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미스터 장’, 우리 동네 ‘파워엘리트’ 탄생을 그린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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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일그러진 지방자치에 봄은 오는가?

2022년 6월 1일 예정된 제8회 동시지방선거가 다가왔다. 6공화국 이후 지방자치가 정착되어왔지만 ‘지역’의 의미란 대체 무엇인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수도권에 집중한 한국사회 특성 때문에 ‘지방 소외’, 심지어 ‘지방 소멸’ 위기가 거론된 지 오래다. 여기에 또 다른 쟁점이 추가된다. ‘지방자치’라 하지만 지자체의 주요 업무는 중앙정부의 위탁업무 대행에 그치고 예산과 정책 결정권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종속된 상태다. 거기에다 지방자치의 완성이 되어야 할 과제, 실질적인 ‘주민자치’는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소규모 지자체로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 주민들의 목소리가 일정부분 반영된다고 하더라도 그 지분은 온전한 공론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 기득권의 주장에 기울기 십상이다. 심지어 ‘토호’들이 여전히 지역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종종 나온다. 그런 지형 아래에서 ‘지역정책’은 거의 ‘개발정책’과 동의어가 되어버린다. 수도권에 비해 소외된 지역 형편상 더 많은 예산을 따내고 지원을 받아오는 게 지역 정치의 유일한 화두가 된 지 오래다.

보는 눈이 많지 않아 여전히 과거의 인습이 남은 데다 개발논리가 판을 치며 지역사회는 기존 기득권에 목소리 큰 몇몇이 독식하며 카르텔을 형성하는 지경에 처하곤 한다. 그렇다고 지역 고유의 전통이나 유산이 존중받는 것도 아니다. 결국 ‘돈’의 논리와 ‘힘’ 가진 자에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전락하곤 한다. 장병기 감독의 중편 <미스터 장>은 그런 미시적 지방권력을 은유하는 일종의 ‘우화’로 기능한다.

2_장병기 감독의 필모그래피 개괄

2017년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현 광화문 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 수상작, <맥북이면 다 되지요>로 이름을 알린 장병기 감독은 꾸준히 대구에서 지역 동료 영화인들과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 감독에게 <맥북이면 다 되지요>로 얻은 주목과 관심은 양날의 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해당 작품의 서늘한 분위기와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담긴 약간의 개그코드와 향토적 배경(영화는 고령군에서 로케 촬영됐다) 때문에 작품이 가진 정조가 다소 축소되거나, 심지어 코믹 장르로 오독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이긴 하지만 단편과 장편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한 분량이다. 과거 “TV 문학관” 같은 1시간 내외 단막극과 유사한 형태) <할머니의 외출>을 2019년에 선보인다. 이 영화는 ‘효자’로서 주변에 인정받지만 실은 치매 노모를 모시느라 기진맥진한 현대가족의 초상을 건조하게 자연주의적으로 다룬 보기 드문 개성을 선보였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내용의 무게감에 비해 이 영화는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당대 한국 가족의 해체 혹은 변화된 지형에 대한 관찰과 노인복지 현주소에 대한 진단이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외출>은 전작에 비해서는 아쉬운 반응에 그쳤다. 하지만 오히려 감독이 선보이고픈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영화에 담긴 주제와 이를 형상화하는 전개는 주의를 끌만한 지점이 있었다. 이 작품은 몇 군데 영화제에서 소개되긴 했지만 끝내 작품의 진가를 공정히 평가받거나 논의되진 못했다.

감독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창작활동은 물론 생계에 어려움마저 이중고를 겪는 독립영화인들을 위한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제작지원에 힘입어 실험요소가 강한 단편 <세 개의 눈>을 선보였다. 그리고 2021년, 부산 인터시티레지던시 영화제작사업에서 제작지원을 받아 신작 <미스터 장>을 내놓는다. (이후 대구다양성영화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신작 장편 작업에 들어갔다.)

3_<미스터 장> 영화 속 소우주

<미스터 장>은 40분 동안 경북 청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방송국 뉴스 앵커 출신 장사장이 내려와 마을에 자리를 잡으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줄거리를 이룬다. 장사장은 마을을 위해 봉사한다며 이것저것 제안하고 추진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와 연을 잇게 되는 이장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영화 ‘미스터 장’

마을주민들은 처음에는 외지에서 낙향한 장사장을 뒤에선 의심하며 무시하고 뒷담화를 일삼는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의 인맥과 입지는 시골 사람들로선 감히 측량할 수 없는 ‘클라쓰’였다. 도시에서 직장생활하다 귀농한 젊은 이장은 처음엔 다른 주민처럼 장사장을 대하지만 군수나 의원과 호형호제하는 장사장의 위상을 체감하면서 그가 던지는 제안을 점차 진지하게 실행한다. 심지어 나중엔 장사장의 ‘꼬붕’ 소리를 들을 만큼 충실하다.

