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5) “이만큼 만족도 높은 사업 있나?”···기로에 선 대구행복페이

지금도 월 30만 원 충전 시 겨우 3만 원 혜택
할인 줄어들면 선순환 구조 유지 어려울 것
국비 끊기면 지자체장 의지 중요해져
대구시 “내년 운영 여부 안갯속, 대구로 등 관련 사업 타격 불가피”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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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화폐 ‘행복페이’가 기로에 섰다. 정부가 지역화폐에 지원하던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당장 내년부터 발행액이 줄거나 사업이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구시가 사업 유지로 가닥을 잡는다면 시비를 늘려 혜택을 유지하거나, 발행규모를 축소하는 방안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와 의회, 연구자들은 규모가 축소되더라도 운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분위기지만, 소상공인들은 혜택이 줄면 실효성도 떨어질 거라고 내다봤다.

현행 행복페이의 할인율은 10%다. 9만 원을 충전하면 대구 안에서 10만 원을 사용할 수 있다. 할인액에 해당하는 예산 마련 과정에 국비와 시비 비율은 매번 주요 이슈가 되어 왔다. 올해 행복페이 할인액 1,100억 원 가운데 국비는 380억 원, 시비는 720억 원이다. 첫해 정부는 할인액의 80%를 지원하다가, 작년 60%로 낮춘 뒤 올해 40%를 지원했다.

매년 예산이 조기 소진될 만큼 행복페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대구시에 따르면 2020년 말 29만 명이던 이용자 수는 2021년 말 49만 명, 올해 들어서는 59만 명으로 급증했다. <뉴스민>은 10월 4일부터 13일까지 16명의 지역 소상공인과 시민들을 만나 정책 체감 효과와 예산 삭감에 대한 의견 등을 물었다. 행복페이를 사용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6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 경제, 또는 가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행복페이를 사용 중이라고 답한 10명 중 6명이 “현재 한도인 30만 원이 적다”고 했고, 이중 “예산이 줄면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매년 예산이 조기 소진될 만큼 행복페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대구시에 따르면 2020년 말 29만 명이던 이용자 수는 2021년 말 49만 명, 올해 들어서는 59만 명으로 급증했다.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행복페이 결제 비율은 5~10%
대경연구원 보고서 “2020년 대구경제성장률 0.36% 개선 효과 발생”

“손님들이 결제할 때 행복페이 카드로 결제하는 비율이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게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가게 장을 볼 때 혜택이 크다. 수혜자이자 이용자로서 지역 안에서 돈이 도는 게 느껴진다.”

수성구 한 식당에서 일하는 이순영 씨(48)는 행복페이 예찬을 한참 늘어놨다. 이 씨는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던 걸 동네 마트와 섞어서 보고 있다. 대구 안에선 편의점, 택시, 동네마트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주변에 적극적으로 만들라고 권했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업 가운데 이만큼 만족도 높은 사업이 있었나”고 말했다.

이 씨는 “얼마 전 예산이 조기 소진돼 더 충전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내년에는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하니 민원이라도 넣을 생각”이라며 “행복페이 결제 비율은 10% 안팎 인 것 같다. 체감상 달 초에 행복페이 이용 손님이 더 자주 보인다”고 전했다.

대체로 상공인들은 행복페이 이용객을 10% 안팎으로 체감했다. 중구 동성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현철 씨(55)도 “행복페이 결제 비율은 전체의 7% 정도 된다”며 “비율 자체만 놓고 보면 많지 않지만 손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도가 적어 더 사용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더라”고 답했다.

대구시는 행복페이의 사업 목적을 지역 소비 활성화와 가맹점 매출 증대를 통한 소득 증가로 지역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선순환 구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는 여러곳에서 확인된다. 지역화폐를 선도적으로 도입한 서울‧경기를 비롯해 전국 지자체가 앞다퉈 이와 관련된 자료를 내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도 행복페이 도입 첫 해인 2020년 12월 ‘대구행복페이 성과분석’ 연구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화폐 특성상 서비스업에서 높은 효과가 발생하며, 이중에서도 생활밀착형서비스인 도소매서비스와 문화 및 기타서비스업에 효과가 집중된다. ‘2020년 행복페이 사용에 따라 2018년 지역내총생산 기준 도매 및 소매업 2.3%, 문화 및 기타서비스업 1.2%의 개선 등으로 인해 대구경제성장률 0.36% 개선효과가 발생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2021년에는 도매 및 소매업 9.4%, 문화 및 기타서비스업 4.9%의 개선 등으로 대구경제성장률 1.47%의 개선효과가 발생할 거라 예측했다.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강조했다. 임 팀장은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보다 여러 단계 더 머물르기 때문에 돈이 지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진다”며 “1,000억 원의 세금을 공원 조성 등 건설업에 쓸 땐 특정 산업, 대형 업체 중심으로 전‧후방 효과가 나타난다. 반면 지역화폐는 농민부터 도‧소매업 등 영세상인 중심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넓은 폭으로 효과가 나타나며, 실제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만족감도 크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월 30만 원 충전 시 겨우 3만 원 혜택
할인 줄어들면 선순환 구조 유지 어려울 것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정책 방향은 줄어든 예산만큼 전체 할인액 규모 또는 할인율을 줄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뉴스민>이 만난 소상공인들은 할인율이 줄면 지금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울 거라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5일 경기도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경기지역화폐의 인센티브 또는 할인율이 줄어들면 사용자가 대폭 감소한다는 조사 결과도 확인됐다. 이 조사에서 경기지역화폐 사용 의향은 81%로 나타났으나, 현재 6~10% 수준의 인센티브 또는 할인율이 줄어들 경우 사용 의향이 48%까지 감소했다.

