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적어도 주 5일은 시장님도 공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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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 당선 직후 대구시가 새 관사를 사고, 가구도 새로 들이고, 리모델링도 했다는 풍문이 대구시 관가에 유령처럼 떠돌았다. 들인 돈이 몇억이라더라. 아니다, 몇천만 원 수준이라더라.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달렸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에게까지 그 말이 번져 너도나도 정보공개청구에 매달렸다.

7월 14일 첫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대구시 공유재산 관리조례 56조에 따른 단서 조항 (예산 지출 가능 조항)에 따라 2018년 7월 1일부터 2022년 7월 14일 현재까지 지출된 예산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합니다. 정보공개는 다음과 같이 공개 바랍니다.”

1. 지출일자, 지출명목(조례상 해당하는 호), 지출 대상 관사
2. 지출에 따른 예산 지출결의서

조례가 규정한 세금 지출 내역을 공개해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공개청구다. 공유재산 관리조례(‘22.7.22 개정 전 기준)에는 개축 등 시설비, 응접세트 등 장식물 관리비 등을 예외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관사 운영비로 규정했다. 대구시는 7월 27일 요청한 구체적인 자료 공개를 하는 대신 두루뭉술한 합계 자료를 공개했다. 조례에서 규정한 구체적인 지출 명목도 적시하지 않은 통자료였다. 이의 제기를 하려 담당자와 통화를 했지만, 답답함만 쌓였다. 아래는 당시 담당자와 통화 내용의 한 단락이다.

“저희 운영비는 보통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아파트 관리비, 통신비, 도시가스비 이렇게 나간다.” (담당자)

“공개해주신 내용은 세 가지 명목으로 지출된건가?” (기자)

“네, 운영 경비라서.”

“개정 전 (조례) 조항을 보면 집기 구입비도 있더라?”

“집기는 2018년 이전에 다 들어갔다.”

“2022년 올해부턴 집기 구입비 관련은 없다는 말인가?”

“지금 홈페이지에 있는 그대로만 정보를 드리는 것이다.
7월부터는 자부담 원칙이라고 말씀드린다.”

“조례 조항에 따라서 집기 구입비와 관련해서 나간 게 없느냐고 여쭤본 거다.
그 부분에 대한 답변을 안 하고 계신다.”

“아니요. 그전에 있었던 숙소들에 대해선 오래전에 구비했던 부분이고,
드릴 수 있는 정보공개 한도에서 드린 것이다.”

“장식물 구입비 지출을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는 말씀인가,
공개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

“저희는 지금 제공해드릴 수 있는 정보가 이게 전부고,
다른 부분은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

더 이상 그와 이야기로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7월 27일이다.

“2022년 1월 1일부터 2022년 7월 27일 현재까지 대구시공유재산관리조례 56조 1, 2, 3호에 따라 지출된 운영비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합니다.”

1. 지출일자, 지출명목(조례상 해당하는 호), 지출 대상 관사
2. 지출에 따른 예산 지출결의서

이젠 진검승부라고 생각했다. 그도 나도 서로가 어떤 자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았다. 이전처럼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빠져나갈 순 없었다. 공개냐 비공개냐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공개를 한다면 깔끔해지지만, 비공개를 한다면 비공개의 근거도 마련해야 할 테였다. 비공개할 명분이 없으니 공개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8월 9일, 대구시는 기대를 시원하게 저버렸다.

“귀하께서 청구하신 정보공개와 관련하여 사생활 침해와 관련된 부분으로 판단되어 비공개 처리하오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웃음이 나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세금 들여, 공인인 시장의 관사를 공사하고, 가구도 들였는데, 그 정보가 사생활이라니? 해괴망측한 해명에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의신청을 했다. 공무원이야 인사권자의 말이 법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외부 전문가로 꾸려진 심의기구(정보공개심의회)는 다른 결정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정보공개제도가 시행되고 우리 사법부는 개인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비공개되는 정보들에 대해 공개될 경우 달성될 공익과 사생활 침해 사이의 이익을 비교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법례를 세워왔다. 축적된 경험의 합리성이 발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또 한 번 기대를 저버렸다. 변호사뿐 아니라 경찰학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한 정보공개심의회는 “공익의 달성과 사생활의 침해 사이의 이익을 비교 형량하였을때 사생활 침해의 여지가 더 크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비공개를 결정하오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밝혀왔다. 시장님이 바뀌니, 합리적인 상식조차 바뀌어 버리는 현실에 또 한 번 실소했다.

웃픈 현실은 이렇게 지역 공직사회와 전문가 집단이 지키려고 한 ‘시장님의 사생활’이 사실 사전 공개 정보로 버젓이 공개되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대구시가 내세운 ‘시장님의 사생활’이란 변명이 억지였다는 반증이다. 이미 만방에 공개된 사생활도 있나. 관찰 예능도 아니고.

공인에게 사생활의 영역은 제한적이다. 특히 그 권한이 큰 공인일수록 사생활의 영역은 좁다. 심심하면 ‘사적’ 대화를 나누는 대통령이 24시간 근무한다는 것처럼, 시장님도 주 7일 중 적어도 관사에서 출·퇴근하는 5일 동안에는 사생활의 영역이 좁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