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논란, 쟁점 셋

TOP10 투표로 정책 결정, 절차상 문제 지적돼
마트 노동자 건강권·휴식권 보장 논의 필요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 제대로 반영돼야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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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정부도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진행 중인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1위를 유지하는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제한 폐지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기투표 형식인 ‘국민제안 TOP10’의 절차상 문제, 마트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2012년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을 근거로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적으로 문을 닫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다. 당시 대형마트들의 점포 수 늘리기 경쟁이 붙으면서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지적이 일자,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됐다.

지난 10년간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의무휴업 제도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선 재판관 8대 1로 합헌 결정이 났다. 헌법재판소는 “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형마트가 유통시장을 독과점할 개연성이 높다”고 합헌 이유를 설명했다.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줄곧 있었다. 제도 도입 후 골목상권 매출이 늘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며, 최근 온라인 유통업체가 급성장한 것도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둘러싼 쟁점 세 가지를 짚어봤다.

1. TOP10 투표로 정책 결정, 절차상 문제 지적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은 지난 21일부터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 내에서 ‘국민제안 TOP10’ 정책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심사위원회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와 함께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반려견 물림사고 시 안락사 조치, 9,900원 K-교통패스(가칭) 도입 등 10가지 우수 제안을 뽑았고 이 중 온라인 투표를 거쳐 3개 우수제안을 추려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내용 없이 의제만 제시된 항목에 참여자가 ‘좋아요’를 누르는 방식이다. 사진은 국민제안 TOP10 홈페이지.

우선 문제가 되는 건 투표 방식이다. 제안의 구체적 내용, 심사위원회 구성이 공개되지 않는데다 참여 방식도 ‘좋아요’만 누를 수 있어 반대 의견을 표시할 수 없다. 26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은 보도자료를 내고 “윤석열 정부는 ‘국민제안’을 새로운 소통창구라고 만들었지만 전체 제안내용 뿐 아니라 국민제안 심사위 구성도 비밀에 부치고 있다”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마치 국민의 뜻인 양 호도하며 폐지하려 한다. 자본의 이익만을 위해 대국민 사기극을 펼치는 정부를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2. 마트 노동자 건강권·휴식권 보장 논의 필요

같은날 오전 11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 대구경북본부는 대구시청 앞에서 윤석열 정부가 국민제안 TOP10 투표로 마트노동자 휴일을 뺏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비스연맹 대국민호소문에 따르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전 대형마트의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은 재래시장과 중소상인에게 위협이 됐을 뿐 아니라, 마트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침해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렵게 만드는 등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박선영 마트노조 대구경북본부 수석부본부장은 “15년을 마트에서 일했다. 의무휴업일이 없던 과거가 떠오르며 답답하고 속이 끓는다. 당시 주말에 연차를 하나라도 넣으려면 동료들과 기 싸움을 해야 했다. 제비뽑기와 사다리타기를 했고, 그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동료는 가족을 챙기지 못하고 주말 노동에 시달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는 26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추진하려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수석부본부장은 “어제 마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와중에 동료들이 우리가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물어왔다. 그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협력직원이고 파견직원이며, 임대 매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이다. 이들은 의무휴업일이 아니면 주말에 쉬는 게 불가능하다”며 “마트 안에도 사람이 있다.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힘들게 쟁취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 싶다”고 전했다.

3.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 제대로 반영돼야

논의가 본격화된다 해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관련 법안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상생 발전을 도모한다는 법 도입 취지를 고려해 규제 완화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현재 대형마트가 별도의 물류센터를 활용해 온라인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온라인 유통업체와 비교해 큰 타격을 입는 상황이라 볼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1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도 성명서를 통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이미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됐다”며 “적법성이 입증됐음에도 새 정부는 골목상권 최후 보호막을 제거하고 재벌 대기업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