이순영 씨는 “할인율이 줄어든다면, 행복페이를 이용해 밖에서 돈을 쓰고 가게에서 손님 돈을 받는 구조가 지금처럼 잘 굴러가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구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미진 씨(45)도 “중간에 한도액이 5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줄었지 않냐. 꽉 채워 쓰면 월 3만 원 정도의 혜택을 받는 건데, 여기서 더 줄어들면 굳이 사용을 안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성구 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김영애(가명, 38) 씨는 “병원에서 행복페이 결제 비율은 5~7% 정도”라며  “지금보다 혜택이 줄어도 쓰긴 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도를 체크해서 적극적으로 쓸 것 같진 않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래 취지도 살리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시내 중심가와 전통시장 사이 온도 차 커
대구시의회 “중구‧수성구, 음식점‧슈퍼마켓에서 주로 사용”

물론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식당‧카페 등 서비스업이 밀집된 중구, 수성구의 중심가와 도‧소매업 병행 가게 비중이 높은 전통시장 사이에선 행복페이에 대한 온도 차가 느껴진다. 지난해 12월 대구시의회 의원연구단체 ‘대구의정미래포럼’이 정책연구과제로 추진한 ‘대구행복페이 활성화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사용액 기준 55%가 중구‧수성구‧달서구에서 사용됐으며 음식점‧슈퍼마켓‧병원 3개소에서 53%가 사용되는 등 지역별, 업종별 쏠림 현상이 보였다.

현장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시내 중심가 소상공인들은 연구결과에서 드러나듯 행복페이의 구체적 이용률까지 아는 등 정책 효용성을 크게 느꼈지만, 전통시장 상인 중에는 ‘행복페이를 모른다’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12월 대구시의회 연구자료에 따르면 행복페이 사용률이 높은 동네는 중구와 수성구, 달서구이다. 이 지역에서 전체 사용액의 55%가 사용됐다. 칠성시장에선 “행복페이를 모른다. 온누리 상품권은 자주 본다”고 답하는 상인이 많았다.

칠성시장에서 식품 도매업을 하는 김민수(가명, 41) 씨는 “우린 도매 중심인데다 시장에 있으니 카드보단 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장 인근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김영석(남, 58) 씨도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는 사람은 좀 있어도 행복페이는 잘 못 봤다. 주변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봤는데 인당 한도액이 크지 않아서 굳이 만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꾸준히 지적된 ▲이용자, 사용처 확대 ▲예산 확충 필요성 등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개인별 충전한도를 월 5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축소하고 월간 한도를 연간 한도로 바꾸는 등 시스템을 손봤다. 임규채 팀장은 “사용처나 사용 연령대 쏠림 현상은 근본 해결책이 없다.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과 병행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며 “기초생활수급비 등 사회보장비를 행복페이로 지급하는 등 지역화폐를 연계한 사회복지 제도 확대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국비 없이 시비만으로 운영된다면 전체적으로 할인율을 줄이거나, 혹은 청년‧노인정책과 연계해 일부 연령대에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등 여러 제도 변경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건 금액이 적어도 다양한 사람에게 지자체 사업의 효능감을 전달하는 것이다.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실제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에도 분명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비 끊기면 지자체장 의지 중요해져
대구시 “내년 운영 여부 안갯속, 대구로 등 관련 사업 타격 불가피”

대구시 경제국은 지역화폐 국비 삭감에 대한 별도 입장을 밝히기보단 내년도 사업 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경제국 관계자는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은 백지 상태다. 모든 게 검토 상태라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며 “다만, 전국 대부분 지자체가 시행하는 사업인 만큼 할인율을 낮추는 등의 방안을 고민해 최대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의회와 시민단체, 지역 유관단체들이 지역화폐 예산 축소 분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만큼 완전 폐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병문 대구시의원(국민의힘, 북구4)은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를 무대로 추진한 사업이지만, 그걸 떠나 지역 상권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매출 10억 원 미만 소상공인에게는 수수료 혜택이 크고 가계 경제에도 눈에 보이게 도움이 되는 만큼, 시의회 차원에서 집행부에 지속 추진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 건의했다”고 말했다.

대구경실련도 전국경실련 공동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는 부정하고, 중앙정부 사업이 아닌 지자체 고유사업임을 강조하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재정 상황과 법률상 부여된 권한에 비추어 보면 지역화폐 예산을 지자체 스스로 조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국회는 예산안 심의를 통해 정부의 일방적인 지역화폐 국비지원 전액삭감안을 바로 잡고, 정부는 지자체‧소상공인‧지역 소비자 의견을 충분히 청취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역화폐 예산 삭감이 불가피한 현 상황에서 대구시가 운영하는 배달앱 ‘대구로’ 운영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구로는 행복페이 결제 시 5%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로 운영사인 인성데이타 측 설명에 따르면 대구로 이용자 가운데 행복페이를 이용해 결제하는 비율은 평균 50~60%에 달한다.

대구시 경제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내년 예산 작업 중인데, 일단은 행복페이 할인 혜택에 필요한 예산을 같이 편성하고 있다. 배달앱 내 전통시장 서비스나 출시 준비 중인 공공택시앱에도 행복페이 할인혜택은 탑재될 예정”이라며 “아직 결정된 게 없지만 만약 내년도 행복페이 예산이 축소된다면 대구로는 다른 프로모션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