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쾌락의 끝, ‘비스티 보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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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윤계상)는 잘 나가는 호스트다.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여자들의 마음을 훔친다. 하지만 호스트로서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호스트바와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우는 사업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호스트바에 나간다고 여긴다. 그는 부잣집 아들로 자라나 자존심이 강하고 폼도 잡고 싶다. 애정을 느낀 지원(윤진서)에겐 이렇게 말한다.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잠깐 일하는 거야.” 하지만 승우는 호스트를 벗어날 수 없다.

호스트바의 매니저 재현(하정우)은 쾌락만 좇는다. 그는 다정한 말과 재치 있는 유머로 상대의 호감을 산다. 그러고선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재현에게 사랑은 돈을 빌려줄 희망이다. 이유는 수천만 원의 빚에 쪼들리기 때문이다. 창우(마동석)에게 빌린 돈을 1년 넘게 갚지 못해 폭행을 당한다.

승우와 재현의 일상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밑바닥 인생에 그친다. 승우는 입대 전까지만 해도 부유했던 시절을 잊지 못해 여성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군 제대 후 찾은 가정은 엉망이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승우는 텐프로 마담으로 일하는 누나 한별(김민주)의 도움을 받아 생활한다. 누나의 기둥서방 재현의 소개로 호스트가 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현은 창우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하면서도 돈만 생기면 도박판을 찾는다. 궁지에 몰린 그는 자신의 빚을 일거에 갚아줄 물주를 찾아 ‘공사(여자 손님을 유혹해 돈을 받아내는 것)’를 시작한다. 더 이상 한별이 돈을 빌려줄 것 같지 않아서 한별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미선(윤아정)에게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5,000만 원을 뜯어낼 심산이다.

한별은 업소에서 남자를 대상으로 번 돈으로 재현에게 쏟는다. 공사에 실패하고 창우에게 손을 다친 재현이 매달리자, 한별은 이용당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업소의 돈을 빌려 재현에게 건네준다. 재현은 이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다. 이를 알게 된 한별과 승우는 재현과 크게 다툰다. 재현은 남은 돈을 들고 일본으로 도주한다. 일본에 도착한 재현은 후배 원석(정경호)의 도움으로 호스트로 일한다.

<비스티 보이즈>는 <용서받지 못한 자>로 주목받은 윤종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대한민국 대표 부촌 강남 청담동에 기생하는, 낮보다 밤이 더 바쁜 가련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부나비(The Tiger Moth) 같은 화류계의 결말은 허망하다. 하루에 몇백만 원을 벌고 외제차를 끌고 명품 옷을 입어도 이들은 빚에 허덕인다. 인생을 바꿔줄 한방을 기대하며 도박에 빠지거나 누군가를 속일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남을 등쳐먹으며 살아간다는 비난에도 당당하다. 사랑도 의리도 도덕도 없다.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욕망이 넘실댄다. 사랑은 상품에 불과하다. 고급 양주와 세련된 매너로 사랑을 포장하고 값을 매긴다. 이들 앞에서 사랑과 상품이 혼돈된다면 이미 공사를 당한 것이다. 비스티 보이즈는 저속한 남자들이란 뜻이다. 관객들이 공감할 인물이 없어서 보는 이에 따라 답답하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봉 당시 부촌의 밤 풍경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됐다는 평을 받았다. 남성들에게 접대해 받은 돈을 쓰기 위해 호스트바를 찾는 룸살롱 호스티스들과 이들의 돈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호스트들은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하지만 쾌락으로 번진 소비의 끝은 파국에 그친다. 승우, 한별, 지원의 결말은 참혹하다. 미선(윤아정)은 재현의 물주였다가 뒤늦게 한별을 통해 재현의 속을 알게 됐지만, 오히려 욕설과 폭행이 돌아왔다. 또 다른 물주를 찾으러 일본으로 건너간 재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