원금 3,000억 원 등을 지원했지만, 곽 씨 말처럼 시민 체감도는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에 따른 편익보다 비용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원사업에 따른 효용성 체감도가 낮다는 의견은 또 있었다. 장을 보러 온 최철호(65) 씨는 “핵폐기물이라면 위험하다는 느낌부터 든다. 방폐장을 지으려면 주민 생각을 물어야 한다. 지금도 임시보관하고 있는데 나는 반대다. 후쿠시마 같은 경우도 그렇듯 재해가 생기면 피해는 전 국민이 입긴 하지만 원전 주변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며 “경주 좀 잘살아 보자고 (중저준위) 방폐장 허락했는데, 뭘 얻었나. 앞으로 사람 사는 곳이 아니고 핵폐기물 공장밖에 안 될 거 같다”고 설명했다.

▲경주중앙시장에서 만난 상인 윤영자(65) 씨

상인 윤영자(65) 씨는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문제다. 임시로 쌓아 둔다고 들었는데 걱정 많이 된다. 경주에 계속 쌓아두면 큰일인데. 그냥 쌓아두는 거보다는 처리장을 지으면 더 괜찮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전영준(56) 씨는 “방폐장 문제는 논의가 필요하다. 한반도가 좁아서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다. 예전에는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입지 선정한 건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안전을 우선시하는 시대가 됐다”며 “지금 있는 문제를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국가 발전을 위해 안전을 멀리하는 것도 잘못됐다. 양자가 같이 가야 하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논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중앙시장에서 만난 상인 전영준(56) 씨

학계에서도 입장 갈리는 부지 선정 문제
부지 조건 : 최단 수송 거리, 안정적 입지, 주민 수용성

학계에서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를 3가지로 꼽는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입지 조건 ▲핵폐기물 운송 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위치 ▲주민 수용성이다. 고준위 방폐장 입지로는 (지하)심층처분, 해양처분, 우주처분 등 방식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심층처분을 현실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현재 고준위 방폐장 입지를 선정한 핀란드와 스웨덴도 모두 심층처분 방식을 선택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지하에 묻는 심층처분은 당연히 지반이 안정돼 있어야 한다. 활성단층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며, 안정적인 보관이 가능하도록 암반층이 두껍고, 지하수가 없어야 한다. 문제는 국내 에 조건을 갖춘 지역이 있는지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계에서는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이 교차한다.

우선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탈원전 폐지 및 에너지정상화대책지원본부 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여건을 갖춘 지역이 충분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범진 교수는 “화강암이나 변성암 지대가 적합하다. 지하수 없고, 단층도 없는 그런 지대가 한국에 많아서 입지 조건은 좋다. 그 조건을 갖춘 지자체가 신청하면 조사하고, 그중에서 최적지를 선정하면 된다. 지역 주민에게는 적극적인 지원을 먼저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준위 폐기물 처리 방안에 대해 박근혜 정부에서 공론화가 됐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 다시 한다고 해서 사실상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시간만 낭비했다. 그 때문에 저장조가 가득 차는 지경이 됐다”며 “우리 사회가 사용후 핵연료 처분 부지가 없는 걸 굉장히 문제시하고 있다.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고도 하는데, 40년 동안 같은 상태로 관리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급한 건 원자력계다. 그래서 원자력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고 말했다.

끝으로 “부지 조사를 위해 땅 한번을 파보지 못했다. (부지 선정은) 정치의 문제다. 이때까지 정치가 불안해서 땅을 파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튼튼한 정부를 만들어서 합리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앞으로는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 주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현금 보상을 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주머니에 들어오는 게 없다고 느낀다. 필요하다면 주민들이 흡족할 만큼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내에서 안전한 입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심층처분을 하려면 어떤 방식이 돼야 하는지, 국내에는 판단할 전문가가 없다. 핀란드가 500m 지하에 묻는다고 하는데 그건 거기 조건이고, 전례가 없다”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지하 직경 2km 이상의 암반층이 한 덩어리로 있어야 하고, 그다음으로 활성단층이 최소 10만 년 이내에 확인되면 안 된다. 두 조건은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데, 한국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운 교수는 이같은 조건을 만족하지 않고 섣불리 고준위 방폐장을 지어 보관하다,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고준위 방폐장 입지 선정에 실패하고, 지금처럼 기존 원전 부지 내에 임시 보관하는 사태가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실적으로 중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선 지역 위주로 고려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최대한 조건을 만족하는 지역을 찾아, 그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지역 주민이 반대한다면 입지 선정 이후라도 다시 철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주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진철 교수는 “지질학적 안정성이 중요하고, 핵폐기물 이동 구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주민 수용성도 문제”라며 “해외 사례에서도 보듯,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대체로 중저준위 방폐장을 먼저 짓고 점차적으로 그 지역에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추진한다. 우리도 아마 동해안 지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 수용성 면에서 중요한 건, ‘불신의 제도화’다. 정부가 입지를 결정하고 주민 동의를 받아 시작해도, 그때의 결정이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민 견해가 바뀌면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게 중요하다”며 “그 전제가 있어야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 주민을 설득해야 진정으로 설득되는 것이고, 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