주민들은 조용한 마을에 풍파를 일으키는 장사장을 여전히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가 주도한 변화로 인한 불편을 이장에게 푸닥거리한다. 중간에 끼인 이장은 곤혹스럽다. 일은 일대로 처리해야 하고, 장사장이 주민을 비난하는 것과 주민들이 장사장(과 이장)이 추진하는 변화에 대해 던지는 불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장은 과거에 마을 발전을 위해 주민들에게 제안했지만 좌절했던 것들을 구현하고픈 욕망과 장사장에게 도구처럼 이용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한다.

4_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짙은 그림자

영화는 감독이 선보여 왔던 일관된 세계관을 계속 이어나간다. 공개된 연출 의도나 줄거리가 있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감독이 속에 품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길잡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트릭처럼 여겨진다. 감독은 여러 갈래로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장치와 암시를 영화 곳곳에 심어두고 관객과 지적 퍼즐을 제안하는 듯 보인다. 그저 풀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관객이 답을 맞춰보려면 꽤나 묵직한 판돈을 걸어야 하는 영화적 체험의 유희다. 이 작품은 영화를 보는 이의 관점이나 경험 정도에 따라 무척 다른 색깔로 받아들여질 법한 작업이다.

영화의 구도는 마치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 대령을 주시하던 윌러드 대위의 심경처럼 진행된다. 장사장의 압도적 권능은 커츠 대령을 연상시키고, 그에 맞서면서 관찰하다 점점 대령을 닮아가는 윌러드 대위의 모습은 이장의 복잡한 내면과 흡사하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결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본 작품은 한국사회 현실풍경의 단면을 묘사한 일종의 우화이다.

▲영화 ‘미스터 장’

누군가는 장사장에 대해 그저 성공한 명사가 고향으로 귀향해 가진 자의 호의를 베푸는데 고약한 주민들이 이를 오해하고 의심하는 군상 극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반대로 풀이하면 장사장이 지역 홍보대사로 화보 촬영할 때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촬영현장에서 장사장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존 웨인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존 웨인의 대표적 이미지는 서부개척(정복)시대 기병대다. 그 상징적 효과를 떠올려본다면, 그가 마을을 장악하고 군림해가는 드라마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다.

5_기묘한 버디무비의 불온한 향기

장사장을 중심으로만 이야기를 설정했다면 영화는 방금 언급했던 두 개의 가설 중 하나의 시각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로, 선택의 문제로 마칠 테다. 하지만 감독은 그 자신도 주체적 행위자인 동시에, (마을에 불어 닥친 격변의)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이장을 대척점에 두는 선택을 통해 <미스터 장>의 세계관을 대폭 확장시킨다.

젊은 이장은 그가 이미 마을주민들을 설득해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마을의 발전을 다시 도전할 기회로 삼기 위해 장사장이라는 ‘동아줄’을 움켜쥐고 싶다. 하지만 영화 내내 그는 자신이 ‘이장’으로서 장사장을 활용하고픈 주체적 욕망을 놓지 못한다. 또한 마을 이장으로서 장사장이 자신에게 배은망덕한 (자기가 대표하는) 주민들을 비판할 때는 심리적 반발을 눈치 보지 않고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장사장이란 존재는 그저 돈푼깨나 좀 있는 개인이 아니다. 한국사회 내 어떤 단면의 상징적 표상으로 구현되는 이야기에서 이장의 욕망과 반발은 절대로 대등하게 실현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 때문에 이장은 끊임없이 장사장과 대립각을 세운다. 그는 자신이 주역이 되어 마을의 부흥을 이루고 싶다. 하지만 주민들은 (시골사람이라는 도시인들의 순진한 선입견과는 달리) 각자의 이해타산에는 놀라울 만큼 재빠르다. 자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의 이장보다는 감히 같이 놀 ‘급’이 아닌 것을 확인하게 된 장사장에게 점점 흡수되어간다. 장사장의 호언장담이 조금씩 실체화되기 시작하자 뒤에서 그를 헐뜯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시 그의 추종자로 전향하고 이장은 고립무원에 빠진다. 이제 그에게는 장사장의 밑에서 중간관리자가 되길 간청하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 선택지만 남았을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을의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인지 확인시키는 상징적 순간으로 기능한다. 이장이 그 맞은편에 서 있다면 지나치게 도식적인 설정이겠지만 그 말고도 마을의 다른 목소리는 겉으로는 당분간 더 이상 공개적으로 등장하지 못하리란 예상과 함께 누구건 선택해야 할 시험장으로 받아들인다면 조금 더 풍성한 해석을 펼칠 수 있을 테다.

