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까?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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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 여성 이신애(전도연)는 어린 아들 준(선정엽)을 데리고 밀양으로 향한다. 이곳은 연고가 없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고향일 뿐이다. 신애는 “남편의 살아생전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별한 남편은 외도를 했다. 행복한 가정을 깨뜨린 남편의 고향으로 가서, 남편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겠다는 신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신애가 밀양으로 가는 길에 자동차가 고장이 난다. 카센터를 운영하는 김종찬(송강호)과 만나게 된 계기다. 종찬은 신애와 첫 만남에서 홀딱 반한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다방 여직원에게 장난치듯 희롱하는 인물이다. 도로에 고립된 신애 자동차를 고쳐 준 뒤 신애 주변을 맴돌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신애는 종찬의 노골적인 호감이 불편하고 귀찮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애가 도움을 청할 사람은 종찬밖에 없다. 종찬이 힘을 써준 덕에 집과 피아노 가게를 얻는다. 밀양에서 살아가기 위해 신애는 돈이 많은 척 허세를 부린다. 종찬을 곁에 두지 않고 도도한 척 구는 이유도 마음에 새겨진 상처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밀양에서 살아보려고 한 신애의 행동으로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온다.

아들 준이 유괴된다. 도움을 청할 사람은 종찬뿐이다. 하지만 신애는 종찬의 카센터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종찬이 카센터 안에서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뒤 차마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도로를 정처 없이 걷다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다.

유괴범은 신애에게 돈을 요구한다. 돈 있는 척 도도하게 행동하는 신애에게 몸값을 뜯어내려는 심산이다. 그런데 신애는 재산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들의 몸값으로 신문지로 조잡하게 가짜 돈을 준비하는데, 결국 거짓 행세라는 것을 유괴범에게 시인하고 만다. 하지만 아들 준은 돌아오지 못하고 살해된 채 발견된다.

신애는 절망에 빠진다. 왜 이런 시련이 찾아온 건지 스스로 납득할 수 없다. “불행하지 않아요. 잘 살고 있어요. 괜찮은 땅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돈 있는 척 허세를 부린 이유는 동네 아줌마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삶의 희망을 잃은 신애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는다.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헛구역질을 하고 오한에 떤다. 그때 기도회 현수막을 보고 무턱대고 교회를 찾는다. 벼랑 끝에 선 신애가 기댈 곳은 종교다. 응어리진 울음을 쏟아내고 신을 맞아들인다.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가 처음 울음을 터뜨린다.

신애는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 목사가 신애의 머리 위에 가만히 손을 얹으면 신애의 울음은 놀랍게도 뚝 그친다. 자신을 전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내비치던 그는 열성적인 신도가 된다. 신도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하고 이웃 주민들에게는 이제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양장점 주인(김미경)은 되묻는다. “난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거든. 자꾸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는데 뭐가 행복하단 말이고.”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여전히 아들 생각에 눈물을 쏟고, 낯선 이들을 대할 수 없는 공포에 떤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애는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교회 목사와 신도들에게 그를 용서하는 뜻을 밝히고 그들의 격려 속에 유괴범을 만나러 간다. 유괴범은 하느님께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음이 편안하다면서 오히려 신애를 위로한다. 자신이 아닌 신으로부터 용서받았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가해자가 먼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상황의 역설은 신애의 마음을 갈가리 찢는다.

“준이 어머니를 위해서도 항상 기도합니다. 죽을 때까지 할겁니다. 그런데 앉아, 이래 직접 만나고 보니 하나님이 역시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신애는 삶을 포기한다. 피아노 교습소는 문도 열지 않고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다. 교회에 가서는 십자가를 보며 의자를 내려친다. 유괴범은 신애의 아들 준이 다니던 웅변학원의 원장 박도섭(조영진)이다. 도섭은 신애의 앞에서 “예쁘면 뭐 합니까? 인간이 돼야지?”라며 자신의 딸을 나무라던 사람이다. 억지로 만든 희망이 산산히 깨어지자, 신애는 폭주한다.

약사의 남편을 유혹하고 교회 부흥회에서 목사 설교 도중 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튼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의 이유를 종교의 섭리로 받아들이려는 시도조차 수포로 돌아간 탓이다. 보다 못한 교회 목사와 신도들은 신애의 집에서 집회를 연다. 하지만 신애의 믿음은 이미 깨어졌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 할 수 있어요?”

<밀양>은 신의 존재와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신애는 신의 은총을 주절거리며 미소짓는 도섭 앞에서 신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개봉 당시에는 “대놓고 개신교를 모함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었지만, 영화에 나오는 개신교인들은 선량하게 비춰진다.

촬영에 실제 목사와 교인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한다. 기독교를 비판한다기 보다는 기독교적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보면 된다. 값싼 은총과 용서를 남발하는 교회를 지적하는 게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얼마나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다.

우린 신애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신애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그런데 아버지와 불화로 꿈은 좌절되고 남편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남편은 외도를 했다.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온 밀양에서 허세를 부린 게 원인이 되어 아들마저 잃었다. 이는 신애만의 탓인가.

어린 나이에 가족을 버리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좇았다면 신애의 삶은 행복했을까? 사별한 남편의 고향으로 가지 않았으면 신애의 아들은 건강하게 자랐을까?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면 아들이 유괴당하지 않았을까? 섣불리 화해하려 했다가 더 상처받은 것뿐인가? 명쾌한 답은 없다. 이 모든 책임을 신애 혼자 짊어지기엔 인간은 너무 나약하다.

우린 신애의 기행을 완전히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할 필요도 없다. 살다보면 저런 불행을 한꺼번에 겪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는 납득만 해도 다행이다. 상처의 회복, 그리고 속죄와 치유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구원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행복이 조금이라도 오래가기를 숨죽여 바랄 뿐이다.

주연배우 전도연과 송강호는 호연을 보여준다. 특히 전도연은 고통을 감내하다가 끝내 폭발시키고, 슬픔과 상실감이 뒤섞인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밀양>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2007년 아시아태평양영화상(APSA)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전도연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또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