6_피카레스크 식 구성에 가까운 서늘한 기운

이 영화에는 온전한 선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그런 선 역에 가까운 존재는 역설적으로 결과만 놓고 보면 장사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돈에는 아무 미련이 없다던 그가 결말부에 지역에서 갖게 된 위상을 본다면 영화의 ‘공식’ 설정은 하나의 거대한 농담처럼 다가온다. 한국사회의 서울 중심 중앙권력에 씨줄 날줄로 연결되며 수직 계열화된 기득권 피라미드가 아주 미시적이지만 실감나게 영화 속에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장이라는 캐릭터는 영화의 중층적 구조를 구축하는데 필수적 존재다. 스스로 중심이 되고픈 욕망과 관찰자로서 관객을 대신해 장사장과 주민들 사이의 시선을 전달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전부 도맡아 감당하기 때문이다. 좀 더 해당 캐릭터의 과거사가 밝혀졌다면 보다 풍성하게 해석될 법한 지점이 다분해 보인다. 그래서 이장의 과거 좌절과 실패가 조금 더 언급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더욱 궁금해진다.

그는 장사장이 입안하고 자신이 주민들을 설득한 덫 해체 후 끊임없는 불안과 혼란에 휩싸인다. 덫은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들의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된 용도였다. 마치 기존의 마을을 보호하던 성벽과 같은 상징적 역할을 해주던 덫이 사라진 후 그 역할은 장사장이 후원해 설치한 CCTV가 맡지만, 정작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 CCTV는 끝까지 어떠한 ‘진실’도 밝히지 않는다.

이장은, 그리고 관객은 장사장의 주장대로 야생동물(외부의 존재)의 위협이 그저 허상일 뿐인지, 아니면 주민들의 주장처럼 무방비 상태로 침입을 허용한 꼴인지 선택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장의 강박적 심리와 무엇 하나 또렷하게 확인되지 않는 모호한 주변 상황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이된다. 과연 주민들은 장사장의 의심처럼 보상금 한 푼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위협을 과장하고 자작극을 벌이는 것일까? 아니면 마을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한 방패를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화를 자초한 걸까? 진실은 근처 저수지 때문에 늘 안개 자욱한 풍경처럼 흐릿하다.

7_많은 것을 담아낼 ‘그릇’ 역할이 가능한 작품

영화는 파괴되어가는 시골 공동체의 현주소와 개발 붐의 실체를 풀어내고, 그 과정에서 중앙에 종속되는 지역사회의 실체를 압축포장한 뒤 미니어처 모델을 응시하게 만들듯 관객에게 전달한다. 몇 개의 시선이 각자의 눈으로 영화 속 세계를 투시하며 가변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 투영된 풍경을 관객 개개인이 취사선택해 해석해야 하는 숙제를 안기기 때문에 편하게 영화 보기는 글렀다.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욕망을 품고 행동하는 <미스터 장>은 관객에게 쉬운 선택지를 줄 생각은 처음부터 없어 보인다.

장병기 감독이 세상을 보는 구도가 곧 영화 속 세계관이라고 판단한다면, 그의 영화들은 어릴 적 골목에서 보도블록을 뒤집어보다 발견하곤 했던 풍경 그대로 날것의 감정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즉 매끈한 표면 뒷면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축축하고 더러운 것들, 혐오스러운 존재들이 잔뜩 붙어 있는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기분의 전이다. 우리가 피하고 싶지만, 분명히 이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들을 직시하고 대면하도록 만드는 기능이다. 이를 위해 영화 속 프레임은 용도에 맞는 필터를 끼운 정밀한 현미경 렌즈의 역할을 해낸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영상화와 시공간을 가로질러 직통하는 작업이다.

장사장 역을 맡은 베테랑 연기자, 김종구 배우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캐릭터를 한 번에 소화해내는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낸다. 배우의 경력이나 출연작의 리스트를 볼 때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의 활약이다. 여기에 복병으로 이장 역을 소화한 임호준 배우가 가세한다. 그 역시 독립영화계에서 충분한 위상을 쌓아나가는 중이지만, 영화를 실제 관람하기 전에는 그의 캐릭터는 장사장에 비해 간과되기 쉽다. 하지만 본 작품 전개에 있어 긴장감과 밀도를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훌륭하게 담당한다.

그 외 대구 독립영화계 작품군에서 종종 발견되는 지역 연기자들의 출연도 반갑다. 대개 연극무대에서 활약 중이거나 (제작비 절감 겸) 스태프들이 이중 활약을 펼치기 때문에 작품 이해력이 남달라 보인다. 그저 빈틈 메우기를 넘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는 최초 공개버전의 45분에서 다소 축약된 40분의 상영시간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영화가 좀 더 확장되었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감독 본인이 이상적으로 정했을) 한 시간 전후의 러닝타임으로 완성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불쑥 튀어나올지 모를, ‘환상의 버전’을 기약해 본다.

<작품정보>

미스터 장 Mr. Jang
2021|한국|드라마|40분
감독 장병기
주연 김종구(장사장), 임호준(이장)
출연 박일룡, 손호석, 윤진, 김진희, 백운봉, 장종호, 김태오, 김선빈, 박찬우
촬영/색보정 전상진 제작 장은우 편집 장병기

2021 제5회 부산인터시티영화제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